기억의 기록

2026-04-10 (No.93)
감 선생님에게 드리는 편지 자존감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인류의 학문적 지평 위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19세기 말,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에 의해서였다. 그는 자존감을 '자신의 잠재적 역량에 대한 성취의 비율'이라고 정의하며,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는가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임을 천명했다. 그에게 자존감이란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를 넘어, 세상을 마주하는 개인의 가장 근본적인 태도이자 생존을 위한 심리적 기제였다. 이후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그의 유명한 욕구 위계 이론에서 자존감을 인간이 지향해야 할 고차원적인 욕구로 분류했다. 그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존중과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이 결합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아실현이라는 정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자존감은 외부의 박수 소리와 내면의 확신이 만나 일으키는 공명이며, 이 공명이 멈출 때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을 '의식의 면역 체계'라고 명명했다. 육체의 면역력이 외부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듯, 건강한 자존감은 삶의 고통과 시련이라는 심리적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한다는 논리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실패를 겪어도 그것이 존재 자체의 파멸이 아님을 알기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반면, 이 면역 체계가 붕괴된 이들에게 세상은 그저 끊임없는 위협의 연속일 뿐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자존감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거울 자아'의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우리는 타인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모습을 통해 나라는 존재의 윤곽을 확인한다. 주변의 따뜻한 시선과 긍정적인 피드백은 우리 내면의 자존감이라는 저수지를 채우는 맑은 물이 되지만, 차가운 무관심과 비난은 그 저수지를 메마르게 하여 바닥의 거친 흙탕물을 드러내게 만든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 중 하나는 자존감이 단순히 '자기애'와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자존감은 자신의 장점뿐만 아니라 결점과 한계까지도 온전하게 수용하는 용기를 포함한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학자들이 말하는 가장 견고하고 건강한 자존감의 상태다. 결국 학문적 논의들을 종합해 보면, 자존감이란 인간이 생을 지속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내면의 중력'이라 할 수 있다. 이 중력이 적절하게 작동할 때 우리는 현실에 발을 붙이고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지만, 이 힘이 약해지면 존재는 허공으로 흩어지며 삶의 방향 감각을 잃게 된다. 자존감은 곧 나라는 우주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초 공사인 셈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 안의 그 소중한 중력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유년의 기억은 늘 혹독한 결핍과 설명할 수 없는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이발소에서 갓 머리를 깎고 기분 좋게 돌아오던 어느 날의 풍경이 지금도 선명하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골목 안쪽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고성들이 공기를 찢고 있었다. 그 소리만으로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아, 우리 집에서 또 폭풍이 시작되었구나. 어린 나는 그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설 용기가 없었다. 길가 어딘가에 쪼그리고 앉아 그 소름 끼치는 소음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세상이 어스름에 잠길 때까지, 나는 집이라는 거대한 감옥 앞에서 이름 모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부모님의 격렬한 싸움은 늘 나를 그 틈바구니로 불러들였고, 싸움을 말리려던 작은 몸짓은 어느샌가 두 사람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방패가 되어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거대한 형벌이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은 그저 죽지 못해 이어가는 관성적인 움직임에 불과했다. 자존감이라는 단어의 존재조차 모르던 소년에게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은 사치였다. 나는 그저 세상이라는 정에 사정없이 얻맞으며 부서져 나가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길가의 돌덩이와 같았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왜 이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 매일 밤 천장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텅 빈 마음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이 어느덧 3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굴곡진 시간 속에서 내가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는지 자문해 본다. 어릴 때 채워지지 못한 자존감의 결핍은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나를 흔들었지만, 그때마다 나를 살린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건네받은 '사소한 온기'였다. 누군가 무심코 건넨 격려의 말 한마디, 나의 서툰 실수를 감싸주던 선배의 따뜻한 배려, 그리고 나의 존재를 온전하게 존중해 주던 사람들의 시선. 그런 작고 사소한 에너지가 모여 내 내면의 비어있던 자존감을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다. 타인이 건네주는 그 존중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내 마음의 저수지에 부을 때마다, 나는 비로소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 에너지를 수신하는 순간 느꼈던 벅찬 감사함, 그것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에게 자존감이란, 외부에서 얻어지는 성취가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 그 자체로 정의된다. 삶은 끊임없이 시련을 던져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순간순간 감사한 상황과 사람들을 곁에 두어준다. 그 고마운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가슴에 새기는 것, 나를 도와준 이들의 선의를 정직하게 기억하는 것. 그 감사함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나의 자존감 또한 그만큼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나는 30년 사횔생활을 통해 배웠다. 이 글을 빌려 나를 스쳐 지나간, 그리고 지금도 곁을 지켜주는 감사한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당신이 무심결에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와 배려 섞인 행동들이, 삶의 의욕을 잃고 헤매던 누군가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위로와 힘이 되었음을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내뿜은 그 온도가 차갑게 식어있던 누군가의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값지고 귀한 것들이 부서지고 조각나 버려졌을 때, 그것을 다시 이어 붙여 단단하게 일어서게 만든 것은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배려있는 마음이었다. 당신이 보여준 존중은 내 내면의 면역 체계를 재건해주었고, 내가 나로서 온전하게 존재해도 괜찮다는 허락과도 같았다. 부서진 틈 사이를 메워준 것은 당신의 배려였고, 그 덕분에 나는 이제 그 흉터조차 조화로운 무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 어두운 골목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는 소년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건넨 온기는 누군가를 살리는 기적이었고, 세상을 더 값지게 만드는 숭고한 헌신이었다. 당신이라는 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내 삶의 여정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나의 깨진 단면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 당신의 손길을 기억하며, 이제는 나 또한 누군가의 모난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조화로운 돌 한 조각이 되어 살아가고 싶다. 당신이 나에게 그러했듯, 나 역시 누군가의 무너진 자존감을 채워주는 조용한 온기로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글이 당신에게 바치는 나의 가장 진실한 고백이자, 당신의 아름다운 삶에 드리는 작은 헌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
감 선생님에게 드리는 편지 자존감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인류의 학문적 지평 위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19세기 말,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에 의해서였다. 그는 자존감을 '자신의 잠재적 역량에 대한 성취의 비율'이라고 정의하며,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는가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임을 천명했다. 그에게 자존감이란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를 넘어, 세상을 마주하는 개인의 가장 근본적인 태도이자 생존을 위한 심리적 기제였다. 이후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그의 유명한 욕구 위계 이론에서 자존감을 인간이 지향해야 할 고차원적인 욕구로 분류했다. 그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존중과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이 결합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아실현이라는 정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자존감은 외부의 박수 소리와 내면의 확신이 만나 일으키는 공명이며, 이 공명이 멈출 때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을 '의식의 면역 체계'라고 명명했다. 육체의 면역력이 외부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듯, 건강한 자존감은 삶의 고통과 시련이라는 심리적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한다는 논리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실패를 겪어도 그것이 존재 자체의 파멸이 아님을 알기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반면, 이 면역 체계가 붕괴된 이들에게 세상은 그저 끊임없는 위협의 연속일 뿐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자존감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거울 자아'의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우리는 타인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모습을 통해 나라는 존재의 윤곽을 확인한다. 주변의 따뜻한 시선과 긍정적인 피드백은 우리 내면의 자존감이라는 저수지를 채우는 맑은 물이 되지만, 차가운 무관심과 비난은 그 저수지를 메마르게 하여 바닥의 거친 흙탕물을 드러내게 만든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 중 하나는 자존감이 단순히 '자기애'와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자존감은 자신의 장점뿐만 아니라 결점과 한계까지도 온전하게 수용하는 용기를 포함한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학자들이 말하는 가장 견고하고 건강한 자존감의 상태다. 결국 학문적 논의들을 종합해 보면, 자존감이란 인간이 생을 지속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내면의 중력'이라 할 수 있다. 이 중력이 적절하게 작동할 때 우리는 현실에 발을 붙이고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지만, 이 힘이 약해지면 존재는 허공으로 흩어지며 삶의 방향 감각을 잃게 된다. 자존감은 곧 나라는 우주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초 공사인 셈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 안의 그 소중한 중력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유년의 기억은 늘 혹독한 결핍과 설명할 수 없는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이발소에서 갓 머리를 깎고 기분 좋게 돌아오던 어느 날의 풍경이 지금도 선명하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골목 안쪽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고성들이 공기를 찢고 있었다. 그 소리만으로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아, 우리 집에서 또 폭풍이 시작되었구나. 어린 나는 그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설 용기가 없었다. 길가 어딘가에 쪼그리고 앉아 그 소름 끼치는 소음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세상이 어스름에 잠길 때까지, 나는 집이라는 거대한 감옥 앞에서 이름 모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부모님의 격렬한 싸움은 늘 나를 그 틈바구니로 불러들였고, 싸움을 말리려던 작은 몸짓은 어느샌가 두 사람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방패가 되어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거대한 형벌이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은 그저 죽지 못해 이어가는 관성적인 움직임에 불과했다. 자존감이라는 단어의 존재조차 모르던 소년에게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은 사치였다. 나는 그저 세상이라는 정에 사정없이 얻맞으며 부서져 나가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길가의 돌덩이와 같았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왜 이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 매일 밤 천장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텅 빈 마음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이 어느덧 3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굴곡진 시간 속에서 내가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는지 자문해 본다. 어릴 때 채워지지 못한 자존감의 결핍은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나를 흔들었지만, 그때마다 나를 살린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건네받은 '사소한 온기'였다. 누군가 무심코 건넨 격려의 말 한마디, 나의 서툰 실수를 감싸주던 선배의 따뜻한 배려, 그리고 나의 존재를 온전하게 존중해 주던 사람들의 시선. 그런 작고 사소한 에너지가 모여 내 내면의 비어있던 자존감을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다. 타인이 건네주는 그 존중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내 마음의 저수지에 부을 때마다, 나는 비로소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 에너지를 수신하는 순간 느꼈던 벅찬 감사함, 그것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에게 자존감이란, 외부에서 얻어지는 성취가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 그 자체로 정의된다. 삶은 끊임없이 시련을 던져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순간순간 감사한 상황과 사람들을 곁에 두어준다. 그 고마운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가슴에 새기는 것, 나를 도와준 이들의 선의를 정직하게 기억하는 것. 그 감사함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나의 자존감 또한 그만큼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나는 30년 사횔생활을 통해 배웠다. 이 글을 빌려 나를 스쳐 지나간, 그리고 지금도 곁을 지켜주는 감사한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당신이 무심결에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와 배려 섞인 행동들이, 삶의 의욕을 잃고 헤매던 누군가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위로와 힘이 되었음을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내뿜은 그 온도가 차갑게 식어있던 누군가의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값지고 귀한 것들이 부서지고 조각나 버려졌을 때, 그것을 다시 이어 붙여 단단하게 일어서게 만든 것은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배려있는 마음이었다. 당신이 보여준 존중은 내 내면의 면역 체계를 재건해주었고, 내가 나로서 온전하게 존재해도 괜찮다는 허락과도 같았다. 부서진 틈 사이를 메워준 것은 당신의 배려였고, 그 덕분에 나는 이제 그 흉터조차 조화로운 무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 어두운 골목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는 소년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건넨 온기는 누군가를 살리는 기적이었고, 세상을 더 값지게 만드는 숭고한 헌신이었다. 당신이라는 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내 삶의 여정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나의 깨진 단면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 당신의 손길을 기억하며, 이제는 나 또한 누군가의 모난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조화로운 돌 한 조각이 되어 살아가고 싶다. 당신이 나에게 그러했듯, 나 역시 누군가의 무너진 자존감을 채워주는 조용한 온기로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글이 당신에게 바치는 나의 가장 진실한 고백이자, 당신의 아름다운 삶에 드리는 작은 헌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
2026-04-07 (No.92)
삶의 맥박 아침을 깨우는 알람 소리부터 창밖을 스치는 자동차의 소음, 이름 모를 기계들이 내뱉는 미세한 웅성거림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거대한 노이즈의 바다와 같다. 공학적으로 노이즈란 신호의 전달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전자기적 간섭이나 무작위한 변동을 의미하지만, 우리 삶에서 그것은 단순히 '원치 않는 소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노이즈는 그 성격에 따라 제각각의 얼굴을 하고 있다. 텔레비전 채널 사이의 지지직거리는 백색 소음이 있는가 하면, 비행기 엔진 소리처럼 낮은 음역대가 강조된 핑크 노이즈도 있다. 이러한 소음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주의 근본 원리인 엔트로피와 맞닿아 있다. 전자가 회로를 흐르며 발생하는 열적 요동, 대기 중의 전자기파 간섭, 혹은 물질의 마찰 등 모든 물리적 활동은 필연적으로 불규칙한 흔적을 남긴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신호란 오직 진공 상태의 이론 속에만 존재할 뿐, 무언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곧 '노이즈'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문득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에도 이와 꼭 닮은 노이즈가 존재한다. 어제의 실수에 대한 뒤늦은 후회, 내일의 불확실성이 주는 막연한 불안, 혹은 타인의 시선에 맞추려 애쓰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파열음 같은 것들이다.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지나친 갈망과 타오르는 욕망은 우리 내면의 회로에 과부하를 걸고, 그 결과 자글자글한 마음의 노이즈를 양산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음악을 대할 때와 인생을 대할 때의 태도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소리에 예민한 애호가들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잡음을 참지 못한다. 가수의 숨소리 하나, 악기의 떨림 하나를 '원음' 그대로 느끼기 위해 고가의 케이블을 사고, 진동을 방지하는 받침대를 고르며, 전기 신호를 정화하는 장치에 아낌없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신호 대 잡음비를 높여 본질적인 선율을 선명하게 듣고자 하는 그 치열한 노력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대한 교향곡을 감상할 때는 어떠한가. 우리는 인생의 본질적인 선율을 가리는 노이즈에 놀라울 정도로 무감각하다. 아니, 어쩌면 스마트폰의 끝없는 알림음과 자극적인 정보들 속에 스스로를 던져 넣으며 그 노이즈를 더 크고 화려하게 증폭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면의 원음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채, 스피커가 찢어질 듯 울려대는 잡음을 삶의 활기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인생의 노이즈를 줄여 본질에 다가가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의도적인 고요 속에 침잠하는 방식을 택한다. 모든 외부 신호를 차단하고 오로지 내면의 소리에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처음 고요 속에 앉아 있으면 처음에는 평소보다 더 큰 노이즈가 들려온다. 억눌러왔던 걱정들이 아우성치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날카로운 파동으로 마음을 긁어댄다. 그러나 그 아우성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비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그 걱정의 밑바닥에 자리한 근본적인 두려움은 무엇인지 정직하게 대면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격렬하던 파동이 잦아들고 투명한 평온이 찾아온다. 로우패스 필터를 통과한 소리처럼 날카로운 고음의 불안은 걸러지고, 낮고 단단한 삶의 중심음만 남게 되는 것이다. 노이즈가 줄어든 그 짧은 순간이야말로 내가 비로소 나로서 온전하게 존재하는 시간이다. 물론 노이즈가 언제나 제거해야 할 적은 아니다. 기술의 세계에서 노이즈는 때로 마법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대표적인 것이 '디더링(Dithering)' 기법이다. 디지털 오디오나 이미지에서 양자화 오류로 인해 생기는 딱딱한 계단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공학자들은 역설적으로 미세한 노이즈를 추가한다. 의도적으로 더해진 이 잡음은 신호 사이의 경계를 부드럽게 뭉쳐주어, 인간의 귀와 눈이 훨씬 자연스럽고 풍성한 소리와 영상을 느끼게 만든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사운드 마스킹 기술 역시 노이즈의 현명한 활용법이다. 일정한 대역의 소음을 지속적으로 발생시켜 타인의 대화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게 만드는 이 방식은, 노이즈를 통해 오히려 평화로운 개인의 공간을 확보해준다. 또한, 빗소리나 파도 소리 같은 백색 소음은 현대인들에게 훌륭한 위안의 도구가 된다. 불규칙한 듯하면서도 일정한 패턴을 지닌 그 소음들은 뇌파를 안정시키고 깊은 휴식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노이즈가 신호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호를 보호하고 치유하는 수단이 되는 셈이다. 인생의 노이즈라 할 수 있는 여러 걱정과 불안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만약 우리 삶에 아무런 불안도, 고뇌도 없다면 우리는 결코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긁어대는 그 미세한 잡음들은 지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이자,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라는 내면의 경고등이다. 때로는 그 노이즈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있기에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고 성장의 기회를 마주한다. 매끄럽고 완벽한 직선의 삶보다, 조금은 지지직거리고 울퉁불퉁한 노이즈가 섞인 삶이 더 인간답고 풍성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더링된 이미지가 더 자연스럽듯, 우리의 고뇌와 실수가 뒤섞인 삶은 오히려 완벽주의라는 딱딱한 계단 현상을 부드럽게 완화해주며 인생이라는 그림을 풍성한 색채로 채워간다. 결국 노이즈는 그 자체로 나쁘거나 좋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무언가와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뜨겁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물리적인 증거일 뿐이다. 그것을 소음으로 남겨둘지, 아니면 삶을 부드럽게 만드는 재료로 활용할지는 오로지 그 노이즈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이용하는 방향성에 달려 있다. 세상에는 '무음의 방(Anechoic Chamber)'이라 불리는, 소리의 반사를 완전히 차단하여 정적만을 남긴 공간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채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공포를 느끼며 방을 뛰쳐나온다고 한다. 외부의 소리가 완벽히 사라진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와 혈액이 흐르는 소리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듣게 되며 극도의 불안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노이즈가 전혀 없는 완벽한 정적을 견딜 수 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지지직거리는 일상의 소음들, 마음 한구석을 늘 차지하고 있는 소소한 걱정들, 그리고 타인과의 부딪힘 속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들. 이 모든 노이즈는 우리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이 거대한 세계의 일부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오늘도 내 곁을 지키는 수많은 노이즈를 너그럽게 받아들여 본다. 그 잡음 섞인 선율이야말로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인간다운 생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소란스럽고 때로는 불안하더라도, 그 소음들 사이에서 나만의 고유한 진동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인생이라는 거대한 악보를 연주해내는 일인 것은 아닐까. 🍀
삶의 맥박 아침을 깨우는 알람 소리부터 창밖을 스치는 자동차의 소음, 이름 모를 기계들이 내뱉는 미세한 웅성거림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거대한 노이즈의 바다와 같다. 공학적으로 노이즈란 신호의 전달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전자기적 간섭이나 무작위한 변동을 의미하지만, 우리 삶에서 그것은 단순히 '원치 않는 소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노이즈는 그 성격에 따라 제각각의 얼굴을 하고 있다. 텔레비전 채널 사이의 지지직거리는 백색 소음이 있는가 하면, 비행기 엔진 소리처럼 낮은 음역대가 강조된 핑크 노이즈도 있다. 이러한 소음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주의 근본 원리인 엔트로피와 맞닿아 있다. 전자가 회로를 흐르며 발생하는 열적 요동, 대기 중의 전자기파 간섭, 혹은 물질의 마찰 등 모든 물리적 활동은 필연적으로 불규칙한 흔적을 남긴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신호란 오직 진공 상태의 이론 속에만 존재할 뿐, 무언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곧 '노이즈'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문득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에도 이와 꼭 닮은 노이즈가 존재한다. 어제의 실수에 대한 뒤늦은 후회, 내일의 불확실성이 주는 막연한 불안, 혹은 타인의 시선에 맞추려 애쓰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파열음 같은 것들이다.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지나친 갈망과 타오르는 욕망은 우리 내면의 회로에 과부하를 걸고, 그 결과 자글자글한 마음의 노이즈를 양산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음악을 대할 때와 인생을 대할 때의 태도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소리에 예민한 애호가들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잡음을 참지 못한다. 가수의 숨소리 하나, 악기의 떨림 하나를 '원음' 그대로 느끼기 위해 고가의 케이블을 사고, 진동을 방지하는 받침대를 고르며, 전기 신호를 정화하는 장치에 아낌없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신호 대 잡음비를 높여 본질적인 선율을 선명하게 듣고자 하는 그 치열한 노력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대한 교향곡을 감상할 때는 어떠한가. 우리는 인생의 본질적인 선율을 가리는 노이즈에 놀라울 정도로 무감각하다. 아니, 어쩌면 스마트폰의 끝없는 알림음과 자극적인 정보들 속에 스스로를 던져 넣으며 그 노이즈를 더 크고 화려하게 증폭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면의 원음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채, 스피커가 찢어질 듯 울려대는 잡음을 삶의 활기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인생의 노이즈를 줄여 본질에 다가가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의도적인 고요 속에 침잠하는 방식을 택한다. 모든 외부 신호를 차단하고 오로지 내면의 소리에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처음 고요 속에 앉아 있으면 처음에는 평소보다 더 큰 노이즈가 들려온다. 억눌러왔던 걱정들이 아우성치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날카로운 파동으로 마음을 긁어댄다. 그러나 그 아우성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비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그 걱정의 밑바닥에 자리한 근본적인 두려움은 무엇인지 정직하게 대면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격렬하던 파동이 잦아들고 투명한 평온이 찾아온다. 로우패스 필터를 통과한 소리처럼 날카로운 고음의 불안은 걸러지고, 낮고 단단한 삶의 중심음만 남게 되는 것이다. 노이즈가 줄어든 그 짧은 순간이야말로 내가 비로소 나로서 온전하게 존재하는 시간이다. 물론 노이즈가 언제나 제거해야 할 적은 아니다. 기술의 세계에서 노이즈는 때로 마법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대표적인 것이 '디더링(Dithering)' 기법이다. 디지털 오디오나 이미지에서 양자화 오류로 인해 생기는 딱딱한 계단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공학자들은 역설적으로 미세한 노이즈를 추가한다. 의도적으로 더해진 이 잡음은 신호 사이의 경계를 부드럽게 뭉쳐주어, 인간의 귀와 눈이 훨씬 자연스럽고 풍성한 소리와 영상을 느끼게 만든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사운드 마스킹 기술 역시 노이즈의 현명한 활용법이다. 일정한 대역의 소음을 지속적으로 발생시켜 타인의 대화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게 만드는 이 방식은, 노이즈를 통해 오히려 평화로운 개인의 공간을 확보해준다. 또한, 빗소리나 파도 소리 같은 백색 소음은 현대인들에게 훌륭한 위안의 도구가 된다. 불규칙한 듯하면서도 일정한 패턴을 지닌 그 소음들은 뇌파를 안정시키고 깊은 휴식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노이즈가 신호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호를 보호하고 치유하는 수단이 되는 셈이다. 인생의 노이즈라 할 수 있는 여러 걱정과 불안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만약 우리 삶에 아무런 불안도, 고뇌도 없다면 우리는 결코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긁어대는 그 미세한 잡음들은 지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이자,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라는 내면의 경고등이다. 때로는 그 노이즈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있기에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고 성장의 기회를 마주한다. 매끄럽고 완벽한 직선의 삶보다, 조금은 지지직거리고 울퉁불퉁한 노이즈가 섞인 삶이 더 인간답고 풍성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더링된 이미지가 더 자연스럽듯, 우리의 고뇌와 실수가 뒤섞인 삶은 오히려 완벽주의라는 딱딱한 계단 현상을 부드럽게 완화해주며 인생이라는 그림을 풍성한 색채로 채워간다. 결국 노이즈는 그 자체로 나쁘거나 좋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무언가와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뜨겁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물리적인 증거일 뿐이다. 그것을 소음으로 남겨둘지, 아니면 삶을 부드럽게 만드는 재료로 활용할지는 오로지 그 노이즈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이용하는 방향성에 달려 있다. 세상에는 '무음의 방(Anechoic Chamber)'이라 불리는, 소리의 반사를 완전히 차단하여 정적만을 남긴 공간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채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공포를 느끼며 방을 뛰쳐나온다고 한다. 외부의 소리가 완벽히 사라진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와 혈액이 흐르는 소리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듣게 되며 극도의 불안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노이즈가 전혀 없는 완벽한 정적을 견딜 수 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지지직거리는 일상의 소음들, 마음 한구석을 늘 차지하고 있는 소소한 걱정들, 그리고 타인과의 부딪힘 속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들. 이 모든 노이즈는 우리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이 거대한 세계의 일부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오늘도 내 곁을 지키는 수많은 노이즈를 너그럽게 받아들여 본다. 그 잡음 섞인 선율이야말로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인간다운 생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소란스럽고 때로는 불안하더라도, 그 소음들 사이에서 나만의 고유한 진동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인생이라는 거대한 악보를 연주해내는 일인 것은 아닐까. 🍀
2026-04-06 (No.91)
부서진 단면들이 잇는 내일 나는 한양도성 성곽마을에 살고 있다. 매일 아침 창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수백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거대한 돌들의 행렬이다. 유난히 햇살이 맑게 부서지던 오늘 아침, 나는 마치 누군가의 깊은 부름에 이끌리듯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겨울의 무겁고 긴 그림자를 걷어내고 찾아온 이른 아침의 공기는 투명했고,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성벽이 그리는 능선을 따라 흘러갔다. 성곽길을 따라 걷는 길목마다 계절의 전령사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겨우내 움츠렸던 나뭇가지 사이로 분홍빛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수채화 물감을 겹겹이 풀어놓은 듯 피어났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은 맑은 청색의 붓 터치가 투명하게 겹쳐진 한 폭의 그림 같았고, 겨울의 어두운 외투를 벗어 던지고 화사한 색감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표정에는 저마다의 생기가 가득했다. 그들의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성벽의 돌들 사이로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지는, 참으로 평화롭고 눈부신 아침이다. 한참을 걷다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은 초소 카페에 이르러 잠시 걸음을 멈춘다. 과거 군 초소였던 삼엄한 공간이 이제는 시민들의 다정한 쉼터로 변모한 이곳에서 시원한 물 한 잔을 들이킨다.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는 차가운 물 한 모금에 온몸의 감각이 일깨워지는 듯한 상쾌함을 느낀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멀리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전경과 발아래 굳건히 버티고 선 성벽을 번갈아 바라보며, 나는 이 거대한 유산이 품어온 장구한 시간의 기록을 다시금 가슴으로 읽어 내려간다. 한양도성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그것이 단순히 돌을 쌓아 만든 인공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벽의 가장 아래쪽에는 도성의 기틀을 잡았던 태초의 돌들이 단단하게 박혀 있다. 그 위로 시간이 흘러 색이 조금 바래고 모서리가 닳은 돌들이 층을 이루고 있으며, 맨 꼭대기에는 여전히 깨끗한 빛을 머금은 새 돌들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이 도성이 견뎌온 역사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차라리 처절한 생존의 기록에 가깝다. 1396년 태조가 처음 쌓아 올린 이래, 도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거대한 전란의 불길 속에서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외적의 칼날에 성벽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고, 도성의 안녕을 책임지던 성문들은 비명처럼 파편을 쏟아내야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가해진 훼손은 더욱 잔인했다. 근대화와 도시 계획이라는 명목 아래 서대문인 돈의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전차 노선을 놓기 위해 동대문과 남대문의 양옆 성벽이 무참히 잘려 나갔다. 남산 기슭의 성곽은 조선신궁을 짓기 위해 파헤쳐졌으며, 해방 이후의 혼란과 한국전쟁의 포화는 남은 성벽마저 깊은 흉터로 얼룩지게 했다. 도성의 허리는 끊겼고, 숭고했던 국가의 상징은 한때 도시의 변두리로 밀려나 방치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도성은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먹고살기 막막했던 시절, 갈 곳 없는 사람들은 성벽 아래 옹기종기 모여 판잣집을 짓고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살았다. 비록 성곽의 일부를 담장 삼아 살아가던 고단한 삶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서민들의 거친 손길이 도성을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지탱해준 보루가 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대대적인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고, 잘려 나간 구간을 다시 잇고 흩어진 성돌을 찾아 제자리로 돌려놓는 재생의 시간이 이어졌다. 무너진 토대 위에 다시 돌을 고르고 어긋난 곳을 메우며 회복하는 과정을 수백 년간 반복해온 도성은, 차가운 석재의 집합체가 아니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와 다름없다. 이 경이로운 생명력이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주 성곽길을 순찰하며 훼손된 부분을 점검하는 성곽지킴이들과 성곽마을 주민 네트워크는 개발의 이익보다 보존의 가치를 선택하며 성벽과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이러한 독창적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오랫동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왔다. 한양도성은 자연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산세에 따라 유연하게 건축된 독창적인 축성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도시의 기능과 공존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살아있는 유산이다. 비록 등재 과정에서 고비가 있었지만, 도성을 아끼고 가꾸는 시민들의 마음이 모인다면 언젠가 세계가 그 깊은 결을 온전하게 인정해 주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밤이 되면 성벽을 따라 켜지는 조명 덕분에 우리 마을은 은은한 빛의 띠를 두른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우리가 겪어낸 아픔과 다시 일어선 희망의 역사를 읽는다. 한양도성은 오늘도 누군가의 빨래가 그 근처에서 마르고 아이들이 성벽 옆 계단을 뛰어놀며 살아가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25년의 사회생활 동안 나는 때로 누군가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애쓰며 좌절하기도 했다. 특히 인사 관련 업무를 하며 성실하게 일하던 이들이 조직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다 고유한 재능을 놓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투박하게 깨지고 다시 메워진 성벽은 나에게 말한다. 조금 어긋나고 부서졌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그 흉터조차 시간이 지나면 조화로운 무늬가 된다고 말이다. 되돌아보면 사회생활하면서 가장 잘 못했을 때가 누군가의 기준에 엄격하게 나를 맞추려고 했을 때였던 것 같다. 옳다고 믿는 것이 있어도 기준에 어긋나니 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때 옳다고 믿었던 것이 최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회를 거치며 나는 각각의 다른 모습으로 깨어진 돌처럼 다름도 조화의 한 모습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오래된 속담이 있지만, 정을 맞은 돌의 모남은 징벌이 아니라 전체의 조화를 완성하는 필연적인 모습이다. 해안가의 불규칙한 절벽 선들이 모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듯,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결국 최선이다. 언젠가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 깊은 결을 뽐낼 날을 꿈꿔본다. 이 성벽이 단순히 돌벽이 아니라 수많은 이의 삶과 인내와 사랑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사람의 성이라는 사실을 세계가 알게 될 날을 기다린다. 우리의 삶이 저 성벽처럼 비바람에 깎이더라도, 결국에는 거대한 조화의 일부로 남을 수 있기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소망한다. 거칠면 거친 대로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나라는 존재의 결을 정직하게 드러내며, 무너지지 않는 생명력을 지닌 도성처럼 매일을 단단하게 살아가고 싶다.
부서진 단면들이 잇는 내일 나는 한양도성 성곽마을에 살고 있다. 매일 아침 창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수백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거대한 돌들의 행렬이다. 유난히 햇살이 맑게 부서지던 오늘 아침, 나는 마치 누군가의 깊은 부름에 이끌리듯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겨울의 무겁고 긴 그림자를 걷어내고 찾아온 이른 아침의 공기는 투명했고,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성벽이 그리는 능선을 따라 흘러갔다. 성곽길을 따라 걷는 길목마다 계절의 전령사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겨우내 움츠렸던 나뭇가지 사이로 분홍빛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수채화 물감을 겹겹이 풀어놓은 듯 피어났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은 맑은 청색의 붓 터치가 투명하게 겹쳐진 한 폭의 그림 같았고, 겨울의 어두운 외투를 벗어 던지고 화사한 색감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표정에는 저마다의 생기가 가득했다. 그들의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성벽의 돌들 사이로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지는, 참으로 평화롭고 눈부신 아침이다. 한참을 걷다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은 초소 카페에 이르러 잠시 걸음을 멈춘다. 과거 군 초소였던 삼엄한 공간이 이제는 시민들의 다정한 쉼터로 변모한 이곳에서 시원한 물 한 잔을 들이킨다.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는 차가운 물 한 모금에 온몸의 감각이 일깨워지는 듯한 상쾌함을 느낀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멀리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전경과 발아래 굳건히 버티고 선 성벽을 번갈아 바라보며, 나는 이 거대한 유산이 품어온 장구한 시간의 기록을 다시금 가슴으로 읽어 내려간다. 한양도성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그것이 단순히 돌을 쌓아 만든 인공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벽의 가장 아래쪽에는 도성의 기틀을 잡았던 태초의 돌들이 단단하게 박혀 있다. 그 위로 시간이 흘러 색이 조금 바래고 모서리가 닳은 돌들이 층을 이루고 있으며, 맨 꼭대기에는 여전히 깨끗한 빛을 머금은 새 돌들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이 도성이 견뎌온 역사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차라리 처절한 생존의 기록에 가깝다. 1396년 태조가 처음 쌓아 올린 이래, 도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거대한 전란의 불길 속에서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외적의 칼날에 성벽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고, 도성의 안녕을 책임지던 성문들은 비명처럼 파편을 쏟아내야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가해진 훼손은 더욱 잔인했다. 근대화와 도시 계획이라는 명목 아래 서대문인 돈의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전차 노선을 놓기 위해 동대문과 남대문의 양옆 성벽이 무참히 잘려 나갔다. 남산 기슭의 성곽은 조선신궁을 짓기 위해 파헤쳐졌으며, 해방 이후의 혼란과 한국전쟁의 포화는 남은 성벽마저 깊은 흉터로 얼룩지게 했다. 도성의 허리는 끊겼고, 숭고했던 국가의 상징은 한때 도시의 변두리로 밀려나 방치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도성은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먹고살기 막막했던 시절, 갈 곳 없는 사람들은 성벽 아래 옹기종기 모여 판잣집을 짓고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살았다. 비록 성곽의 일부를 담장 삼아 살아가던 고단한 삶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서민들의 거친 손길이 도성을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지탱해준 보루가 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대대적인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고, 잘려 나간 구간을 다시 잇고 흩어진 성돌을 찾아 제자리로 돌려놓는 재생의 시간이 이어졌다. 무너진 토대 위에 다시 돌을 고르고 어긋난 곳을 메우며 회복하는 과정을 수백 년간 반복해온 도성은, 차가운 석재의 집합체가 아니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와 다름없다. 이 경이로운 생명력이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주 성곽길을 순찰하며 훼손된 부분을 점검하는 성곽지킴이들과 성곽마을 주민 네트워크는 개발의 이익보다 보존의 가치를 선택하며 성벽과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이러한 독창적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오랫동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왔다. 한양도성은 자연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산세에 따라 유연하게 건축된 독창적인 축성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도시의 기능과 공존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살아있는 유산이다. 비록 등재 과정에서 고비가 있었지만, 도성을 아끼고 가꾸는 시민들의 마음이 모인다면 언젠가 세계가 그 깊은 결을 온전하게 인정해 주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밤이 되면 성벽을 따라 켜지는 조명 덕분에 우리 마을은 은은한 빛의 띠를 두른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우리가 겪어낸 아픔과 다시 일어선 희망의 역사를 읽는다. 한양도성은 오늘도 누군가의 빨래가 그 근처에서 마르고 아이들이 성벽 옆 계단을 뛰어놀며 살아가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25년의 사회생활 동안 나는 때로 누군가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애쓰며 좌절하기도 했다. 특히 인사 관련 업무를 하며 성실하게 일하던 이들이 조직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다 고유한 재능을 놓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투박하게 깨지고 다시 메워진 성벽은 나에게 말한다. 조금 어긋나고 부서졌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그 흉터조차 시간이 지나면 조화로운 무늬가 된다고 말이다. 되돌아보면 사회생활하면서 가장 잘 못했을 때가 누군가의 기준에 엄격하게 나를 맞추려고 했을 때였던 것 같다. 옳다고 믿는 것이 있어도 기준에 어긋나니 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때 옳다고 믿었던 것이 최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회를 거치며 나는 각각의 다른 모습으로 깨어진 돌처럼 다름도 조화의 한 모습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오래된 속담이 있지만, 정을 맞은 돌의 모남은 징벌이 아니라 전체의 조화를 완성하는 필연적인 모습이다. 해안가의 불규칙한 절벽 선들이 모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듯,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결국 최선이다. 언젠가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 깊은 결을 뽐낼 날을 꿈꿔본다. 이 성벽이 단순히 돌벽이 아니라 수많은 이의 삶과 인내와 사랑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사람의 성이라는 사실을 세계가 알게 될 날을 기다린다. 우리의 삶이 저 성벽처럼 비바람에 깎이더라도, 결국에는 거대한 조화의 일부로 남을 수 있기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소망한다. 거칠면 거친 대로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나라는 존재의 결을 정직하게 드러내며, 무너지지 않는 생명력을 지닌 도성처럼 매일을 단단하게 살아가고 싶다.
2026-04-05 (No.87)
고요한 용기 인생의 장면에서 본질을 꿰뚫어 보거나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찬라는 대개 가장 서늘한 이성 위에서 피어난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의 현장이든,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운명적인 선택의 기로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기술이나 방대한 지식보다 앞서 존재하는 냉정함이다. 평소라면 눈 감고도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일조차 급박한 상황이나 타인의 시선이라는 압박감 속에 놓이면 터무니없는 파편으로 부서지곤 한다. 서두름과 긴장이라는 감정의 열기가 이성의 회로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런 서늘한 실수의 기억이 있다. 오래전, 지방 출장을 위해 한밤중의 국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차체가 크게 휘청였다. 도로에 깊게 패인 포트홀을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타이어가 찢어지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실제로 핸들은 한쪽으로 무섭게 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채운 것은 합리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정체 모를 긴장과 조급함이었다. 그 상태로 나는 꽤 먼 거리를 위태롭게 달려 나갔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과 사고를 당했다는 당혹감이 엉겨 붙어 내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차가 버틸 수 있을까, 주행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만 매몰되어 핸들을 꽉 쥐고 버틸 뿐이었다.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당시 내 눈앞에는 졸음 쉼터라는 가장 안전한 도피처가 몇 번이나 지나가고 있었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긴급 출동 서비스를 불러 해결했더라면 아주 단순하고 안전하게 끝났을 일이었다. 하지만 냉정을 잃은 나는 그 당연한 선택지를 떠올리지 못한 채 밤길의 위험 속으로 자신을 계속 밀어 넣었다. 나중을 기약할 수 없는 위험한 주행을 멈추게 한 것은 기술적인 판단이 아니라, 뒤늦게 찾아온 얼얼한 자각이었다. 역사의 갈림길에서도 이처럼 사소한 평정심을 잃어 거대한 제국이나 군대의 운명을 그르친 비극은 도처에 널려 있다. 1453년, 천년 제국 비잔티움의 종말을 불러온 것은 거창한 전략적 패배가 아니었다. 콘스탄티노플 성벽 아래의 작은 보조문인 케르코포르타를 누군가 잠그는 것을 깜빡 잊은, 아주 작고도 단순한 부주의였다. 성벽을 두드리는 적군의 함성과 죽음의 공포가 그 성문을 지키던 이의 냉정을 앗아갔고, 그 열린 틈 사이로 제국의 운명은 허망하게 흘러내렸다. 단 한 번의 깊은 호흡, 단 한 번의 냉정한 확인만 있었어도 역사는 다른 문장을 썼을지도 모른다. 1788년 카란세베스 전투의 촌극 역시 마찬가지다. 어둠 속에서 들려온 정체 모를 비명과 술기운에 취한 병사들의 오해가 빚어낸 공황은, 적군을 마주하기도 전에 수천 명의 자국 군인을 서로의 총구 앞에 세웠다. 침착하게 상황을 응시할 단 한 줄기의 냉정함만 있었어도 그 밤의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의 열기가 눈을 가릴 때, 인간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길 위에서도 길을 잃고 만다. 포트홀을 밟은 뒤 내가 보냈던 그 위험한 시간들처럼, 거대한 전쟁터에서도 승패를 가르는 것은 무기의 화력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였다. 이러한 인간의 취약함을 직시할 때, 러디어드 키플링이 그의 시 만약(If)에서 건넨 나직한 권고는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만약 모든 사람이 이성을 잃고 너를 비난할 때 너만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만약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그들의 의심마저 포용하며 너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키플링이 노래한 평정심은 단순히 감정이 메마른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비난과 의심이라는 외부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서늘하게 지켜내는 고결한 의지의 형태다. 세상이 소란스럽게 너를 흔들지라도, 그 소란을 내면의 요새 안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결연한 선언인 셈이다. 나는 이 냉정의 원리를 전자 부품인 펠티어 소자라는 작은 부품의 작동 방식에서 느끼기도 한다. 전류를 흘리면 한쪽 면은 얼음처럼 차가워지지만, 그 반대편 면은 맹렬한 기세로 뜨거워지는 이 소자는 우리 마음의 구조를 닮았다.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의 열기를 효과적으로 배출해 주어야 한다. 만약 반대편의 열기를 식혀줄 방열판이 없다면, 그 뜨거움은 다시 역류하여 냉각면을 녹이고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킨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강조했던 내면의 요새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외부의 사건은 그 자체로 우리를 해치지 못한다. 다만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판단이 뜨겁게 달궈질 때 고통이 시작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방열판이 필요하다. 끓어오르는 긴장과 두려움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유의 여백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도록 길을 내어주어야 한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깊은 명상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정돈된 일상의 루틴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복잡한 논리의 질서를 세우고 정교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며 사유의 뼈대를 세우는 과정이 바로 그 방열판이다. 내면의 열기를 미려하게 배출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키플링이 말한 것처럼 모든 이가 이성을 잃은 순간에도 고요히 나를 믿으며 걸어갈 수 있다. 밤길의 포트홀 사고에서 내가 놓쳤던 졸음 쉼터는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되찾았어야 할 냉정함의 공간이었고, 내 안의 열기를 식혀줄 방열판이었다. 냉정함이란 뜨거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뜨거움을 견디고 다스려 가장 차가운 진실에 도달하는 기술이다. 케르코포르타의 열린 문을 잊지 않기 위해, 카란세베스의 헛된 비명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늘 내 마음의 방열판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인생이라는 해설지 없는 시험지 앞에서 때로는 오답을 쓰고 때로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겠지만, 내면의 서늘한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펜을 들 수 있다. 뜨거움을 인정하되 그것에 삼켜지지 않는 삶, 그 여백의 공간 속에서 비로소 한 사람으로서 온전해지는 길을 나는 오늘도 조용히 탐구해 본다. 가장 뜨거운 고통의 한복판에서도 가장 차가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그 단단한 요새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깃들기를 소망하며.
고요한 용기 인생의 장면에서 본질을 꿰뚫어 보거나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찬라는 대개 가장 서늘한 이성 위에서 피어난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의 현장이든,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운명적인 선택의 기로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기술이나 방대한 지식보다 앞서 존재하는 냉정함이다. 평소라면 눈 감고도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일조차 급박한 상황이나 타인의 시선이라는 압박감 속에 놓이면 터무니없는 파편으로 부서지곤 한다. 서두름과 긴장이라는 감정의 열기가 이성의 회로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런 서늘한 실수의 기억이 있다. 오래전, 지방 출장을 위해 한밤중의 국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차체가 크게 휘청였다. 도로에 깊게 패인 포트홀을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타이어가 찢어지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실제로 핸들은 한쪽으로 무섭게 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채운 것은 합리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정체 모를 긴장과 조급함이었다. 그 상태로 나는 꽤 먼 거리를 위태롭게 달려 나갔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과 사고를 당했다는 당혹감이 엉겨 붙어 내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차가 버틸 수 있을까, 주행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만 매몰되어 핸들을 꽉 쥐고 버틸 뿐이었다.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당시 내 눈앞에는 졸음 쉼터라는 가장 안전한 도피처가 몇 번이나 지나가고 있었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긴급 출동 서비스를 불러 해결했더라면 아주 단순하고 안전하게 끝났을 일이었다. 하지만 냉정을 잃은 나는 그 당연한 선택지를 떠올리지 못한 채 밤길의 위험 속으로 자신을 계속 밀어 넣었다. 나중을 기약할 수 없는 위험한 주행을 멈추게 한 것은 기술적인 판단이 아니라, 뒤늦게 찾아온 얼얼한 자각이었다. 역사의 갈림길에서도 이처럼 사소한 평정심을 잃어 거대한 제국이나 군대의 운명을 그르친 비극은 도처에 널려 있다. 1453년, 천년 제국 비잔티움의 종말을 불러온 것은 거창한 전략적 패배가 아니었다. 콘스탄티노플 성벽 아래의 작은 보조문인 케르코포르타를 누군가 잠그는 것을 깜빡 잊은, 아주 작고도 단순한 부주의였다. 성벽을 두드리는 적군의 함성과 죽음의 공포가 그 성문을 지키던 이의 냉정을 앗아갔고, 그 열린 틈 사이로 제국의 운명은 허망하게 흘러내렸다. 단 한 번의 깊은 호흡, 단 한 번의 냉정한 확인만 있었어도 역사는 다른 문장을 썼을지도 모른다. 1788년 카란세베스 전투의 촌극 역시 마찬가지다. 어둠 속에서 들려온 정체 모를 비명과 술기운에 취한 병사들의 오해가 빚어낸 공황은, 적군을 마주하기도 전에 수천 명의 자국 군인을 서로의 총구 앞에 세웠다. 침착하게 상황을 응시할 단 한 줄기의 냉정함만 있었어도 그 밤의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의 열기가 눈을 가릴 때, 인간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길 위에서도 길을 잃고 만다. 포트홀을 밟은 뒤 내가 보냈던 그 위험한 시간들처럼, 거대한 전쟁터에서도 승패를 가르는 것은 무기의 화력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였다. 이러한 인간의 취약함을 직시할 때, 러디어드 키플링이 그의 시 만약(If)에서 건넨 나직한 권고는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만약 모든 사람이 이성을 잃고 너를 비난할 때 너만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만약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그들의 의심마저 포용하며 너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키플링이 노래한 평정심은 단순히 감정이 메마른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비난과 의심이라는 외부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서늘하게 지켜내는 고결한 의지의 형태다. 세상이 소란스럽게 너를 흔들지라도, 그 소란을 내면의 요새 안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결연한 선언인 셈이다. 나는 이 냉정의 원리를 전자 부품인 펠티어 소자라는 작은 부품의 작동 방식에서 느끼기도 한다. 전류를 흘리면 한쪽 면은 얼음처럼 차가워지지만, 그 반대편 면은 맹렬한 기세로 뜨거워지는 이 소자는 우리 마음의 구조를 닮았다.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의 열기를 효과적으로 배출해 주어야 한다. 만약 반대편의 열기를 식혀줄 방열판이 없다면, 그 뜨거움은 다시 역류하여 냉각면을 녹이고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킨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강조했던 내면의 요새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외부의 사건은 그 자체로 우리를 해치지 못한다. 다만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판단이 뜨겁게 달궈질 때 고통이 시작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방열판이 필요하다. 끓어오르는 긴장과 두려움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유의 여백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도록 길을 내어주어야 한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깊은 명상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정돈된 일상의 루틴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복잡한 논리의 질서를 세우고 정교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며 사유의 뼈대를 세우는 과정이 바로 그 방열판이다. 내면의 열기를 미려하게 배출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키플링이 말한 것처럼 모든 이가 이성을 잃은 순간에도 고요히 나를 믿으며 걸어갈 수 있다. 밤길의 포트홀 사고에서 내가 놓쳤던 졸음 쉼터는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되찾았어야 할 냉정함의 공간이었고, 내 안의 열기를 식혀줄 방열판이었다. 냉정함이란 뜨거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뜨거움을 견디고 다스려 가장 차가운 진실에 도달하는 기술이다. 케르코포르타의 열린 문을 잊지 않기 위해, 카란세베스의 헛된 비명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늘 내 마음의 방열판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인생이라는 해설지 없는 시험지 앞에서 때로는 오답을 쓰고 때로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겠지만, 내면의 서늘한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펜을 들 수 있다. 뜨거움을 인정하되 그것에 삼켜지지 않는 삶, 그 여백의 공간 속에서 비로소 한 사람으로서 온전해지는 길을 나는 오늘도 조용히 탐구해 본다. 가장 뜨거운 고통의 한복판에서도 가장 차가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그 단단한 요새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깃들기를 소망하며.
2026-04-03 (No.86)
상식이란 이름의 색안경 우리는 저마다의 눈에 상식이라는 이름의 색안경을 하나씩 걸치고 세상을 바라본다. 오랜 시간 겹겹이 쌓인 경험과 관습으로 빚어진 이 안경은 복잡한 세상을 빠르게 판단하게 돕는 유용한 도구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진실의 민얼굴을 왜곡하는 무서운 장벽이 되기도 한다. 내가 보고 있는 색이 세상의 유일한 빛깔이라 믿는 오만함은, 종종 우리를 사유의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내가 아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즉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나직한 고백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에게도 그런 사소하지만 당혹스러운 깨달음의 순간이 있었다. 고춧가루 보관법에 관한 일이다. 나는 평생 고춧가루란 태양 아래 바짝 말려 수분이 하나도 없는 상태이기에, 그저 상온의 그늘진 곳에 두면 그만이라고 믿어왔다. 바스라질 듯 건조한 그 가루가 상할 리 없다는 나만의 논리는 꽤 확고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그녀는 고춧가루를 늘 꼼꼼하게 밀봉하여 냉장고 깊숙한 곳이나 냉동실에 갈무리해 두었다. 매번 요리할 때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무거운 통을 꺼내 쓰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굳이 저렇게까지 불편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혀를 차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고춧가루 보관의 과학적 원리를 다루는 것을 보게 되었다. 고춧가루는 습기에 극도로 취약하며, 상온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 독소인 아플라톡신이 발생하기 쉽다는 사실, 그리고 공기와 빛에 노출되면 산화가 일어나 맛과 색이 변질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평생 상식이라 믿어왔던 관습이 사실은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오해였음을 깨닫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얼얼함이 몰려왔다. 아내의 번거로운 손길은 불편함이 아니라, 가족의 식탁을 지키기 위한 가장 올바른 정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일상 도처에 숨어 있다. 이른 봄, 길가의 가로수들을 앙상하게 잘라내는 전지 작업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흔히 나무를 학대한다며 눈살을 짓푸리곤 한다. 하지만 그 모진 칼질은 사실 나무의 통풍을 돕고 병충해를 예방하며, 영양분을 가장 필요한 곳으로 집중시켜 이듬해 더 푸른 잎을 틔우게 하려는 고도의 배려다. 겉으로 보이는 파괴가 실제로는 생존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행위인 셈이다. 초콜릿 표면이 하얗게 변하는 블룸 현상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곰팡이라 오해하며 버리지만, 사실은 온도 변화로 인해 지방 성분이 표면으로 올라온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다. 오히려 첨가물이 적은 고품질의 증거일 수도 있는 그 하얀 가루를 보고 우리는 상했다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곤 한다. 역사의 페이지를 넘겨보면, 이러한 집단적 오만과 상식이라는 이름의 횡포는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거나 인류의 발전을 수십 년씩 늦추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헝가리의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의 사례는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시 병원의 산부인과에서는 산모들이 원인 모를 산욕열로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이 시신을 해부하던 손으로 씻지도 않은 채 산모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입자가 옮겨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단순히 진료 전 손을 씻는 것만으로도 산모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의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신성한 의사의 손이 병을 옮기는 불결한 매개체일 리 없다는 선민의식과 상식이 그들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동료 의사들은 그를 미치광이 취급하며 병원 밖으로 내쫓았고, 제멜바이스는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훗날 미생물학이 발전하며 그의 주장이 가장 위대한 진리였음이 밝혀졌을 때, 인류는 이미 수많은 산모를 허망하게 떠나보낸 뒤였다. 대륙이동설을 주장했던 알프레드 베게너의 삶 역시 상식이라는 편견과 싸운 고독한 투쟁이었다. 기상학자였던 그는 세계 지도의 해안선 모양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착안해, 과거에 거대한 하나의 대륙인 판게아가 존재했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지질학자들은 거대한 대륙이 움직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기상학자가 전공 밖의 영역을 침범한다며 그를 조롱했고, 베게너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그린란드의 매서운 눈보라 속을 헤매다 고립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후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판 구조론이 정립되며 그의 미친 소리는 현대 지질학의 근간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원자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려 했던 루드비히 볼츠만의 비극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는 열역학 제2법칙을 확률론적으로 접근하며 엔트로피 공식을 유도해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을 과학적 실체로 인정하던 당시 물리학계의 거두들은 보이지 않는 원자의 운동으로 세상을 설명하려는 볼츠만을 맹렬히 공격했다. 특히 에른스트 마흐와 빌헬름 오스트발트 같은 학자들의 인격 모독에 가까운 비난은 볼츠만을 극심한 우울증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그는 스스로 생을 등졌다. 그가 죽고 불과 몇 년 뒤,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 논문을 통해 원자의 실재가 증명되었을 때, 세상은 한 위대한 천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신들의 무지를 뒤늦게 참회해야 했다. 이처럼 역사는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상식들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모래성인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왔다. 누군가 내뱉는 이상하고 잘못되어 보이는 말속에,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래의 진실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걸치고 있는 상식이라는 이름의 색안경은 세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도구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진실의 눈부신 빛을 가로막는 어두운 가림막일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가슴 한구석에 새겨두어야 한다. 확신의 높이를 낮추고 타인의 낯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 그것은 단순히 겸손함의 표현을 넘어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용기 있는 탐구의 자세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사유를 받아들일 넉넉한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아내의 냉장고 속 고춧가루 통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보관법 그 이상의 철학이었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 타인의 행동을 재단하지 않고, 그 이면에 숨은 논리와 진심을 들여다보려 노력할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미려하고 깊어질 것이다. 언제나 진리 옆에는 의심이 나란히 앉아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것들이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사유의 창을 열어두고 싶다. 누군가의 낯선 주장 앞에서 그럴 리 없어라고 단정 짓기보다 혹시 내가 모르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라고 자문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그런 배려와 노력이 모일 때, 비로소 세상은 오해의 그늘을 벗어나 더 맑고 투명한 진실의 빛으로 채워질 것이라 믿는다. 오늘 내 마음의 밭에 심어야 할 사유의 씨앗은, 바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건한 물음 한 알일지도 모르니.
상식이란 이름의 색안경 우리는 저마다의 눈에 상식이라는 이름의 색안경을 하나씩 걸치고 세상을 바라본다. 오랜 시간 겹겹이 쌓인 경험과 관습으로 빚어진 이 안경은 복잡한 세상을 빠르게 판단하게 돕는 유용한 도구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진실의 민얼굴을 왜곡하는 무서운 장벽이 되기도 한다. 내가 보고 있는 색이 세상의 유일한 빛깔이라 믿는 오만함은, 종종 우리를 사유의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내가 아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즉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나직한 고백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에게도 그런 사소하지만 당혹스러운 깨달음의 순간이 있었다. 고춧가루 보관법에 관한 일이다. 나는 평생 고춧가루란 태양 아래 바짝 말려 수분이 하나도 없는 상태이기에, 그저 상온의 그늘진 곳에 두면 그만이라고 믿어왔다. 바스라질 듯 건조한 그 가루가 상할 리 없다는 나만의 논리는 꽤 확고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그녀는 고춧가루를 늘 꼼꼼하게 밀봉하여 냉장고 깊숙한 곳이나 냉동실에 갈무리해 두었다. 매번 요리할 때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무거운 통을 꺼내 쓰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굳이 저렇게까지 불편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혀를 차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고춧가루 보관의 과학적 원리를 다루는 것을 보게 되었다. 고춧가루는 습기에 극도로 취약하며, 상온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 독소인 아플라톡신이 발생하기 쉽다는 사실, 그리고 공기와 빛에 노출되면 산화가 일어나 맛과 색이 변질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평생 상식이라 믿어왔던 관습이 사실은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오해였음을 깨닫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얼얼함이 몰려왔다. 아내의 번거로운 손길은 불편함이 아니라, 가족의 식탁을 지키기 위한 가장 올바른 정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일상 도처에 숨어 있다. 이른 봄, 길가의 가로수들을 앙상하게 잘라내는 전지 작업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흔히 나무를 학대한다며 눈살을 짓푸리곤 한다. 하지만 그 모진 칼질은 사실 나무의 통풍을 돕고 병충해를 예방하며, 영양분을 가장 필요한 곳으로 집중시켜 이듬해 더 푸른 잎을 틔우게 하려는 고도의 배려다. 겉으로 보이는 파괴가 실제로는 생존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행위인 셈이다. 초콜릿 표면이 하얗게 변하는 블룸 현상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곰팡이라 오해하며 버리지만, 사실은 온도 변화로 인해 지방 성분이 표면으로 올라온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다. 오히려 첨가물이 적은 고품질의 증거일 수도 있는 그 하얀 가루를 보고 우리는 상했다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곤 한다. 역사의 페이지를 넘겨보면, 이러한 집단적 오만과 상식이라는 이름의 횡포는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거나 인류의 발전을 수십 년씩 늦추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헝가리의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의 사례는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시 병원의 산부인과에서는 산모들이 원인 모를 산욕열로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이 시신을 해부하던 손으로 씻지도 않은 채 산모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입자가 옮겨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단순히 진료 전 손을 씻는 것만으로도 산모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의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신성한 의사의 손이 병을 옮기는 불결한 매개체일 리 없다는 선민의식과 상식이 그들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동료 의사들은 그를 미치광이 취급하며 병원 밖으로 내쫓았고, 제멜바이스는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훗날 미생물학이 발전하며 그의 주장이 가장 위대한 진리였음이 밝혀졌을 때, 인류는 이미 수많은 산모를 허망하게 떠나보낸 뒤였다. 대륙이동설을 주장했던 알프레드 베게너의 삶 역시 상식이라는 편견과 싸운 고독한 투쟁이었다. 기상학자였던 그는 세계 지도의 해안선 모양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착안해, 과거에 거대한 하나의 대륙인 판게아가 존재했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지질학자들은 거대한 대륙이 움직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기상학자가 전공 밖의 영역을 침범한다며 그를 조롱했고, 베게너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그린란드의 매서운 눈보라 속을 헤매다 고립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후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판 구조론이 정립되며 그의 미친 소리는 현대 지질학의 근간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원자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려 했던 루드비히 볼츠만의 비극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는 열역학 제2법칙을 확률론적으로 접근하며 엔트로피 공식을 유도해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을 과학적 실체로 인정하던 당시 물리학계의 거두들은 보이지 않는 원자의 운동으로 세상을 설명하려는 볼츠만을 맹렬히 공격했다. 특히 에른스트 마흐와 빌헬름 오스트발트 같은 학자들의 인격 모독에 가까운 비난은 볼츠만을 극심한 우울증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그는 스스로 생을 등졌다. 그가 죽고 불과 몇 년 뒤, 아인슈타인의 브라운 운동 논문을 통해 원자의 실재가 증명되었을 때, 세상은 한 위대한 천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신들의 무지를 뒤늦게 참회해야 했다. 이처럼 역사는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상식들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모래성인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왔다. 누군가 내뱉는 이상하고 잘못되어 보이는 말속에,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래의 진실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걸치고 있는 상식이라는 이름의 색안경은 세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도구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진실의 눈부신 빛을 가로막는 어두운 가림막일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가슴 한구석에 새겨두어야 한다. 확신의 높이를 낮추고 타인의 낯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 그것은 단순히 겸손함의 표현을 넘어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용기 있는 탐구의 자세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사유를 받아들일 넉넉한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아내의 냉장고 속 고춧가루 통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보관법 그 이상의 철학이었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 타인의 행동을 재단하지 않고, 그 이면에 숨은 논리와 진심을 들여다보려 노력할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미려하고 깊어질 것이다. 언제나 진리 옆에는 의심이 나란히 앉아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것들이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사유의 창을 열어두고 싶다. 누군가의 낯선 주장 앞에서 그럴 리 없어라고 단정 짓기보다 혹시 내가 모르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라고 자문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그런 배려와 노력이 모일 때, 비로소 세상은 오해의 그늘을 벗어나 더 맑고 투명한 진실의 빛으로 채워질 것이라 믿는다. 오늘 내 마음의 밭에 심어야 할 사유의 씨앗은, 바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건한 물음 한 알일지도 모르니.
2026-04-02 (No.85)
변화 앞에서의 선택 익숙한 길을 벗어나 낯선 숲으로 들어설 때, 인간의 본능은 설렘보다 경계심을 먼저 깨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 부른다. 현재의 상태가 객관적으로 최선이 아닐지라도, 변화를 통해 얻을 이익보다 잃을지 모를 손실을 훨씬 크게 느끼는 심리적 방어 기제다. 특히 자신이 일궈온 과거의 성취가 찬란할수록, 인간은 그 성공의 기억 안에 머물고자 하는 강력한 중력에 사로잡힌다. 뇌 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변화는 곧 '불확실성'이며,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어둠 속에서 정체 모를 소리가 들릴 때 몸이 굳어버리듯, 사람들은 삶의 궤도가 수정될 조짐이 보이면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익숙함이라는 안락한 감옥 안에서 우리는 변화라는 파도가 지나가기만을 숨죽여 기다리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되짚어보면, 인류의 위대한 도약은 언제나 그 두려운 변화의 한복판에서 시작되었다. 변화를 거부하고 멈춰 선 이들에게 변화는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었으나, 그 변화를 기회로 재정의한 이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오늘날 소비재 기업의 대명사가 된 'P&G(프록터 앤 갬블)'다. 1837년, 영국 출신의 양초 제조자 윌리엄 프록터와 아일랜드 출신의 비누 제조자 제임스 갬블이 손을 잡았을 때, 그들의 앞날은 탄탄대로였다. 특히 남북전쟁 당시 북군에 양초와 비누를 독점 공급하며 그들은 이미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린 거대 기업으로 우뚝 서 있었다. 밤을 밝히는 양초는 당시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존의 도구였고, P&G는 그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회사는 유례없는 거대한 그림자에 직면했다. 내부적으로는 자신들이 쌓아온 양초의 제국이 무너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이미 막대한 부와 명성을 쌓은 그들로서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P&G의 경영진은 자신들의 본질을 '양초를 만드는 일'에 가두지 않았다. 그들은 양초와 비누의 원료가 '유지(기름)'로 같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인류가 밤을 밝히는 방식은 변할지언정 깨끗해지고자 하는 '세정(Cleaning)'의 욕구는 영원할 것임을 간파했다. 그들은 주력 사업을 양초에서 비누와 소비재로 과감히 옮겼고, 이 유연한 전환이 오늘날 180년 넘게 세계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글로벌 기업의 토대가 되었다. 빛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한 '스탠더드 오일'의 사례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존 D. 록펠러가 세운 이 회사는 당시 미국 석유 시장의 90%를 장악한, 말 그대로 '석유 그 자체'인 기업이었다. 그들의 거대한 부는 집집마다 밤을 밝히던 등유 램프에서 나왔다. 전기가 보급되고 전구가 거리를 밝히기 시작했을 때, 스탠더드 오일이 입은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등유 시장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위기 앞에서 그들은 멈춰 서서 몰락을 기다릴 수도 있었다. 이미 세계 최고의 부를 가졌기에 변화라는 도박을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업(業)을 '등유 판매'가 아닌 '에너지 공급'으로 재정의했다. 때마침 내연기관이 발명되고 자동차 산업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등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 정도로 취급받던 휘발유에 주목했다. 빛을 파는 회사에서 동력을 파는 회사로 스스로를 변모시킨 것이다. 만약 그들이 끝까지 램프의 불꽃만을 고집하며 과거의 독점적 지위에 안주했다면,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이름은 전구의 불빛 아래에서 가장 먼저 자취를 감춘 역사의 파편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통찰의 중요성은 19세기 미국 경제를 호령하던 철도 회사들의 몰락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철도는 대륙을 잇는 유일한 혈관이었고, 철도 재벌들은 세상의 모든 물자와 사람을 옮기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운송업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테오도르 레빗 교수가 지적했듯, 그들의 비극은 스스로를 '철도 사업자'로만 규정한 데서 시작되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본질을 '사람과 물자를 효율적으로 옮기는 서비스'로 정의했다면, 자동차와 비행기라는 새로운 운송 수단이 등장했을 때 그것들을 적대시하는 대신 자신의 영역으로 흡수했을 것이다. 거대한 철길이라는 과거의 성공에 묶여 눈앞의 변화를 외면한 결과, 그들은 결국 박물관의 유물로 남게 되었다. 이처럼 변화는 우리가 무엇을 파는가, 혹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를 다시 묻게 하는 질문이다. 변화에 저항하며 낡은 방식에 매달리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손바닥으로 막으려는 것과 같다. 과거에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을지라도, 그 성공의 문법이 미래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비워내고 버릴 줄 아는 용기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기회의 지평선을 마주할 수 있다. 위기(危機)라는 단어 속에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듯, 변화는 기존의 나를 허물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의 통로다. 나 역시 다가올 새로운 변화들 앞에서 늘 당당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익숙한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때, 그것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비워진 손바닥 위에 어떤 새로운 사유의 씨앗을 심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변화는 결코 우리를 파괴하려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가진 낡은 껍데기를 벗겨내고 더 단단한 내면의 알맹이를 드러내려 할 뿐이다. 그 필연적인 흐름 앞에서 뒷걸음질 치지 않고, 담담히 고개를 들어 미지의 시간을 마주하는 용기. 그 용기가 있다면 어떤 변화의 파도가 몰아쳐도 내 삶의 온도는 결코 식지 않을 것이다. 역사 속의 위대한 기업들이 그러했듯, 나 또한 변화라는 거울에 내 삶의 본질을 비추어보며 매일 조금씩 더 미려하고 단단하게 여물어 가기를 나직이 소망해 본다.
변화 앞에서의 선택 익숙한 길을 벗어나 낯선 숲으로 들어설 때, 인간의 본능은 설렘보다 경계심을 먼저 깨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 부른다. 현재의 상태가 객관적으로 최선이 아닐지라도, 변화를 통해 얻을 이익보다 잃을지 모를 손실을 훨씬 크게 느끼는 심리적 방어 기제다. 특히 자신이 일궈온 과거의 성취가 찬란할수록, 인간은 그 성공의 기억 안에 머물고자 하는 강력한 중력에 사로잡힌다. 뇌 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변화는 곧 '불확실성'이며,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어둠 속에서 정체 모를 소리가 들릴 때 몸이 굳어버리듯, 사람들은 삶의 궤도가 수정될 조짐이 보이면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익숙함이라는 안락한 감옥 안에서 우리는 변화라는 파도가 지나가기만을 숨죽여 기다리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되짚어보면, 인류의 위대한 도약은 언제나 그 두려운 변화의 한복판에서 시작되었다. 변화를 거부하고 멈춰 선 이들에게 변화는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었으나, 그 변화를 기회로 재정의한 이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오늘날 소비재 기업의 대명사가 된 'P&G(프록터 앤 갬블)'다. 1837년, 영국 출신의 양초 제조자 윌리엄 프록터와 아일랜드 출신의 비누 제조자 제임스 갬블이 손을 잡았을 때, 그들의 앞날은 탄탄대로였다. 특히 남북전쟁 당시 북군에 양초와 비누를 독점 공급하며 그들은 이미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린 거대 기업으로 우뚝 서 있었다. 밤을 밝히는 양초는 당시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존의 도구였고, P&G는 그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회사는 유례없는 거대한 그림자에 직면했다. 내부적으로는 자신들이 쌓아온 양초의 제국이 무너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이미 막대한 부와 명성을 쌓은 그들로서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P&G의 경영진은 자신들의 본질을 '양초를 만드는 일'에 가두지 않았다. 그들은 양초와 비누의 원료가 '유지(기름)'로 같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인류가 밤을 밝히는 방식은 변할지언정 깨끗해지고자 하는 '세정(Cleaning)'의 욕구는 영원할 것임을 간파했다. 그들은 주력 사업을 양초에서 비누와 소비재로 과감히 옮겼고, 이 유연한 전환이 오늘날 180년 넘게 세계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글로벌 기업의 토대가 되었다. 빛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한 '스탠더드 오일'의 사례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존 D. 록펠러가 세운 이 회사는 당시 미국 석유 시장의 90%를 장악한, 말 그대로 '석유 그 자체'인 기업이었다. 그들의 거대한 부는 집집마다 밤을 밝히던 등유 램프에서 나왔다. 전기가 보급되고 전구가 거리를 밝히기 시작했을 때, 스탠더드 오일이 입은 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등유 시장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위기 앞에서 그들은 멈춰 서서 몰락을 기다릴 수도 있었다. 이미 세계 최고의 부를 가졌기에 변화라는 도박을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업(業)을 '등유 판매'가 아닌 '에너지 공급'으로 재정의했다. 때마침 내연기관이 발명되고 자동차 산업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등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 정도로 취급받던 휘발유에 주목했다. 빛을 파는 회사에서 동력을 파는 회사로 스스로를 변모시킨 것이다. 만약 그들이 끝까지 램프의 불꽃만을 고집하며 과거의 독점적 지위에 안주했다면,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이름은 전구의 불빛 아래에서 가장 먼저 자취를 감춘 역사의 파편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통찰의 중요성은 19세기 미국 경제를 호령하던 철도 회사들의 몰락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철도는 대륙을 잇는 유일한 혈관이었고, 철도 재벌들은 세상의 모든 물자와 사람을 옮기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운송업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테오도르 레빗 교수가 지적했듯, 그들의 비극은 스스로를 '철도 사업자'로만 규정한 데서 시작되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본질을 '사람과 물자를 효율적으로 옮기는 서비스'로 정의했다면, 자동차와 비행기라는 새로운 운송 수단이 등장했을 때 그것들을 적대시하는 대신 자신의 영역으로 흡수했을 것이다. 거대한 철길이라는 과거의 성공에 묶여 눈앞의 변화를 외면한 결과, 그들은 결국 박물관의 유물로 남게 되었다. 이처럼 변화는 우리가 무엇을 파는가, 혹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를 다시 묻게 하는 질문이다. 변화에 저항하며 낡은 방식에 매달리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손바닥으로 막으려는 것과 같다. 과거에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을지라도, 그 성공의 문법이 미래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비워내고 버릴 줄 아는 용기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기회의 지평선을 마주할 수 있다. 위기(危機)라는 단어 속에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듯, 변화는 기존의 나를 허물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의 통로다. 나 역시 다가올 새로운 변화들 앞에서 늘 당당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익숙한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때, 그것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비워진 손바닥 위에 어떤 새로운 사유의 씨앗을 심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변화는 결코 우리를 파괴하려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가진 낡은 껍데기를 벗겨내고 더 단단한 내면의 알맹이를 드러내려 할 뿐이다. 그 필연적인 흐름 앞에서 뒷걸음질 치지 않고, 담담히 고개를 들어 미지의 시간을 마주하는 용기. 그 용기가 있다면 어떤 변화의 파도가 몰아쳐도 내 삶의 온도는 결코 식지 않을 것이다. 역사 속의 위대한 기업들이 그러했듯, 나 또한 변화라는 거울에 내 삶의 본질을 비추어보며 매일 조금씩 더 미려하고 단단하게 여물어 가기를 나직이 소망해 본다.
2026-04-02 (No.84)
영원하지 않기에 더 가치 있는 것들 시간의 강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고들 하지만, 그 강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는 저마다 다르다. 최근 우연히 접하게 된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은 나에게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지독하리만큼 시리고도 아름다운 감각으로 치환해 주었다. 이야기는 여느 용사담과는 달리, 마왕을 물리친 이후의 평화로운 세상에서 시작된다. 천 년 넘는 세월을 사는 엘프 마법사 프리렌에게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떠났던 10년의 세월은 생의 고작 백 분의 일에도 미치지 않는 짧은 찰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함께했던 인간 동료들이 늙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녀는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10년이라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생의 전부를 건 치열한 투쟁이자 가장 빛나는 계절이었음을 말이다. 천 년, 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의 지평선 위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밤하늘을 스치는 유성보다도 짧은 섬광일지 모른다. 프리렌이 과거를 회상하며 다시 길을 떠나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유한성이 빚어내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은 영원할 수 없기에 사랑하고, 영원할 수 없기에 눈물을 흘리며, 영원할 수 없기에 오늘 하루를 이토록 뜨겁게 살아내려 애쓰는 존재다. 만약 우리에게 신과 같은 불사의 삶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과연 누군가의 손을 그토록 절박하게 잡았을까. 혹은 지는 꽃잎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연민을 느꼈을까. 영원하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 아니라 거대한 침체일지도 모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통로를 걷는 이에게는 지금 이 순간의 발걸음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늘 하지 못한 말은 내일 하면 되고, 올해 피우지 못한 꽃은 내년에 다시 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이 유한하다는 명백한 사실은 우리에게 매 순간 선택과 집중을 강요한다. 지금 이 사람이 내 곁에 있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오늘 내가 쏟은 정열은 내 생애 단 한 번뿐인 농도로 기록된다. 이러한 '단 한 번뿐'이라는 제약이 비로소 삶에 무게감을 부여하고, 투박한 일상을 보석처럼 빛나는 가치로 승화시킨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순간이 오면 그 시간이 영원히 멈춰 서기를 갈망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마주 앉은 저녁 식사,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거실을 채우던 오후, 혹은 홀로 고요히 즐기던 완벽한 산책의 시간까지. 우리는 그 찰나의 기쁨을 영원이라는 박제 속에 가두고 싶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행복이 우리를 그토록 감동하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사라질 운명이기 때문이다. 봄날의 벚꽃이 그토록 찬란하게 느껴지는 것은 흐드러지게 피어난 지 며칠 만에 꽃비가 되어 흩어지기 때문이며, 노을의 붉은 빛이 가슴을 울리는 것은 곧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출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삶이 만 년쯤 지속된다면, 우리는 아마 사랑하는 법조차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안일함은 이별의 애틋함을 지워버릴 것이고, 끝없는 시간의 더께는 열정의 불꽃을 식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그 시간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생체 조각임을 알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뒤편에 서 있기에, 우리는 비로소 앞을 비추는 작은 촛불의 온기에 감사하며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게 된다. 프리렌은 길 위에서 과거 동료들이 남긴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멈춰 서서 그들의 마음을 뒤늦게 읽어내려 노력한다. 이미 곁에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추적하며 그녀가 배운 것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이들이 그 짧은 생애 동안 얼마나 밀도 높게 서로를 아꼈는가에 대한 경이로움이었다. 인간은 찰나를 살면서도 그 찰나 속에 영원보다 깊은 의미를 채워 넣을 줄 아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들의 삶은 비록 짧았으나, 그들이 남긴 사랑의 조각들은 천 년을 사는 엘프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남아 그녀의 차가웠던 세계를 온기로 채워주었다. 행복이란 어쩌면 영원할 수 없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머물게 하려 하면 바래버리는 그 성질이야말로 행복이 가진 본질적인 아름다움이다. 영원하지 않기에 우리는 행복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며, 그 짧은 순간을 기억의 심해에 깊숙이 묻어두고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완벽한 영원은 죽음과 다름없으나, 부서지기 쉬운 찰나의 행복은 우리를 매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삶의 마디마디에서 만나는 소중한 것들이 언젠가 사라질 것을 예감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들을 온전히 사랑할 준비가 된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내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숨소리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본다. 이것들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이토록 눈물겹게 아름답고, 그래서 나는 오늘을 다시 한번 뜨겁게 살아낼 용기를 얻는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는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머무는 동안 최선을 다해 찬미하고 누리는 일임을, 나는 이 짧고도 긴 여정 위에서 다시금 가슴에 새긴다. 생의 온도를 높여가는 것은 끝없는 영원을 꿈꾸는 욕망이 아니라, 지금 이 찰나의 반짝임이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아련한 자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이러한 상념의 끝이 봄의 꼬리에 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눈부시게 찬란했던 이 계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속절없이 흐르는 것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장 빛나는 순간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봄의 운명은 우리 삶의 유한함을 가장 가깝게 투영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봄의 끝자락에서 내게 허락된 이 짧은 마디를 슬퍼하기보다, 남은 향기를 마음껏 누리고 만끽하려 한다.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고개를 숙이기보다, 그 꽃이 머물다 간 자리에 맺힐 연둣빛 생명력을 축복하며 다가올 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봄을 떠나보낼 때 우리는 굳이 마음 아파할 필요가 없다. 계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며, 우리에겐 다시 돌아올 봄이 있다는 약속이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봄이 떠난 빈자리에는 치열한 여름의 녹음과 고요한 가을의 결실, 그리고 자신을 정화하는 겨울의 침묵이 차례로 찾아와 우리 삶을 풍요롭게 채워줄 것이다. 각각의 계절은 그 나름의 고유한 가치와 존재의 이유를 품고 우리 생의 무늬를 완성해 나간다. 영원하지 않기에 소중한 이 모든 순간을 나는 기꺼이 껴안으려 한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듯, 내 삶의 모든 계절을 그 자체로 행복하고 멋있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찰나를 사는 우리가 영원에 가닿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아름다운 길임을 이제는 믿는다.
영원하지 않기에 더 가치 있는 것들 시간의 강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고들 하지만, 그 강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는 저마다 다르다. 최근 우연히 접하게 된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은 나에게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지독하리만큼 시리고도 아름다운 감각으로 치환해 주었다. 이야기는 여느 용사담과는 달리, 마왕을 물리친 이후의 평화로운 세상에서 시작된다. 천 년 넘는 세월을 사는 엘프 마법사 프리렌에게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떠났던 10년의 세월은 생의 고작 백 분의 일에도 미치지 않는 짧은 찰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함께했던 인간 동료들이 늙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녀는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10년이라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생의 전부를 건 치열한 투쟁이자 가장 빛나는 계절이었음을 말이다. 천 년, 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의 지평선 위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밤하늘을 스치는 유성보다도 짧은 섬광일지 모른다. 프리렌이 과거를 회상하며 다시 길을 떠나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유한성이 빚어내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은 영원할 수 없기에 사랑하고, 영원할 수 없기에 눈물을 흘리며, 영원할 수 없기에 오늘 하루를 이토록 뜨겁게 살아내려 애쓰는 존재다. 만약 우리에게 신과 같은 불사의 삶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과연 누군가의 손을 그토록 절박하게 잡았을까. 혹은 지는 꽃잎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연민을 느꼈을까. 영원하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 아니라 거대한 침체일지도 모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통로를 걷는 이에게는 지금 이 순간의 발걸음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늘 하지 못한 말은 내일 하면 되고, 올해 피우지 못한 꽃은 내년에 다시 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이 유한하다는 명백한 사실은 우리에게 매 순간 선택과 집중을 강요한다. 지금 이 사람이 내 곁에 있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오늘 내가 쏟은 정열은 내 생애 단 한 번뿐인 농도로 기록된다. 이러한 '단 한 번뿐'이라는 제약이 비로소 삶에 무게감을 부여하고, 투박한 일상을 보석처럼 빛나는 가치로 승화시킨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순간이 오면 그 시간이 영원히 멈춰 서기를 갈망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마주 앉은 저녁 식사,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거실을 채우던 오후, 혹은 홀로 고요히 즐기던 완벽한 산책의 시간까지. 우리는 그 찰나의 기쁨을 영원이라는 박제 속에 가두고 싶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행복이 우리를 그토록 감동하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사라질 운명이기 때문이다. 봄날의 벚꽃이 그토록 찬란하게 느껴지는 것은 흐드러지게 피어난 지 며칠 만에 꽃비가 되어 흩어지기 때문이며, 노을의 붉은 빛이 가슴을 울리는 것은 곧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출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삶이 만 년쯤 지속된다면, 우리는 아마 사랑하는 법조차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안일함은 이별의 애틋함을 지워버릴 것이고, 끝없는 시간의 더께는 열정의 불꽃을 식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그 시간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생체 조각임을 알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뒤편에 서 있기에, 우리는 비로소 앞을 비추는 작은 촛불의 온기에 감사하며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게 된다. 프리렌은 길 위에서 과거 동료들이 남긴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멈춰 서서 그들의 마음을 뒤늦게 읽어내려 노력한다. 이미 곁에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추적하며 그녀가 배운 것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이들이 그 짧은 생애 동안 얼마나 밀도 높게 서로를 아꼈는가에 대한 경이로움이었다. 인간은 찰나를 살면서도 그 찰나 속에 영원보다 깊은 의미를 채워 넣을 줄 아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들의 삶은 비록 짧았으나, 그들이 남긴 사랑의 조각들은 천 년을 사는 엘프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남아 그녀의 차가웠던 세계를 온기로 채워주었다. 행복이란 어쩌면 영원할 수 없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머물게 하려 하면 바래버리는 그 성질이야말로 행복이 가진 본질적인 아름다움이다. 영원하지 않기에 우리는 행복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며, 그 짧은 순간을 기억의 심해에 깊숙이 묻어두고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완벽한 영원은 죽음과 다름없으나, 부서지기 쉬운 찰나의 행복은 우리를 매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삶의 마디마디에서 만나는 소중한 것들이 언젠가 사라질 것을 예감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들을 온전히 사랑할 준비가 된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내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숨소리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본다. 이것들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이토록 눈물겹게 아름답고, 그래서 나는 오늘을 다시 한번 뜨겁게 살아낼 용기를 얻는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는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머무는 동안 최선을 다해 찬미하고 누리는 일임을, 나는 이 짧고도 긴 여정 위에서 다시금 가슴에 새긴다. 생의 온도를 높여가는 것은 끝없는 영원을 꿈꾸는 욕망이 아니라, 지금 이 찰나의 반짝임이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아련한 자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이러한 상념의 끝이 봄의 꼬리에 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눈부시게 찬란했던 이 계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속절없이 흐르는 것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장 빛나는 순간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봄의 운명은 우리 삶의 유한함을 가장 가깝게 투영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봄의 끝자락에서 내게 허락된 이 짧은 마디를 슬퍼하기보다, 남은 향기를 마음껏 누리고 만끽하려 한다.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고개를 숙이기보다, 그 꽃이 머물다 간 자리에 맺힐 연둣빛 생명력을 축복하며 다가올 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봄을 떠나보낼 때 우리는 굳이 마음 아파할 필요가 없다. 계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며, 우리에겐 다시 돌아올 봄이 있다는 약속이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봄이 떠난 빈자리에는 치열한 여름의 녹음과 고요한 가을의 결실, 그리고 자신을 정화하는 겨울의 침묵이 차례로 찾아와 우리 삶을 풍요롭게 채워줄 것이다. 각각의 계절은 그 나름의 고유한 가치와 존재의 이유를 품고 우리 생의 무늬를 완성해 나간다. 영원하지 않기에 소중한 이 모든 순간을 나는 기꺼이 껴안으려 한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듯, 내 삶의 모든 계절을 그 자체로 행복하고 멋있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찰나를 사는 우리가 영원에 가닿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아름다운 길임을 이제는 믿는다.
2026-03-25 (No.82)
미처 하지 못한 말 아내와 처음 만난 때는 1995년 봄이었다. 91년 대학에 입학하고 몇 년간을 방황과 교통사고로 보내고, 대학은 마치고 보라는 주변의 말에 따라 95년에 복학했다. 학번은 91학번이었지만, 1학년 1학기도 마치지 않고 휴학을 했기에 그 당시 1학년인 95학번과 같이 마치 1학년처럼 새 출발 했다. 복학생이라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95학번 후배들에게 91학번임을 밝히지 않고 지냈다. 우연한 기회에 드러나서 알게 되는 후배도 있었지만, 어떤 후배는 졸업할 때까지 내가 95학번 동기인 줄 알기도 했다. 후배들의 ‘선배 밥 사주세요.’라는 소나기를 맞을 일이 없어서 편하기도 했지만, 가끔 학교 축제에서 술 취한 93학번 후배들이 군기 잡으려 후배들을 소집하면 소집장소에 나가서, 야간에 이른바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원래 성격이 위아래를 크게 구분하는 편이 아니라 후배에게 받는 얼차려는 신선한 느낌이라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전공은 인문계열을 선택했지만, 그 당시 한창 보급되기 시작했던 PC로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작은 컴퓨터 동아리를 만들어서 대학 과제를 인터넷 조사해서 편집한 인쇄물로 만드는 과정을 독학했고, 그 방법을 후배들에게 알려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작은 동아리는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PC로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일까 알아보던 중에 선택과목 중에 CAD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3D 게임에 한창 빠져 있던 중이라 3차원을 그래픽으로 구현해낸다는 과정이 흥미로워서 아무 기초도 없었음에도 덜컥 수강 신청을 했다. 물론 학점을 잘 주는 맛집이라는 소문과 함께 3학점이라는 점도 CAD 수업을 신청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첫 수업에 참석하고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3D 그래픽을 다루는 CAD 수업은 어느 정도 기초를 갖춘 전공학부의 교양과목이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그래서 첫 수업이었지만, CAD 프로그램의 구성이라거나 기초적인 도구의 사용에 관한 부분은 생략하는 분위기였다. 수업은 온통 모르는 얼굴뿐이라 모두 전공과목 학부생 사이에서 혼자 모른다고 할 수 없어서 첫 강의는 아는 척하면서 듣고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앞자리에서 열심히 듣다 보면 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못 알아듣는 설명을 연신 고개를 끄덕여가며 이해하려 애썼다. 두 번째 강의 날에도 맨 앞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는데, 뒤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잡아당기는 어떤 기분이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여학생 한 사람 앉아 있었다. 그때 앉아 있던 강의실은 긴 테이블을 세로로 하나로 연결해둔 형태였는데 맨 앞자리에 내가 앉아 있었고 맨 뒷자리에 여학생이 있었고 그사이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아직도 그날의 이상한 경험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순간, 공간이 접히기 시작했다. 둘의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상대가 자세히 보이지 않았기에 얼굴을 알아보거나 한 것도 아니었는데, 호흡과 시간이 멈춘 듯 공간이 접히면서 한 사람에게 모든 신경이 몰입되는 경험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전에도,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과 인사는 나누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이후로는 남중, 남고를 나오면서 소개팅 한번 해본 일이 없는 나는 자연스럽게 이성에게 다가가는 분야의 교양이라고는 모래 한 알만큼도 없었다. 평소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몰입하는 편이라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과 친밀한 노력을 할 기회도 없었다. 대화 나눌 기회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는데, 같은 과 후배가 여학생의 친구에게 관심이 있었고, 친구에 관한 컨설팅을 여학생에게 요청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대화 목록이 만들어졌다. 나는 영문과, 그 여학생은 사학과 출신으로 둘 다 문과대 출신이었기에, CAD 수업을 듣는 유일한 문과생이라는, 동지로서도 나눌 이야기도 늘어갔다. 서로 수업에 못 가는 날이 있으면 수업 내용을 공유해주고 과제를 도와주면서 친분도 생겼다. 후배가 부탁한 여학생 친구에 대한 컨설팅도 비교적 잘 되어서, 컨설팅해준 보답으로 식사할 기회도 얻으면서 처음의 이상한 공간 압축 경험은 호감으로 번져갔다. 그렇지만, 여학생이 먼저 졸업하면서 연락 나눌 기회가 줄어들었고 나도 졸업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연은 그렇게 멀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어느 날 아침 처음 만난 그날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다. 머리로 생각하기에 앞서 손이 학교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 사람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덕수궁 앞길에서 사회생활 하는 직장인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시 만난 날부터 여러날 뒤에 우리는 서로를 인생의 반려자로 선택하게 되었다. 지나고서 생각하면 첫 만남에서 공간 압축과 시간 멈춤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만 아는 사람이 누군가의 반려자로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서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만남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번 생의 인연이라는 확신부터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생을 그렇게 성실하게 사는 편이 아닌지라, 사회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실직하는 때도 많았고, 게으름으로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자리를 열심히 찾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렇게 심하게 쓰러지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에는 수십 년 전 만난 그 여학생, 지금의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를 만나고 삶의 신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내 앞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아내가 없는 곳에서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 신조는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나고 보면 후회로 남았을 잘못된 선택지를 만날 때마다 기가 막히게 피해 가는 처방전 같은 효과가 있었다. 누군가 그 사람이 바라보지 않을 때조차도 그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리라는 맹세는 꽤나 큰 힘이 있다. 대학 시절 나는 삶의 목적이나 의미와 같은 추상적인 문답에 심취해 있었는데, 명료한 답을 얻지는 못하고 젊은 날이 지나갔다. 그 뒤로 작은 교통사고를 3번, 일 년 가까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큰 교통사고를 한번 겪었다. 살면서 짐승에게는 두어 번 물려서 그때마다 봉합 수술을 받았고, 배달차와 충돌해서 머리가 깨지기도 했다. 뇌종양으로 항암 치료를 하면서 살짝 사선을 넘나드는 경험도 있었다. 열정으로 시작했던 일은 생각대로 안 돼서 경제적인 실패를 마주하기도 했다. 그런 때마다 대학 시절 가장 괴롭히던 질문이 떠올랐다. 인생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어느 일요일 오전, 늦은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이 창가에 비치는 햇살과 함께 참 아름다웠다.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 순간이구나’ 알 수 있었다. 내 오랜 질문에 대해 이미 나만의 답안을 가지고 있음을 말이다. 내 인생의 과정은 아내를 만나면서 얻은 신조로 굳건해졌고, 인생의 완성은 아내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그날 아침 햇살 속 아내의 뒷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더 할 수 있는 일과 해내고 싶은 일이 놓여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모든 일은 내 인생에서는 덤과 같은 것이다. 생의 목적은 아내를 만나서 살아온 것으로 이미 완성되었다. 그래서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많은 것이 부끄럽지 않고, 이룰 수 없는 또 다른 많은 것들 앞에 절망스럽지도 않다. 이미 완성되어 마침표를 찍은 원고에 덤으로 쓰는 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부록과 같은 것들이기에. 그렇지만 아내에게 그날 아침 이 마음을 차마 전하지 못했다. 온갖 이야기를 늘 쉽게 아내에게 꺼내놓는 나였지만, 이말 만큼은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아내에게 한 무수한 말의 가시밭을 아내는 묵묵히 걸어왔다는 것을 알기에 이 마음만큼은 가벼이 내보일 수가 없었다. 평생 내가 했던 가벼운 말 중 하나로 가라앉아 사라질 것이 걱정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그래서, 차마 말로 하지 못한 한 문장을 진심을 담아 글로 전하고 싶다. 당신으로 인해 내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했음을. 당신 덕분에 오랜 의문에 답을 얻을 수 있었음을.
미처 하지 못한 말 아내와 처음 만난 때는 1995년 봄이었다. 91년 대학에 입학하고 몇 년간을 방황과 교통사고로 보내고, 대학은 마치고 보라는 주변의 말에 따라 95년에 복학했다. 학번은 91학번이었지만, 1학년 1학기도 마치지 않고 휴학을 했기에 그 당시 1학년인 95학번과 같이 마치 1학년처럼 새 출발 했다. 복학생이라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95학번 후배들에게 91학번임을 밝히지 않고 지냈다. 우연한 기회에 드러나서 알게 되는 후배도 있었지만, 어떤 후배는 졸업할 때까지 내가 95학번 동기인 줄 알기도 했다. 후배들의 ‘선배 밥 사주세요.’라는 소나기를 맞을 일이 없어서 편하기도 했지만, 가끔 학교 축제에서 술 취한 93학번 후배들이 군기 잡으려 후배들을 소집하면 소집장소에 나가서, 야간에 이른바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원래 성격이 위아래를 크게 구분하는 편이 아니라 후배에게 받는 얼차려는 신선한 느낌이라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전공은 인문계열을 선택했지만, 그 당시 한창 보급되기 시작했던 PC로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작은 컴퓨터 동아리를 만들어서 대학 과제를 인터넷 조사해서 편집한 인쇄물로 만드는 과정을 독학했고, 그 방법을 후배들에게 알려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작은 동아리는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PC로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일까 알아보던 중에 선택과목 중에 CAD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3D 게임에 한창 빠져 있던 중이라 3차원을 그래픽으로 구현해낸다는 과정이 흥미로워서 아무 기초도 없었음에도 덜컥 수강 신청을 했다. 물론 학점을 잘 주는 맛집이라는 소문과 함께 3학점이라는 점도 CAD 수업을 신청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첫 수업에 참석하고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3D 그래픽을 다루는 CAD 수업은 어느 정도 기초를 갖춘 전공학부의 교양과목이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그래서 첫 수업이었지만, CAD 프로그램의 구성이라거나 기초적인 도구의 사용에 관한 부분은 생략하는 분위기였다. 수업은 온통 모르는 얼굴뿐이라 모두 전공과목 학부생 사이에서 혼자 모른다고 할 수 없어서 첫 강의는 아는 척하면서 듣고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앞자리에서 열심히 듣다 보면 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못 알아듣는 설명을 연신 고개를 끄덕여가며 이해하려 애썼다. 두 번째 강의 날에도 맨 앞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는데, 뒤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잡아당기는 어떤 기분이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여학생 한 사람 앉아 있었다. 그때 앉아 있던 강의실은 긴 테이블을 세로로 하나로 연결해둔 형태였는데 맨 앞자리에 내가 앉아 있었고 맨 뒷자리에 여학생이 있었고 그사이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아직도 그날의 이상한 경험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순간, 공간이 접히기 시작했다. 둘의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상대가 자세히 보이지 않았기에 얼굴을 알아보거나 한 것도 아니었는데, 호흡과 시간이 멈춘 듯 공간이 접히면서 한 사람에게 모든 신경이 몰입되는 경험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전에도,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과 인사는 나누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이후로는 남중, 남고를 나오면서 소개팅 한번 해본 일이 없는 나는 자연스럽게 이성에게 다가가는 분야의 교양이라고는 모래 한 알만큼도 없었다. 평소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몰입하는 편이라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과 친밀한 노력을 할 기회도 없었다. 대화 나눌 기회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는데, 같은 과 후배가 여학생의 친구에게 관심이 있었고, 친구에 관한 컨설팅을 여학생에게 요청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대화 목록이 만들어졌다. 나는 영문과, 그 여학생은 사학과 출신으로 둘 다 문과대 출신이었기에, CAD 수업을 듣는 유일한 문과생이라는, 동지로서도 나눌 이야기도 늘어갔다. 서로 수업에 못 가는 날이 있으면 수업 내용을 공유해주고 과제를 도와주면서 친분도 생겼다. 후배가 부탁한 여학생 친구에 대한 컨설팅도 비교적 잘 되어서, 컨설팅해준 보답으로 식사할 기회도 얻으면서 처음의 이상한 공간 압축 경험은 호감으로 번져갔다. 그렇지만, 여학생이 먼저 졸업하면서 연락 나눌 기회가 줄어들었고 나도 졸업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연은 그렇게 멀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어느 날 아침 처음 만난 그날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다. 머리로 생각하기에 앞서 손이 학교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 사람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덕수궁 앞길에서 사회생활 하는 직장인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시 만난 날부터 여러날 뒤에 우리는 서로를 인생의 반려자로 선택하게 되었다. 지나고서 생각하면 첫 만남에서 공간 압축과 시간 멈춤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만 아는 사람이 누군가의 반려자로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서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만남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번 생의 인연이라는 확신부터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생을 그렇게 성실하게 사는 편이 아닌지라, 사회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실직하는 때도 많았고, 게으름으로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자리를 열심히 찾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렇게 심하게 쓰러지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에는 수십 년 전 만난 그 여학생, 지금의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를 만나고 삶의 신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내 앞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아내가 없는 곳에서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 신조는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나고 보면 후회로 남았을 잘못된 선택지를 만날 때마다 기가 막히게 피해 가는 처방전 같은 효과가 있었다. 누군가 그 사람이 바라보지 않을 때조차도 그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리라는 맹세는 꽤나 큰 힘이 있다. 대학 시절 나는 삶의 목적이나 의미와 같은 추상적인 문답에 심취해 있었는데, 명료한 답을 얻지는 못하고 젊은 날이 지나갔다. 그 뒤로 작은 교통사고를 3번, 일 년 가까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큰 교통사고를 한번 겪었다. 살면서 짐승에게는 두어 번 물려서 그때마다 봉합 수술을 받았고, 배달차와 충돌해서 머리가 깨지기도 했다. 뇌종양으로 항암 치료를 하면서 살짝 사선을 넘나드는 경험도 있었다. 열정으로 시작했던 일은 생각대로 안 돼서 경제적인 실패를 마주하기도 했다. 그런 때마다 대학 시절 가장 괴롭히던 질문이 떠올랐다. 인생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어느 일요일 오전, 늦은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이 창가에 비치는 햇살과 함께 참 아름다웠다.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 순간이구나’ 알 수 있었다. 내 오랜 질문에 대해 이미 나만의 답안을 가지고 있음을 말이다. 내 인생의 과정은 아내를 만나면서 얻은 신조로 굳건해졌고, 인생의 완성은 아내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그날 아침 햇살 속 아내의 뒷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더 할 수 있는 일과 해내고 싶은 일이 놓여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모든 일은 내 인생에서는 덤과 같은 것이다. 생의 목적은 아내를 만나서 살아온 것으로 이미 완성되었다. 그래서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많은 것이 부끄럽지 않고, 이룰 수 없는 또 다른 많은 것들 앞에 절망스럽지도 않다. 이미 완성되어 마침표를 찍은 원고에 덤으로 쓰는 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부록과 같은 것들이기에. 그렇지만 아내에게 그날 아침 이 마음을 차마 전하지 못했다. 온갖 이야기를 늘 쉽게 아내에게 꺼내놓는 나였지만, 이말 만큼은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아내에게 한 무수한 말의 가시밭을 아내는 묵묵히 걸어왔다는 것을 알기에 이 마음만큼은 가벼이 내보일 수가 없었다. 평생 내가 했던 가벼운 말 중 하나로 가라앉아 사라질 것이 걱정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그래서, 차마 말로 하지 못한 한 문장을 진심을 담아 글로 전하고 싶다. 당신으로 인해 내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했음을. 당신 덕분에 오랜 의문에 답을 얻을 수 있었음을.
2026-03-22 (No.81)
걱정이라는 이름의 비수 못해낸 자의 변명 흔히 잔소리란 누군가를 염려하고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 생각하기 쉽다. 다치지는 않을까, 일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혹여 험한 세상에 내놓인 여린 살결이 상처 입지는 않을까 하는 애틋한 마음과 우려가 담긴 그릇이 바로 잔소리라고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랑이나 관심이라는 투명한 포장지로 겹겹이 싸여 있기에, 잔소리를 뱉는 이들은 그것이 누군가의 영혼을 날카롭게 베어낼 칼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매를 드는 일에는 서슬 퍼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너를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쏟아내는 말의 화살에는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언’이라 부르는 그 무수한 지적은 실상 안부의 형식을 빌린 비판이며, 다정함의 탈을 쓴 통제에 불과하다. 의외로 사람을 은근히 무너뜨리는 행동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끊임없이 지적하는 일이라고 학자들은 경고한다. “이렇게 해봐”, “그건 고쳐야지”라는 가벼운 권유들이 쌓여갈 때, 상대의 뇌는 서서히 ‘무기력’이라는 어두운 점토를 빚어내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을 보는 아이에게 쏟아지는 날 선 시선과 공부하는 아이의 굽은 등허리를 향한 타박은, 아이의 자세를 바로잡기 전에 아이가 지닌 ‘시도하고자 하는 의지’의 무릎을 먼저 꺾어버린다. 이런 순간들이 겹겹이 쌓이면 인간의 정신은 자꾸만 결정을 미루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심연 속으로 침잠한다.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게으르고 나태해 보이는 이들의 뒷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그것은 의지의 결여가 아니라, 수만 번의 지적 끝에 심리적으로 완전히 소진되어 버린 영혼의 잔해일지도 모른다. 지적하는 이는 그것을 ‘걱정’이라 말하지만, 받는 이에게 그것은 숨통을 죄는 ‘통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모든 선택을 의심하며, 불안의 파도 속에서 끝없이 표류하게 된다. 가랑비는 맞다가 옷이 젖어 무거워지면 그저 벗어 말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된다. 피부에 닿는 빗방울은 시간이 지나면 증발해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의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에 가해지는 지적은 듣는 이의 내면 깊숙한 곳에 퇴적물처럼 쌓여, 마침내 그를 거대한 심연 속으로 가라앉히고 만다. 도와준다고 믿는 이는 오히려 의아해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 써서 하나하나 일러주는데, 왜 저 사람은 점점 더 무력해지는 걸까?”라고. 그러고는 결국 지적을 받는 이가 본래 나태하거나 미련하여 자신의 ‘고귀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결론짓는다. 타인의 영혼이 서서히 질식해가는 과정을 외면한 채, 자신의 통제가 정당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더 낮은 곳으로 밀어 넣는 잔인한 순환이다. 그렇지만 깊이 생각해보라. 식탁 위 숟가락의 각도, 발걸음의 보폭, 심지어 숨 쉬는 리듬까지 지적받기 시작할 때, 그 생명이 마주할 공포를 말이다. 지적은 빛을 향해 뻗어 나가려던 여린 줄기를 가위질하는 행위와 같다. 보살핌이라는 이름의 가위질이 반복될수록, 생명은 더 이상 자라기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닫는다. 불안과 통제의 늪에 빠진 영혼은 자신이 내딛는 모든 발걸음을 의심하며, 끝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정지된 상태, 즉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마치 얇은 종이에 수천 번 베인 상처처럼, 잔소리는 소리 없이 사람의 형체를 지워 나간다.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그 안에서만 움직이기를 강요하는 모든 '사려 깊은 조언'은, 사실 상대를 향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두지 못하는 조급함, 내 방식대로 빚어내려는 욕구가 ‘걱정’이라는 숭고한 단어를 서서히 오염시킨다. 걱정이라는 이름의 통제 안에서 온전히 살아 숨 쉴 수 있는 생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이제는 타인의 삶을 향해 쉼 없이 쏟아내던 그 ‘걱정의 말’들을 잠시 거두어 보기를 권한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살리고 싶다면, 그를 향한 당신의 문장을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혹은 따뜻한 침묵으로 바꿔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가장 고귀한 배려는,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그 서툰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기다림’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적하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고, 당신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가 영원히 제자리를 맴돌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불안은 상대의 결핍이 아니라, 사실 당신 내면의 통제 욕구가 보내는 신호일 때가 많다. 타인을 고치려 드는 에너지를 그를 믿는 인내로 바꾸는 순간, 비로소 상대의 닫힌 영혼에는 숨구멍이 트인다. “너는 왜 그래?”라는 날 선 물음 대신, “너의 속도대로 가도 괜찮아”라는 보이지 않는 지지를 보내야 한다. 진정한 사려 깊음은 상대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족함마저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그늘이 되어주는 것이다. 텃밭의 모종이 제 힘으로 흙을 뚫고 나오듯, 인간의 영혼 또한 타인의 지시가 아닌 스스로의 열망으로 자라날 때 가장 단단해진다. 당신의 입술을 떠나려던 그 지적의 말 한마디를 삼키는 순간, 비로소 상대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생명은 오직 신뢰의 볕이 드는 곳에서, 지적당하지 않을 자유가 허락된 광장에서만 제 빛깔을 드러내며 개화한다. 우리가 진정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의 서투른 발걸음을 지적하기보다 그가 스스로 신발 끈을 묶고 일어설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침묵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말의 향기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말의 날카로움은 한 사람의 세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려 깊은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국 상대의 영혼에 상처를 내지 않고도 그를 환하게 비추는 햇살이 되는 일이다. 당신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 다시 숨 쉬고, 시도하고, 결정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제 그만 비수를 내려놓고, 중대한 일이 아니라면 가끔은 다정한 방관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의 증거가 된다는 것은, 그를 가르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온전히 믿어주는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침묵 속에 있는 것이니 말이다. 가끔은, 아주 가끔이라도 말이다.
걱정이라는 이름의 비수 못해낸 자의 변명 흔히 잔소리란 누군가를 염려하고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 생각하기 쉽다. 다치지는 않을까, 일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혹여 험한 세상에 내놓인 여린 살결이 상처 입지는 않을까 하는 애틋한 마음과 우려가 담긴 그릇이 바로 잔소리라고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랑이나 관심이라는 투명한 포장지로 겹겹이 싸여 있기에, 잔소리를 뱉는 이들은 그것이 누군가의 영혼을 날카롭게 베어낼 칼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매를 드는 일에는 서슬 퍼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너를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쏟아내는 말의 화살에는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언’이라 부르는 그 무수한 지적은 실상 안부의 형식을 빌린 비판이며, 다정함의 탈을 쓴 통제에 불과하다. 의외로 사람을 은근히 무너뜨리는 행동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끊임없이 지적하는 일이라고 학자들은 경고한다. “이렇게 해봐”, “그건 고쳐야지”라는 가벼운 권유들이 쌓여갈 때, 상대의 뇌는 서서히 ‘무기력’이라는 어두운 점토를 빚어내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을 보는 아이에게 쏟아지는 날 선 시선과 공부하는 아이의 굽은 등허리를 향한 타박은, 아이의 자세를 바로잡기 전에 아이가 지닌 ‘시도하고자 하는 의지’의 무릎을 먼저 꺾어버린다. 이런 순간들이 겹겹이 쌓이면 인간의 정신은 자꾸만 결정을 미루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심연 속으로 침잠한다.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게으르고 나태해 보이는 이들의 뒷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그것은 의지의 결여가 아니라, 수만 번의 지적 끝에 심리적으로 완전히 소진되어 버린 영혼의 잔해일지도 모른다. 지적하는 이는 그것을 ‘걱정’이라 말하지만, 받는 이에게 그것은 숨통을 죄는 ‘통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모든 선택을 의심하며, 불안의 파도 속에서 끝없이 표류하게 된다. 가랑비는 맞다가 옷이 젖어 무거워지면 그저 벗어 말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된다. 피부에 닿는 빗방울은 시간이 지나면 증발해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의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에 가해지는 지적은 듣는 이의 내면 깊숙한 곳에 퇴적물처럼 쌓여, 마침내 그를 거대한 심연 속으로 가라앉히고 만다. 도와준다고 믿는 이는 오히려 의아해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 써서 하나하나 일러주는데, 왜 저 사람은 점점 더 무력해지는 걸까?”라고. 그러고는 결국 지적을 받는 이가 본래 나태하거나 미련하여 자신의 ‘고귀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결론짓는다. 타인의 영혼이 서서히 질식해가는 과정을 외면한 채, 자신의 통제가 정당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더 낮은 곳으로 밀어 넣는 잔인한 순환이다. 그렇지만 깊이 생각해보라. 식탁 위 숟가락의 각도, 발걸음의 보폭, 심지어 숨 쉬는 리듬까지 지적받기 시작할 때, 그 생명이 마주할 공포를 말이다. 지적은 빛을 향해 뻗어 나가려던 여린 줄기를 가위질하는 행위와 같다. 보살핌이라는 이름의 가위질이 반복될수록, 생명은 더 이상 자라기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닫는다. 불안과 통제의 늪에 빠진 영혼은 자신이 내딛는 모든 발걸음을 의심하며, 끝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정지된 상태, 즉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마치 얇은 종이에 수천 번 베인 상처처럼, 잔소리는 소리 없이 사람의 형체를 지워 나간다.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그 안에서만 움직이기를 강요하는 모든 '사려 깊은 조언'은, 사실 상대를 향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두지 못하는 조급함, 내 방식대로 빚어내려는 욕구가 ‘걱정’이라는 숭고한 단어를 서서히 오염시킨다. 걱정이라는 이름의 통제 안에서 온전히 살아 숨 쉴 수 있는 생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이제는 타인의 삶을 향해 쉼 없이 쏟아내던 그 ‘걱정의 말’들을 잠시 거두어 보기를 권한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살리고 싶다면, 그를 향한 당신의 문장을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혹은 따뜻한 침묵으로 바꿔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가장 고귀한 배려는,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그 서툰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기다림’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적하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고, 당신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가 영원히 제자리를 맴돌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불안은 상대의 결핍이 아니라, 사실 당신 내면의 통제 욕구가 보내는 신호일 때가 많다. 타인을 고치려 드는 에너지를 그를 믿는 인내로 바꾸는 순간, 비로소 상대의 닫힌 영혼에는 숨구멍이 트인다. “너는 왜 그래?”라는 날 선 물음 대신, “너의 속도대로 가도 괜찮아”라는 보이지 않는 지지를 보내야 한다. 진정한 사려 깊음은 상대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족함마저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그늘이 되어주는 것이다. 텃밭의 모종이 제 힘으로 흙을 뚫고 나오듯, 인간의 영혼 또한 타인의 지시가 아닌 스스로의 열망으로 자라날 때 가장 단단해진다. 당신의 입술을 떠나려던 그 지적의 말 한마디를 삼키는 순간, 비로소 상대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생명은 오직 신뢰의 볕이 드는 곳에서, 지적당하지 않을 자유가 허락된 광장에서만 제 빛깔을 드러내며 개화한다. 우리가 진정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의 서투른 발걸음을 지적하기보다 그가 스스로 신발 끈을 묶고 일어설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침묵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말의 향기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말의 날카로움은 한 사람의 세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려 깊은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국 상대의 영혼에 상처를 내지 않고도 그를 환하게 비추는 햇살이 되는 일이다. 당신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 다시 숨 쉬고, 시도하고, 결정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제 그만 비수를 내려놓고, 중대한 일이 아니라면 가끔은 다정한 방관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의 증거가 된다는 것은, 그를 가르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온전히 믿어주는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침묵 속에 있는 것이니 말이다. 가끔은, 아주 가끔이라도 말이다.
2026-02-28 (No.80)
4월 이야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T.S. 엘리엇 The waste land 中 T.S. 엘리엇을 만나기 전까지 나에게 4월은 언제나 푸르름 넘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여전히 두 뺨을 부비는 새벽 공기는 시리고, 이른 산책길 발걸음이 닿는 길마다 밤사이 얼어서 버석거리는 땅의 외침이 들리기는 하지만, 차가움의 맹렬함이 겨울에 비할 바는 아닌 계절 사월. 해가 뜨고 새벽 차가움이 물러가면 찾아오는 기분 좋은 따스함에서 반가운 봄기운을 가득 느끼는 행복이 사월에는 함께 한다. 겨울바람과 봄 햇살의 경계에 선 시간, 사월은 그래서 언제나 나에게 봄을 상징하는 푸른 빛이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사월의 푸름에 담긴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가 언제인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니 아마도 T.S. 엘리엇의 <황무지>를 알게 된 때가 아닌가 싶다. 겨울 동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명의 희망까지 자취가 사라진 황무지에서 피어나는 푸른 빛은 어찌 보면 한없어 서글프다. 메마른 땅에 애써 고개를 내민 푸른 잎이 마주하는 첫 시련은 아마도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서릿발 같은 차가움일 것이다. 사월에 태어나는 생명 중에 얼마나 많은 존재가 이 첫 번째 시련에 꺾여 사라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겨울 오기 전 단단히 채비하여 서로를 부둥켜안고 겨울을 이겨낸 뒤 맞이하는 것이 또 다른 시련뿐이라는 사월의 잔인함을 작품 <황무지>에서 나는 배웠다. 겨우내 비워 놓았던 혜윰뜰 텃밭은 새벽 서릿발이 심어둔 버석거림이 사라질 즈음이면 봄 농사가 시작된다. 올해 들여올 새로운 모종을 알아보고 고르는 분주한 과정 뒤에 선택받은 새 생명이 텃밭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아간다. 혜윰뜰 회원의 오가는 발걸음과 생명을 심는 정성스러운 손길, 그리고 내일의 수확을 희망하는 작은 바람 속에서 어제까지 황무지 같았던 텃밭은 이내 아름다운 봄의 색채로 채색되어 간다. 그 아름다운 변화를 텃밭이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심는 농부의 마음이 아닌 심어진 여린 모종의 것이 되어간다. 혜윰뜰 개장행사 날 이른 아침부터 나눔한 모종을 심고 물주고, 오랜만에 만난 이웃이 서로 농사 이야기로 조금은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고요가 찾아오면 텃밭의 작물이 된 나는 혼자서 덩그러니 텃밭에 놓여 있을 것이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동안에는 찬바람의 기세가 침범하지 못하겠지만, 노을이 텃밭을 뒤덮는 황혼의 시간이 되면 나는 온전히 밤시간만 기다려온 사월 저녁 찬바람을 맞이해야 한다. 아직은 여리고 작은 몇 안 되는 잎으로 텃밭의 냉랭한 흙에 내린 얇은 뿌리 하나로 그 밤을 온전히 지탱해야 하는 것이다. 사월의 봄비도 늘 반갑지만은 않다. 특히 황혼 무렵 봄비답지 않게 세차게 내리는 녀석들은 봄을 부르는 존재라고 도시농부에게는 환영받지만, 텃밭의 새 모종이 된 나에게는 견뎌내야 할 또 다른 시련일 뿐이다. 봄비를 견디다 못해 내려뜨린 잎사귀는 흙 속에 뒤섞여버리고 끝내 자연의 양분으로 돌려보내고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누군가에는 무척 반가울 봄비가 한없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더 슬픈 건 내가 바란다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필요하다고 찾아와 주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봄비는 가장 추운 시간에 찾아오고 정말 필요할 때는 흔적도 보여주지 않는다. 참 제멋대로인데 봄비에도 그 나름의 사정이 있는지를 여유롭게 생각하기에는, 잎이 몇 장 되지도 않는 이른 봄 텃밭 모종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생존이라는 열망 하나만으로 가득 차서 다른 생각을 더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겨울을 지내면서 척박해진 황무지에 비라도 내리는 것은 사실 고마운 일이기는 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필요할 때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 봄비이기에, 이른 봄, 가뭄이 황무지에 더해지면 모종으로서는 그 이상 힘든 위기가 없다. 척박하고 건조한 하루를 버텨내고 비틀어지려는 생명을 부둥켜안고 도시농부의 자애로운 손길을 기다려보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영원처럼 길다. 곧 꺼질 것 같은 순간 바쁜 일상을 마친 도시농부의 조심스러운 돌봄으로 간신히 생명을 부여잡고 다시 하루를 버텨낸다. 사월 텃밭을 푸르게 채워가는 생명은 실상 하루하루 생명을 꺼뜨리는 수많은 도전과 시련 사이에서 생존과 그 너머 경계선을 오가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생명을 지키고 낮 동안 주어지는 빛을 양분 삼아 성장하는 것이 대견하면서도 문득 미안하기도 하다. 그렇게 어렵게 스스로를 지켜낸 텃밭의 작물은 어느 순간에는 수확이라는 시간을 맞이하니 말이다. 생명을 주고 심고 가꾼 것이 도시농부이니 거두는 자격 역시 도시농부에게 있는 것이 사람에게는 당연한 이치이지만, 그동안 수없이 텃밭을 다녀간 작물도 그 생각에 동의해줄지는 알기 어렵다. 그래도 봄은 푸르고 아름답고, 그래서 감사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작물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세상 만물 모두 각자의 역할과 가치가 있음을 알지만, 텃밭에 자리 잡는 봄 작물에는 허락된 시간이 너무 짧은지도 모르겠다. 한 잎 한 잎을 뜯으며 봄 끝자락까지 살아낸 뒤에 가을 농사를 위해 뿌리째 뽑혀 사라질 운명을 혜윰뜰 텃밭의 작물은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부디, 텃밭 봄 손님들이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것에서 만족과 보람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 그 푸르름을 가꾸고 나누는 사람들의 행복은 도시농부의 정성과 작물의 넉넉한 희생으로 가능한 일이니까. 이쯤 되면 작품 <황무지>를 쓴 T.S. 엘리엇이 조금은 원망스럽다. 몰랐다면 보이지 않았을 4월 혜윰뜰 텃밭의 시린 아픔을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까. 그래도 어찌하랴, 지우고 비우고, 다시 채우기를 조금씩 반복하면서 성장통이라는 이름의 흔적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 삶의 본 모습인 것을. 아파하고 미안하기보다 성장의 흔적이 남긴 모습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봄이라는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한 작물에 감사한 마음이 그 흔적 사이사이에 남아 있기를 바라본다.
4월 이야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T.S. 엘리엇 The waste land 中 T.S. 엘리엇을 만나기 전까지 나에게 4월은 언제나 푸르름 넘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여전히 두 뺨을 부비는 새벽 공기는 시리고, 이른 산책길 발걸음이 닿는 길마다 밤사이 얼어서 버석거리는 땅의 외침이 들리기는 하지만, 차가움의 맹렬함이 겨울에 비할 바는 아닌 계절 사월. 해가 뜨고 새벽 차가움이 물러가면 찾아오는 기분 좋은 따스함에서 반가운 봄기운을 가득 느끼는 행복이 사월에는 함께 한다. 겨울바람과 봄 햇살의 경계에 선 시간, 사월은 그래서 언제나 나에게 봄을 상징하는 푸른 빛이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사월의 푸름에 담긴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가 언제인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니 아마도 T.S. 엘리엇의 <황무지>를 알게 된 때가 아닌가 싶다. 겨울 동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명의 희망까지 자취가 사라진 황무지에서 피어나는 푸른 빛은 어찌 보면 한없어 서글프다. 메마른 땅에 애써 고개를 내민 푸른 잎이 마주하는 첫 시련은 아마도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서릿발 같은 차가움일 것이다. 사월에 태어나는 생명 중에 얼마나 많은 존재가 이 첫 번째 시련에 꺾여 사라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겨울 오기 전 단단히 채비하여 서로를 부둥켜안고 겨울을 이겨낸 뒤 맞이하는 것이 또 다른 시련뿐이라는 사월의 잔인함을 작품 <황무지>에서 나는 배웠다. 겨우내 비워 놓았던 혜윰뜰 텃밭은 새벽 서릿발이 심어둔 버석거림이 사라질 즈음이면 봄 농사가 시작된다. 올해 들여올 새로운 모종을 알아보고 고르는 분주한 과정 뒤에 선택받은 새 생명이 텃밭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아간다. 혜윰뜰 회원의 오가는 발걸음과 생명을 심는 정성스러운 손길, 그리고 내일의 수확을 희망하는 작은 바람 속에서 어제까지 황무지 같았던 텃밭은 이내 아름다운 봄의 색채로 채색되어 간다. 그 아름다운 변화를 텃밭이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심는 농부의 마음이 아닌 심어진 여린 모종의 것이 되어간다. 혜윰뜰 개장행사 날 이른 아침부터 나눔한 모종을 심고 물주고, 오랜만에 만난 이웃이 서로 농사 이야기로 조금은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고요가 찾아오면 텃밭의 작물이 된 나는 혼자서 덩그러니 텃밭에 놓여 있을 것이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동안에는 찬바람의 기세가 침범하지 못하겠지만, 노을이 텃밭을 뒤덮는 황혼의 시간이 되면 나는 온전히 밤시간만 기다려온 사월 저녁 찬바람을 맞이해야 한다. 아직은 여리고 작은 몇 안 되는 잎으로 텃밭의 냉랭한 흙에 내린 얇은 뿌리 하나로 그 밤을 온전히 지탱해야 하는 것이다. 사월의 봄비도 늘 반갑지만은 않다. 특히 황혼 무렵 봄비답지 않게 세차게 내리는 녀석들은 봄을 부르는 존재라고 도시농부에게는 환영받지만, 텃밭의 새 모종이 된 나에게는 견뎌내야 할 또 다른 시련일 뿐이다. 봄비를 견디다 못해 내려뜨린 잎사귀는 흙 속에 뒤섞여버리고 끝내 자연의 양분으로 돌려보내고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누군가에는 무척 반가울 봄비가 한없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더 슬픈 건 내가 바란다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필요하다고 찾아와 주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봄비는 가장 추운 시간에 찾아오고 정말 필요할 때는 흔적도 보여주지 않는다. 참 제멋대로인데 봄비에도 그 나름의 사정이 있는지를 여유롭게 생각하기에는, 잎이 몇 장 되지도 않는 이른 봄 텃밭 모종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생존이라는 열망 하나만으로 가득 차서 다른 생각을 더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겨울을 지내면서 척박해진 황무지에 비라도 내리는 것은 사실 고마운 일이기는 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필요할 때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 봄비이기에, 이른 봄, 가뭄이 황무지에 더해지면 모종으로서는 그 이상 힘든 위기가 없다. 척박하고 건조한 하루를 버텨내고 비틀어지려는 생명을 부둥켜안고 도시농부의 자애로운 손길을 기다려보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영원처럼 길다. 곧 꺼질 것 같은 순간 바쁜 일상을 마친 도시농부의 조심스러운 돌봄으로 간신히 생명을 부여잡고 다시 하루를 버텨낸다. 사월 텃밭을 푸르게 채워가는 생명은 실상 하루하루 생명을 꺼뜨리는 수많은 도전과 시련 사이에서 생존과 그 너머 경계선을 오가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생명을 지키고 낮 동안 주어지는 빛을 양분 삼아 성장하는 것이 대견하면서도 문득 미안하기도 하다. 그렇게 어렵게 스스로를 지켜낸 텃밭의 작물은 어느 순간에는 수확이라는 시간을 맞이하니 말이다. 생명을 주고 심고 가꾼 것이 도시농부이니 거두는 자격 역시 도시농부에게 있는 것이 사람에게는 당연한 이치이지만, 그동안 수없이 텃밭을 다녀간 작물도 그 생각에 동의해줄지는 알기 어렵다. 그래도 봄은 푸르고 아름답고, 그래서 감사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작물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세상 만물 모두 각자의 역할과 가치가 있음을 알지만, 텃밭에 자리 잡는 봄 작물에는 허락된 시간이 너무 짧은지도 모르겠다. 한 잎 한 잎을 뜯으며 봄 끝자락까지 살아낸 뒤에 가을 농사를 위해 뿌리째 뽑혀 사라질 운명을 혜윰뜰 텃밭의 작물은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부디, 텃밭 봄 손님들이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것에서 만족과 보람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 그 푸르름을 가꾸고 나누는 사람들의 행복은 도시농부의 정성과 작물의 넉넉한 희생으로 가능한 일이니까. 이쯤 되면 작품 <황무지>를 쓴 T.S. 엘리엇이 조금은 원망스럽다. 몰랐다면 보이지 않았을 4월 혜윰뜰 텃밭의 시린 아픔을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까. 그래도 어찌하랴, 지우고 비우고, 다시 채우기를 조금씩 반복하면서 성장통이라는 이름의 흔적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 삶의 본 모습인 것을. 아파하고 미안하기보다 성장의 흔적이 남긴 모습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봄이라는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한 작물에 감사한 마음이 그 흔적 사이사이에 남아 있기를 바라본다.
2026-02-16 (No.71)
소갈비찜 ‘식구(食口)’라는 단어는 오래된 온기를 품고 있다. 밥을 함께 먹는 입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그 속에는 훨씬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한솥밥을 나누는 사람, 같은 반찬을 집어 먹으며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 즉 나의 하루를 함께 삼키는 사람. 먹는다는 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관계의 언어다. 그래서 식구는 피보다 진한 의미를 지닌다. 같은 온도와 향, 같은 리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의미에서 한 끼 식사는 언제나 가족의 중심에 놓인다. 며칠 전 명절을 앞두고 선물 한 상자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자 반듯하게 포장된 소갈비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옆에는 큼직한 아롱사태가 함께 들어 있었다. ‘갈비찜을 하신다면 사태를 조금 섞어보세요. 식감이 훨씬 좋아집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단순한 선물이라기보다, 그 안에는 섬세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정성껏 손질한 고기와 조리의 순서를 헤아린 배려가 묵직하게 전해졌다. 순간, 명절 선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물질보다 마음이 앞선 선물. 그래서인지 냉장고에 고기를 보면서 잠시 동안 쉽게 문을 닫을 수 없었다. 그 마음을 그대로 이어받아 가족과 나누는 따뜻한 식탁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요리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소갈비는 굽기, 국 끓이기, 찜, 조림, 스튜 등 어떤 방식으로도 훌륭한 재료지만, 이번에는 시간을 들이는 요리를 하고 싶었다. 불의 강도를 낮추고 천천히 익히는 찜, 조급함을 내려놓고 기다림으로 맛을 완성하는 방식. 특히 찜은 국물이 아닌 고기의 수분으로만 조리되어, 간이 깊고 농도가 짙은 풍미를 낸다. 기름을 제거하고 결을 부드럽게 만드는 동시에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식구의 음식’으로는 이보다 더 적당한 요리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비는 먼저 핏물을 빼야 한다. 찬물에 담가 몇 시간 동안 여러 번 물을 갈아주면 고유의 냄새가 사라지고, 육질이 맑아진다. 이 과정을 성급히 지나치면 아무리 좋은 양념을 써도 맛이 탁해진다고 한다. 핏물을 빼는 동안, 물 위로 떠오르는 작은 거품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기다림은 요리의 시작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는 의식에 더 가깝다고. 불필요한 것을 천천히 걷어내고 맑은 것만 남기는 일, 그것이 요리이자 삶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핏물을 뺀 갈비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표면의 불순물을 걷어낸다. 여기까지가 ‘준비의 절반’이다. 이제 남은 건 양념이다. 나는 배와 양파를 갈아 단맛을 만들고, 진간장으로 짠맛의 골격을 세우며, 다진 마늘과 생강으로 향의 뼈대를 세울 생각이다. 설탕은 아주 소량만 넣어 색을 내고, 마지막에 조청 한 스푼으로 윤기를 줄 예정이다. 배즙은 고기를 부드럽게 하고, 양파는 육즙과 섞이며 자연스러운 단맛을 완성한다. 요즘에는 미리 준비되어 마트에서 판매하는 양념도 훌륭하지만 정성스럽게 양념부터 만들어보고 싶다. 고기와 양념이 만나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갈비와 아롱사태를 큼직하게 썰어 큰 볼에 넣고, 양념을 붓고 손으로 가볍게 섞을 것이다. 간이 골고루 배어들도록 손끝으로 결을 따라 문질러 준다. 양념이 스며드는 동안 냉장고에 잠시 두었다가, 달궈진 냄비에 기름을 살짝 둘러 고기를 올린다. 불은 너무 세지 않게, 고기의 겉면에만 색이 입혀질 정도로만 익힌다. 표면이 익어 육즙이 안에 갇히면, 양념과 채소를 함께 넣고 불을 줄여 천천히 졸인다. 국물은 거의 남기지 않을 생각이다. 뼈와 살 사이의 즙이 그대로 스며들어 윤기가 나도록, 물을 적게 하고 불을 오래 두는 것이 핵심이다. 찜이 완성되면 갈비는 젓가락으로 살짝만 들어도 뼈에서 부드럽게 떨어질 것이다. 사태는 결이 단단해 질감을 잡아주고, 갈비의 지방은 사태의 담백함과 섞여 균형을 이룬다. 나는 그 위에 밤과 당근을 얹어 색을 더할 계획이다. 당근의 주황빛과 밤의 은은한 갈색이 어울리면 식탁 위가 한층 따뜻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깨소금을 살짝 뿌려 마무리하면 완성이다. 김이 피어오르는 그 순간, 식탁의 공기가 바뀔 것이다. 찬은 최대한 간결하게 할 생각이다. 짭조름하게 볶은 멸치, 들기름 향이 은은한 시금치나물, 새콤한 깍두기 정도면 충분하다. 찜의 풍미가 진하니, 다른 반찬은 입을 정리해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동치미 한 사발이 곁에 있으면, 그 시원한 국물이 찜의 농도를 정리해줄 것이다. 단순한 조합이지만, 식탁은 결국 복잡함보다 조화에서 완성된다. 이렇게 요리를 준비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가족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인가 각자의 일정이 바빠 한 식탁에 모이는 일이 드물어졌다. 아이는 늦은 학업 일정으로, 나는 회사 일로 늦게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같이 밥을 먹자’는 말 한마디에는 여전히 힘이 있다. 식탁 위의 음식이 단순히 끼니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의 하루를 다시 연결하는 고리라는 것을 이제야 실감한다. 갈비를 찜으로 하기로 결심한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기다림이 필요한 음식, 불을 줄이고 천천히 맛을 우려내야 하는 요리. 그 느린 과정이 오히려 가족의 시간과 닮아 있다. 서두르지 않고, 불필요한 말을 덜어내고, 천천히 함께 익어가는 일. 나는 이 찜을 만들며 가족이란 무엇인지 다시 배우게 될 것 같다. 아직 불을 켜지도 않았지만, 냄비를 꺼내는 손끝에서부터 마음이 따뜻해진다. 찜이 완성되면, 윤기가 흐르는 갈비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려,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식탁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국물은 거의 남지 않겠지만, 그 대신 입안에 남을 맛은 오래 갈 것이다. 요리를 준비하며 나는 다시 깨닫는다. 소중한 건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그것은 냄비 속에 있는 고기가 아니라, 그 냄비를 둘러앉을 식구들이다. 식구라는 말은 그래서 여전히 아름답다. 우리는 그 단어 속에서 살아간다. 같은 온도를 나누고, 같은 냄새를 기억하며, 같은 음식을 함께 먹는 일. 아마 그게 행복의 가장 단순하고도 깊은 형태일 것이다. 이번 명절의 소갈비찜은 아직 불 위에 올리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완성되어 있다. 냄비 안에서 서서히 익어갈 시간, 그 기다림이 곧 사랑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같은 냄비에서 서로의 하루를 덜어 먹으며 또 한 번 ‘식구’가 될 것이다. 마치 불을 약하게 줄여 오래도록 익히는 소갈비찜처럼, 우리도 그렇게 천천히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싶다. 급히 끓어 넘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스며들어 하나의 맛이 되는 관계. 살짝 짠 순간에도 달콤함이 남고, 다소 부족한 날에도 향이 이어지는 그런 가족 말이다. 그 향기가 세상 살아가는 동안 가족에게 작은 안식이 되기를 희망한다.
소갈비찜 ‘식구(食口)’라는 단어는 오래된 온기를 품고 있다. 밥을 함께 먹는 입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그 속에는 훨씬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한솥밥을 나누는 사람, 같은 반찬을 집어 먹으며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 즉 나의 하루를 함께 삼키는 사람. 먹는다는 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관계의 언어다. 그래서 식구는 피보다 진한 의미를 지닌다. 같은 온도와 향, 같은 리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의미에서 한 끼 식사는 언제나 가족의 중심에 놓인다. 며칠 전 명절을 앞두고 선물 한 상자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자 반듯하게 포장된 소갈비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옆에는 큼직한 아롱사태가 함께 들어 있었다. ‘갈비찜을 하신다면 사태를 조금 섞어보세요. 식감이 훨씬 좋아집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단순한 선물이라기보다, 그 안에는 섬세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정성껏 손질한 고기와 조리의 순서를 헤아린 배려가 묵직하게 전해졌다. 순간, 명절 선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물질보다 마음이 앞선 선물. 그래서인지 냉장고에 고기를 보면서 잠시 동안 쉽게 문을 닫을 수 없었다. 그 마음을 그대로 이어받아 가족과 나누는 따뜻한 식탁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요리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소갈비는 굽기, 국 끓이기, 찜, 조림, 스튜 등 어떤 방식으로도 훌륭한 재료지만, 이번에는 시간을 들이는 요리를 하고 싶었다. 불의 강도를 낮추고 천천히 익히는 찜, 조급함을 내려놓고 기다림으로 맛을 완성하는 방식. 특히 찜은 국물이 아닌 고기의 수분으로만 조리되어, 간이 깊고 농도가 짙은 풍미를 낸다. 기름을 제거하고 결을 부드럽게 만드는 동시에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식구의 음식’으로는 이보다 더 적당한 요리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비는 먼저 핏물을 빼야 한다. 찬물에 담가 몇 시간 동안 여러 번 물을 갈아주면 고유의 냄새가 사라지고, 육질이 맑아진다. 이 과정을 성급히 지나치면 아무리 좋은 양념을 써도 맛이 탁해진다고 한다. 핏물을 빼는 동안, 물 위로 떠오르는 작은 거품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기다림은 요리의 시작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는 의식에 더 가깝다고. 불필요한 것을 천천히 걷어내고 맑은 것만 남기는 일, 그것이 요리이자 삶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핏물을 뺀 갈비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표면의 불순물을 걷어낸다. 여기까지가 ‘준비의 절반’이다. 이제 남은 건 양념이다. 나는 배와 양파를 갈아 단맛을 만들고, 진간장으로 짠맛의 골격을 세우며, 다진 마늘과 생강으로 향의 뼈대를 세울 생각이다. 설탕은 아주 소량만 넣어 색을 내고, 마지막에 조청 한 스푼으로 윤기를 줄 예정이다. 배즙은 고기를 부드럽게 하고, 양파는 육즙과 섞이며 자연스러운 단맛을 완성한다. 요즘에는 미리 준비되어 마트에서 판매하는 양념도 훌륭하지만 정성스럽게 양념부터 만들어보고 싶다. 고기와 양념이 만나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갈비와 아롱사태를 큼직하게 썰어 큰 볼에 넣고, 양념을 붓고 손으로 가볍게 섞을 것이다. 간이 골고루 배어들도록 손끝으로 결을 따라 문질러 준다. 양념이 스며드는 동안 냉장고에 잠시 두었다가, 달궈진 냄비에 기름을 살짝 둘러 고기를 올린다. 불은 너무 세지 않게, 고기의 겉면에만 색이 입혀질 정도로만 익힌다. 표면이 익어 육즙이 안에 갇히면, 양념과 채소를 함께 넣고 불을 줄여 천천히 졸인다. 국물은 거의 남기지 않을 생각이다. 뼈와 살 사이의 즙이 그대로 스며들어 윤기가 나도록, 물을 적게 하고 불을 오래 두는 것이 핵심이다. 찜이 완성되면 갈비는 젓가락으로 살짝만 들어도 뼈에서 부드럽게 떨어질 것이다. 사태는 결이 단단해 질감을 잡아주고, 갈비의 지방은 사태의 담백함과 섞여 균형을 이룬다. 나는 그 위에 밤과 당근을 얹어 색을 더할 계획이다. 당근의 주황빛과 밤의 은은한 갈색이 어울리면 식탁 위가 한층 따뜻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깨소금을 살짝 뿌려 마무리하면 완성이다. 김이 피어오르는 그 순간, 식탁의 공기가 바뀔 것이다. 찬은 최대한 간결하게 할 생각이다. 짭조름하게 볶은 멸치, 들기름 향이 은은한 시금치나물, 새콤한 깍두기 정도면 충분하다. 찜의 풍미가 진하니, 다른 반찬은 입을 정리해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동치미 한 사발이 곁에 있으면, 그 시원한 국물이 찜의 농도를 정리해줄 것이다. 단순한 조합이지만, 식탁은 결국 복잡함보다 조화에서 완성된다. 이렇게 요리를 준비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가족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인가 각자의 일정이 바빠 한 식탁에 모이는 일이 드물어졌다. 아이는 늦은 학업 일정으로, 나는 회사 일로 늦게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같이 밥을 먹자’는 말 한마디에는 여전히 힘이 있다. 식탁 위의 음식이 단순히 끼니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의 하루를 다시 연결하는 고리라는 것을 이제야 실감한다. 갈비를 찜으로 하기로 결심한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기다림이 필요한 음식, 불을 줄이고 천천히 맛을 우려내야 하는 요리. 그 느린 과정이 오히려 가족의 시간과 닮아 있다. 서두르지 않고, 불필요한 말을 덜어내고, 천천히 함께 익어가는 일. 나는 이 찜을 만들며 가족이란 무엇인지 다시 배우게 될 것 같다. 아직 불을 켜지도 않았지만, 냄비를 꺼내는 손끝에서부터 마음이 따뜻해진다. 찜이 완성되면, 윤기가 흐르는 갈비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려,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식탁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국물은 거의 남지 않겠지만, 그 대신 입안에 남을 맛은 오래 갈 것이다. 요리를 준비하며 나는 다시 깨닫는다. 소중한 건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그것은 냄비 속에 있는 고기가 아니라, 그 냄비를 둘러앉을 식구들이다. 식구라는 말은 그래서 여전히 아름답다. 우리는 그 단어 속에서 살아간다. 같은 온도를 나누고, 같은 냄새를 기억하며, 같은 음식을 함께 먹는 일. 아마 그게 행복의 가장 단순하고도 깊은 형태일 것이다. 이번 명절의 소갈비찜은 아직 불 위에 올리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완성되어 있다. 냄비 안에서 서서히 익어갈 시간, 그 기다림이 곧 사랑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같은 냄비에서 서로의 하루를 덜어 먹으며 또 한 번 ‘식구’가 될 것이다. 마치 불을 약하게 줄여 오래도록 익히는 소갈비찜처럼, 우리도 그렇게 천천히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싶다. 급히 끓어 넘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스며들어 하나의 맛이 되는 관계. 살짝 짠 순간에도 달콤함이 남고, 다소 부족한 날에도 향이 이어지는 그런 가족 말이다. 그 향기가 세상 살아가는 동안 가족에게 작은 안식이 되기를 희망한다.
2026-02-14 (No.70)
침묵은 말보다 깊은 언어일까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울음으로 세상에 도착한다. 그 울음은 말보다 먼저 도착한 언어이자, 생존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후 우리는 수많은 단어를 배우며 세계를 이해하고 관계를 쌓았다. 말은 공동체를 이어주는 다리였고, 개인의 내면을 표현하는 창이었다. 그러나 말이 언제나 충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어가 무력해지고, 그 자리를 침묵이 채운다. 그렇다면 침묵은 단순한 부재일까, 아니면 말보다 깊은 언어일까. 역사와 철학 속에서 침묵은 늘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제자들에게 수년간의 침묵을 강요했다. 말하지 않는 동안 내면을 단련하고, 언어 이전의 세계를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다. 불교 수행자들에게 묵언은 깨달음의 통로였다. 말의 소음을 거두고 마음의 결을 가라앉힐 때만 비로소 본래의 자아를 마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기독교 수도원에서도 침묵은 중요한 수행이었다. 소리 없는 기도가 오히려 신에게 더 가깝게 다가간다고 여겨졌다. 도가의 전통에서는 침묵을 ‘무위(無爲)’의 실천으로 보았고, 침묵 속에서 자연과 합일하는 길을 찾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침묵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더 큰 세계를 향한 문이었다. 일상의 경험에서도 우리는 종종 침묵의 힘을 느낀다.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와 나란히 앉아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실 때, 그 고요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친밀함이 전해진다. 반대로 갈등의 순간에는 쏟아내는 수천 마디 말보다, 차갑게 이어지는 침묵이 더 날카롭게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장례식장에서, 누군가의 말보다 함께 머무는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을 우리는 기억한다. 침묵은 말이 가닿지 못하는 자리에 도착해 또 다른 언어로 변주된다. 문학과 예술 속에서도 침묵은 반복되는 주제였다. 카프카의 소설 속 인물들은 침묵 속에서 고립되고, 그 고립이 인간 존재의 불안을 드러낸다. 체호프의 희곡에는 긴 침묵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공백은 인물들의 감정과 긴장을 더 강렬하게 드러내는 장치였다. 한강의 소설에서도 인물들은 말하지 못한 채 서로의 눈빛과 몸짓으로 세계와 마주한다. 언어가 멈춘 자리에서 오히려 더 선명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예술에서 침묵은 음표 사이의 공백으로도 살아 있다. 음악에서 ‘쉼표’는 단순히 소리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이어주는 또 다른 음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에서, 존 케이지의 실험곡 《4분 33초》에서 우리는 침묵이야말로 또 하나의 음악임을 깨닫는다. 화폭에서도 침묵은 존재한다. 미니멀리즘 회화의 넓은 여백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여백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사유하게 한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장면은 대사보다 긴 정적을 통해 감정을 더 깊게 각인시킨다. 예술 속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미학의 완성이다. 삶의 풍경 속에서 침묵은 종종 말보다 더 풍부하다. 가을 저녁, 벤치에 나란히 앉은 연인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어색함이 아니라 충만이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낙엽이 흩날리는 움직임이 대화를 대신한다. 겨울 새벽 눈이 내릴 때 도시는 거대한 침묵에 잠기는데, 그 고요 속에서 사람들은 말보다 큰 위로를 받는다. 집 안의 불이 모두 꺼지고 아이가 잠든 순간, 방 안에 깃든 침묵은 평화 그 자체다. 작은 숨결이 들리고, 어둠 속에서 모든 소리가 멎은 듯할 때, 우리는 언어를 초월한 안온함을 경험한다. 심리학에서도 침묵의 치유 효과는 오래전부터 주목받았다. 상담 장면에서 치료자는 종종 의도적으로 침묵을 사용한다. 그것은 상대를 압박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면의 언어가 스스로 떠오를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방식이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던 감정이 침묵 속에서 서서히 형체를 얻고, 마침내 언어가 될 때 치유는 시작된다. 일본의 산림욕 문화 역시 침묵의 치유적 힘을 보여준다. 숲길을 걸으며 침묵에 잠기는 동안, 인간은 나무의 호흡과 발맞추어 자신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균형을 회복한다. 철학자들과 사상가들도 침묵을 사유의 원천으로 삼았다. 루소는 걷는 동안 침묵 속에서 사유했고, 니체는 알프스 산길의 고요 속에서 사상을 빚어냈다. 발터 벤야민은 파리의 군중 속 고독과 산책자의 침묵을 기록했다. 하이데거는 “침묵은 언어의 가능성을 연다”고 말했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오히려 언어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니체 역시 “위대한 일은 언제나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하며, 창조의 순간은 언어가 아니라 고요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문이었다. 물론 침묵이 언제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권력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종종 방관이 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부조리에 맞서 목소리를 내야 할 순간에 찾아오는 침묵은 공감이 아니라 외면이며, 침묵이 길어질수록 진실은 왜곡된다. 그래서 침묵은 늘 양면성을 지닌다. 어떤 침묵은 공감과 이해를 낳지만, 어떤 침묵은 무책임과 회피의 다른 이름이 된다. 오늘날의 우리는 끊임없는 말과 이미지 속에 살고 있다. 휴대전화 알림음, 끝없는 메시지와 영상, 수많은 대화가 하루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말이 많아질수록, 정작 중요한 목소리는 묻혀버린다. 그럴수록 침묵은 더욱 귀해진다. 잠시 멈추어 말을 거두는 순간, 우리는 본질을 다시 듣는다.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귀 기울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삶은 결국 말과 침묵이 교차하며 직조된다. 말이 관계를 열어주고 세상을 짓는다면, 침묵은 그 관계를 깊게 하고 그 세계를 지탱한다. 말과 침묵이 함께할 때 우리는 비로소 더 온전한 이해와 더 깊은 사랑에 다가갈 수 있다. 그렇다면 침묵은 말보다 깊은 언어일까. 아마도 침묵은 언어의 또 다른 얼굴일 것이다. 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때로는 말보다 더 큰 위로를 건넨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듣고, 자신의 내면을 다시 찾는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충만이며, 부재가 아니라 또 다른 언어다. 결국 삶의 지혜는 언제 말을 하고 언제 침묵할지를 아는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해지는 것일지도?
침묵은 말보다 깊은 언어일까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울음으로 세상에 도착한다. 그 울음은 말보다 먼저 도착한 언어이자, 생존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후 우리는 수많은 단어를 배우며 세계를 이해하고 관계를 쌓았다. 말은 공동체를 이어주는 다리였고, 개인의 내면을 표현하는 창이었다. 그러나 말이 언제나 충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어가 무력해지고, 그 자리를 침묵이 채운다. 그렇다면 침묵은 단순한 부재일까, 아니면 말보다 깊은 언어일까. 역사와 철학 속에서 침묵은 늘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제자들에게 수년간의 침묵을 강요했다. 말하지 않는 동안 내면을 단련하고, 언어 이전의 세계를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다. 불교 수행자들에게 묵언은 깨달음의 통로였다. 말의 소음을 거두고 마음의 결을 가라앉힐 때만 비로소 본래의 자아를 마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기독교 수도원에서도 침묵은 중요한 수행이었다. 소리 없는 기도가 오히려 신에게 더 가깝게 다가간다고 여겨졌다. 도가의 전통에서는 침묵을 ‘무위(無爲)’의 실천으로 보았고, 침묵 속에서 자연과 합일하는 길을 찾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침묵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더 큰 세계를 향한 문이었다. 일상의 경험에서도 우리는 종종 침묵의 힘을 느낀다.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와 나란히 앉아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실 때, 그 고요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친밀함이 전해진다. 반대로 갈등의 순간에는 쏟아내는 수천 마디 말보다, 차갑게 이어지는 침묵이 더 날카롭게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장례식장에서, 누군가의 말보다 함께 머무는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을 우리는 기억한다. 침묵은 말이 가닿지 못하는 자리에 도착해 또 다른 언어로 변주된다. 문학과 예술 속에서도 침묵은 반복되는 주제였다. 카프카의 소설 속 인물들은 침묵 속에서 고립되고, 그 고립이 인간 존재의 불안을 드러낸다. 체호프의 희곡에는 긴 침묵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공백은 인물들의 감정과 긴장을 더 강렬하게 드러내는 장치였다. 한강의 소설에서도 인물들은 말하지 못한 채 서로의 눈빛과 몸짓으로 세계와 마주한다. 언어가 멈춘 자리에서 오히려 더 선명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예술에서 침묵은 음표 사이의 공백으로도 살아 있다. 음악에서 ‘쉼표’는 단순히 소리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이어주는 또 다른 음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에서, 존 케이지의 실험곡 《4분 33초》에서 우리는 침묵이야말로 또 하나의 음악임을 깨닫는다. 화폭에서도 침묵은 존재한다. 미니멀리즘 회화의 넓은 여백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여백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사유하게 한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장면은 대사보다 긴 정적을 통해 감정을 더 깊게 각인시킨다. 예술 속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미학의 완성이다. 삶의 풍경 속에서 침묵은 종종 말보다 더 풍부하다. 가을 저녁, 벤치에 나란히 앉은 연인 사이에 흐르는 침묵은 어색함이 아니라 충만이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낙엽이 흩날리는 움직임이 대화를 대신한다. 겨울 새벽 눈이 내릴 때 도시는 거대한 침묵에 잠기는데, 그 고요 속에서 사람들은 말보다 큰 위로를 받는다. 집 안의 불이 모두 꺼지고 아이가 잠든 순간, 방 안에 깃든 침묵은 평화 그 자체다. 작은 숨결이 들리고, 어둠 속에서 모든 소리가 멎은 듯할 때, 우리는 언어를 초월한 안온함을 경험한다. 심리학에서도 침묵의 치유 효과는 오래전부터 주목받았다. 상담 장면에서 치료자는 종종 의도적으로 침묵을 사용한다. 그것은 상대를 압박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면의 언어가 스스로 떠오를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방식이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던 감정이 침묵 속에서 서서히 형체를 얻고, 마침내 언어가 될 때 치유는 시작된다. 일본의 산림욕 문화 역시 침묵의 치유적 힘을 보여준다. 숲길을 걸으며 침묵에 잠기는 동안, 인간은 나무의 호흡과 발맞추어 자신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균형을 회복한다. 철학자들과 사상가들도 침묵을 사유의 원천으로 삼았다. 루소는 걷는 동안 침묵 속에서 사유했고, 니체는 알프스 산길의 고요 속에서 사상을 빚어냈다. 발터 벤야민은 파리의 군중 속 고독과 산책자의 침묵을 기록했다. 하이데거는 “침묵은 언어의 가능성을 연다”고 말했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오히려 언어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니체 역시 “위대한 일은 언제나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하며, 창조의 순간은 언어가 아니라 고요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문이었다. 물론 침묵이 언제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권력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종종 방관이 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부조리에 맞서 목소리를 내야 할 순간에 찾아오는 침묵은 공감이 아니라 외면이며, 침묵이 길어질수록 진실은 왜곡된다. 그래서 침묵은 늘 양면성을 지닌다. 어떤 침묵은 공감과 이해를 낳지만, 어떤 침묵은 무책임과 회피의 다른 이름이 된다. 오늘날의 우리는 끊임없는 말과 이미지 속에 살고 있다. 휴대전화 알림음, 끝없는 메시지와 영상, 수많은 대화가 하루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말이 많아질수록, 정작 중요한 목소리는 묻혀버린다. 그럴수록 침묵은 더욱 귀해진다. 잠시 멈추어 말을 거두는 순간, 우리는 본질을 다시 듣는다.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귀 기울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삶은 결국 말과 침묵이 교차하며 직조된다. 말이 관계를 열어주고 세상을 짓는다면, 침묵은 그 관계를 깊게 하고 그 세계를 지탱한다. 말과 침묵이 함께할 때 우리는 비로소 더 온전한 이해와 더 깊은 사랑에 다가갈 수 있다. 그렇다면 침묵은 말보다 깊은 언어일까. 아마도 침묵은 언어의 또 다른 얼굴일 것이다. 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때로는 말보다 더 큰 위로를 건넨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듣고, 자신의 내면을 다시 찾는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충만이며, 부재가 아니라 또 다른 언어다. 결국 삶의 지혜는 언제 말을 하고 언제 침묵할지를 아는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해지는 것일지도?
2026-02-14 (No.69)
1.5미터 가습기 전선 바깥공기가 서늘한 늦겨울,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찬 기운이 사무실 곳곳에 번져 있었다. 달력은 봄이 가까워 왔다고 말해 주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겨울의 한가운데처럼 느껴진다. 이런 조용한 오후에, 나는 사소한 일로부터 삶의 진실 하나를 배웠다. 무심코 놓아둔 전선 한 줄이 누군가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사무실 구석에 자리 잡은 가습기에 물때가 제법 쌓여 있다는 걸 알아채고, “이제 한 번 청소해야지” 결심했다. 문제는, 가습기에 달린 전선 약 1.5미터를 제대로 감아서 들고 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냥 들고 가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가습기만 두 팔로 안아 든 채 화장실로 향했는데, 그 순간부터 작은 파국이 시작되었다. 걸음을 떼자마자, 다리에 플러그가 탁탁 부딪혔다. 처음에는 참을 만했지만, 계단에 이르러서는 전선이 발밑에 감기며 휘청거렸다. 미끄러질 뻔한 몸을 간신히 잡았는데, 잠깐만 더 늦었더라면 가습기도 내 몸도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을지 모른다. 숨이 턱 막히고 이마에 땀이 맺혔다. 미리 전선을 감아 뒀다면 멀쩡히 걸어갔을 텐데, 괜한 서두름이 이런 사소한 사고를 부른 셈이다. 생각해 보니, 이 일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내 태도에 대한 경고처럼 다가왔다. “왜 내가 전선을 감는 일조차 귀찮아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자, 더 나은 답은 찾기 어렵다. 시간을 몇 초 아껴 보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결국은 더 긴 시간을 소모하고, 더 큰 불편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다리와 플러그가 부딪히는 불편도, 한순간에 넘어질 뻔한 위험도, 전부 나 자신이 자초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비슷한 패턴이 아닐까. 전선을 감아서 안전을 확보하듯, 업무 전반의 구조나 핵심 포인트를 미리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걸 생략하고 “빨리빨리 시작하자”라며 추진했다가, 막상 후반부에 더 큰 재작업과 오류를 발견해 모두가 힘들어지곤 한다. 몇 분, 혹은 몇 시간이 아까워서 생략한 일이, 나중에는 며칠, 몇 주간의 문제로 돌아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내 서두름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란다. 전선을 질질 끌고 다니다가 다른 사람의 다리에 걸리게 하면, 그 사람이 넘어진다. 일로 치면, 내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요구 사항을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정보로 함께 일하자고 다그치는 꼴이 된다. 한순간에 겉잡을 수 없는 갈등이 생기고, 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선을 감아 정리하는 일은 단순한 안전수칙을 넘어, 삶과 관계에서의 태도를 상징한다. 사소한 수고나 시간을 들이더라도, 전체적인 효율과 안전,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까지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귀찮음을 피하려고 적당히 넘긴다면, 더 큰 불편과 아픔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나는 뼈저리게 배웠다. 화장실 문턱에 이르러 전선을 여러 번 걷어차면서, 동시에 “이렇게 사소한 일에서조차 실패하는구나”라는 자책이 엄습했다. 허리를 숙여 엉켜 버린 전선을 풀어내는 동안, 눈앞이 살짝 아득해졌다. 만약 이 조그만 판단 미스로 내가 크게 다치거나, 가습기가 깨져 피해를 끼쳤다면 어쩔 뻔했나. 가슴이 콩닥거려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차가운 물이 수도꼭지에서 쏟아져 나와 가습기 물때를 씻어내는 동안, 내 마음 한편에서도 무언가가 씻겨 나갔으면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은 사건에서 삶의 한 단면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세심한 준비 없이 서두르다 보면, 중간에 더 큰 고생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넘어지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어쩔 수 없었어”라며 변명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내가 전선을 감아 두는 수고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일까, 가습기 청소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앞으론 전선을 꼭 감아서 들고 가자”라고 중얼거렸다.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가습기 하나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훨씬 크고 복잡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사건들은 종종 우리에게서 “이게 정말 효율적인가, 안전한가,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는 않는가”라는 질문을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전선을 감는 수고쯤은 생략해 버린다. 아니, 생략이라기보다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급히 뛰어드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충분히 대비하고 준비할 수는 없다. 때로는 시간이나 자원이 부족해 즉각적인 실천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전선 한 줄 정도를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아끼는 게 정말 나을까? 준비 없이 불쑥 뛰어드는 행동이, 그 뒤로 이어지는 불편과 위험을 감수할 만큼 대단한 것인가? 가습기 전선처럼, 고작 몇 초를 아낄 욕심에 몇 배로 시간을 잃고, 몸과 마음이 다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건 장기적인 손해가 아닐까. 더구나, 내 서두름이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두렵다. 이번엔 나 혼자 다리를 부딪히고 넘어진 걸로 끝날 뻔했지만, 회사의 협업 상황에서 내 경솔함이 누군가를 크게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이를테면, 준비되지 않은 보고서를 빨리빨리 제출해 달라고 재촉하거나, 주말에 느닷없이 업무를 던져 놓고는 “당연히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그렇다. 그 순간, 상대는 내가 길 위에 늘어놓은 전선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격이다. 돌아오는 건 관계의 균열, 그리고 한 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더 큰 노력일 뿐이다. 가습기 사건이 내게 준 교훈은, “번거롭게 보여도 전선을 감아서 옮기는 게 결국 더 빠르고 안전하다”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내 삶 전반으로 확장하려 한다. 지금 당장 귀찮아도, 조금 더 준비하자. 서둘러 넘어가 버리는 태도가 정말 현명한지, 다시 한번 물어보자. 그리고 그 사이에는, 누군가가 이 전선 때문에 넘어지지는 않을지, 조심스럽게 살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가습기 청소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문득 걸음을 늦췄다. “정리되지 않은 전선이야말로, 내게 필요한 자각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인생은 단절된 이벤트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프로젝트이고, 사소한 실수나 준비 부족이 의외의 파급효과를 낳는다는 걸 잊지 말자. 누군가가 “왜 이렇게 세심하게 준비해?”라고 물어보면, 나는 오늘 일을 떠올리며 웃을 테다. “한 번 전선을 감지 않고 가습기를 옮겼는데, 큰 고생을 했거든.” 이 경험을 통해 “내 조급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는다. 만약 내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넘어지고 다치는 상황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렇고, 회사의 협업도 그렇다. 조그만 준비와 세심함으로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그 시간을 아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여러 시행착오 끝에 우리가 배우는 건, 서로의 안전을 조금 더 생각해 보자는 것 아닐까. 사무실 안에서 가습기는 다시 물을 내뿜고 있다. 다음번 청소할 때는 반드시 전선을 감아서 옮길 것이다. 삶도 그랬으면 한다. 작은 배려로 무거운 짐을 편히 지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는 지혜를, 나는 오늘의 ‘가습기 전선’에서 배워 간다. 언제나 우리에게는 안전과 배려 사이를 택할 시간이, 단 몇 초라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걸 놓치지 않는다면, 인생의 계단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다른 이의 길도 더 이상 가로막지 않으리라 믿는다.
1.5미터 가습기 전선 바깥공기가 서늘한 늦겨울,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찬 기운이 사무실 곳곳에 번져 있었다. 달력은 봄이 가까워 왔다고 말해 주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겨울의 한가운데처럼 느껴진다. 이런 조용한 오후에, 나는 사소한 일로부터 삶의 진실 하나를 배웠다. 무심코 놓아둔 전선 한 줄이 누군가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사무실 구석에 자리 잡은 가습기에 물때가 제법 쌓여 있다는 걸 알아채고, “이제 한 번 청소해야지” 결심했다. 문제는, 가습기에 달린 전선 약 1.5미터를 제대로 감아서 들고 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냥 들고 가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가습기만 두 팔로 안아 든 채 화장실로 향했는데, 그 순간부터 작은 파국이 시작되었다. 걸음을 떼자마자, 다리에 플러그가 탁탁 부딪혔다. 처음에는 참을 만했지만, 계단에 이르러서는 전선이 발밑에 감기며 휘청거렸다. 미끄러질 뻔한 몸을 간신히 잡았는데, 잠깐만 더 늦었더라면 가습기도 내 몸도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을지 모른다. 숨이 턱 막히고 이마에 땀이 맺혔다. 미리 전선을 감아 뒀다면 멀쩡히 걸어갔을 텐데, 괜한 서두름이 이런 사소한 사고를 부른 셈이다. 생각해 보니, 이 일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내 태도에 대한 경고처럼 다가왔다. “왜 내가 전선을 감는 일조차 귀찮아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자, 더 나은 답은 찾기 어렵다. 시간을 몇 초 아껴 보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결국은 더 긴 시간을 소모하고, 더 큰 불편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다리와 플러그가 부딪히는 불편도, 한순간에 넘어질 뻔한 위험도, 전부 나 자신이 자초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비슷한 패턴이 아닐까. 전선을 감아서 안전을 확보하듯, 업무 전반의 구조나 핵심 포인트를 미리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걸 생략하고 “빨리빨리 시작하자”라며 추진했다가, 막상 후반부에 더 큰 재작업과 오류를 발견해 모두가 힘들어지곤 한다. 몇 분, 혹은 몇 시간이 아까워서 생략한 일이, 나중에는 며칠, 몇 주간의 문제로 돌아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내 서두름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란다. 전선을 질질 끌고 다니다가 다른 사람의 다리에 걸리게 하면, 그 사람이 넘어진다. 일로 치면, 내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요구 사항을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정보로 함께 일하자고 다그치는 꼴이 된다. 한순간에 겉잡을 수 없는 갈등이 생기고, 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선을 감아 정리하는 일은 단순한 안전수칙을 넘어, 삶과 관계에서의 태도를 상징한다. 사소한 수고나 시간을 들이더라도, 전체적인 효율과 안전,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까지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귀찮음을 피하려고 적당히 넘긴다면, 더 큰 불편과 아픔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나는 뼈저리게 배웠다. 화장실 문턱에 이르러 전선을 여러 번 걷어차면서, 동시에 “이렇게 사소한 일에서조차 실패하는구나”라는 자책이 엄습했다. 허리를 숙여 엉켜 버린 전선을 풀어내는 동안, 눈앞이 살짝 아득해졌다. 만약 이 조그만 판단 미스로 내가 크게 다치거나, 가습기가 깨져 피해를 끼쳤다면 어쩔 뻔했나. 가슴이 콩닥거려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차가운 물이 수도꼭지에서 쏟아져 나와 가습기 물때를 씻어내는 동안, 내 마음 한편에서도 무언가가 씻겨 나갔으면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은 사건에서 삶의 한 단면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세심한 준비 없이 서두르다 보면, 중간에 더 큰 고생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넘어지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어쩔 수 없었어”라며 변명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내가 전선을 감아 두는 수고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일까, 가습기 청소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앞으론 전선을 꼭 감아서 들고 가자”라고 중얼거렸다.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가습기 하나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훨씬 크고 복잡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사건들은 종종 우리에게서 “이게 정말 효율적인가, 안전한가,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는 않는가”라는 질문을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전선을 감는 수고쯤은 생략해 버린다. 아니, 생략이라기보다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급히 뛰어드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충분히 대비하고 준비할 수는 없다. 때로는 시간이나 자원이 부족해 즉각적인 실천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전선 한 줄 정도를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아끼는 게 정말 나을까? 준비 없이 불쑥 뛰어드는 행동이, 그 뒤로 이어지는 불편과 위험을 감수할 만큼 대단한 것인가? 가습기 전선처럼, 고작 몇 초를 아낄 욕심에 몇 배로 시간을 잃고, 몸과 마음이 다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건 장기적인 손해가 아닐까. 더구나, 내 서두름이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두렵다. 이번엔 나 혼자 다리를 부딪히고 넘어진 걸로 끝날 뻔했지만, 회사의 협업 상황에서 내 경솔함이 누군가를 크게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이를테면, 준비되지 않은 보고서를 빨리빨리 제출해 달라고 재촉하거나, 주말에 느닷없이 업무를 던져 놓고는 “당연히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그렇다. 그 순간, 상대는 내가 길 위에 늘어놓은 전선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격이다. 돌아오는 건 관계의 균열, 그리고 한 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더 큰 노력일 뿐이다. 가습기 사건이 내게 준 교훈은, “번거롭게 보여도 전선을 감아서 옮기는 게 결국 더 빠르고 안전하다”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내 삶 전반으로 확장하려 한다. 지금 당장 귀찮아도, 조금 더 준비하자. 서둘러 넘어가 버리는 태도가 정말 현명한지, 다시 한번 물어보자. 그리고 그 사이에는, 누군가가 이 전선 때문에 넘어지지는 않을지, 조심스럽게 살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가습기 청소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문득 걸음을 늦췄다. “정리되지 않은 전선이야말로, 내게 필요한 자각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인생은 단절된 이벤트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프로젝트이고, 사소한 실수나 준비 부족이 의외의 파급효과를 낳는다는 걸 잊지 말자. 누군가가 “왜 이렇게 세심하게 준비해?”라고 물어보면, 나는 오늘 일을 떠올리며 웃을 테다. “한 번 전선을 감지 않고 가습기를 옮겼는데, 큰 고생을 했거든.” 이 경험을 통해 “내 조급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는다. 만약 내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넘어지고 다치는 상황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렇고, 회사의 협업도 그렇다. 조그만 준비와 세심함으로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그 시간을 아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여러 시행착오 끝에 우리가 배우는 건, 서로의 안전을 조금 더 생각해 보자는 것 아닐까. 사무실 안에서 가습기는 다시 물을 내뿜고 있다. 다음번 청소할 때는 반드시 전선을 감아서 옮길 것이다. 삶도 그랬으면 한다. 작은 배려로 무거운 짐을 편히 지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는 지혜를, 나는 오늘의 ‘가습기 전선’에서 배워 간다. 언제나 우리에게는 안전과 배려 사이를 택할 시간이, 단 몇 초라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걸 놓치지 않는다면, 인생의 계단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다른 이의 길도 더 이상 가로막지 않으리라 믿는다.
2025-11-04 (No.67)
몸 담고 있던 하나의 조직을 떠나면서 남긴 글 ####### 동료였던 분들에게 본 메일이 전달 될지 모르겠어요. 부디 잘 전해지면 좋겠어요. 마지막 근무일 오후에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당일 일과 시간이 끝나지 않은 시각에 접속해보니 제 슬랙 계정이 종료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접속할 방법이 없어서 직접 글을 드리지 못하고 메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몇년 전 ****이라는 조직에 왔던 처음 한달이 많이 생각납니다. 첫주에 대표님은 제가 어떤 업무를 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고 역할을 부여해주기 위해서 많이 신경써주셨습니다. 처음에 리스계약관리 파일에서 지역별로 자료 산출 업무를 주신 일이 있었는데, 리스계약관리 파일을 처음 본 입장에서 살펴보다 30분만에 일어나서 '지시하신 일을 몰라서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날 당일에 짐싸서 가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시간을 두고 살펴보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에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업의 구조와 핵심적인 역할에 대한 이해 없이 단편적인 부분들을 보면서 업무를 하다보니 옆에서 보기에 답답한 시간이 길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해와 관용으로 여러 기회를 제공해주신 덕분에 좋은 동료들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느달에는 자체 탁송 업무를 위해 탁송 차량을 구입해서 회사 자산으로 확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륜차와 달리 사륜차는 갑부와 을부가 있고, 근저당 설정이 가능한 동산이기에 경찰청을 통해서 압류 통지가 이어졌습니다. 한 지서에서 압류를 해제하면 다른 곳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압류를 걸어서, 과태료를 안고 있는 사업체는 차량을 소유하면 안된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차량에 대한 압류는 경찰청 과태료를 기반으로 발생하고, 지자체 과태료의 경우에는 회사 보유 계좌에 대한 압류를 걸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날에는 회사에 통지서가 날아왔는데 회사 계좌를 압류한다는 예고장이었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미납한 행정 과태료 과다로 지자체에서 압류를 걸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과태료 발행 후 안내하는 업무가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당시에는 소수의 인원으로 업무를 하면서 발생 과태료 안내를 적시에 하지 못하면서 계약자와 과태료 납부에 관한 분쟁이 있기도 했고, 통지가 안되고 폐기된 통지서로 인해서 회사에서 인지하지 못하고 압류 처분을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이라도 성실히 놓치지 않고 실행해야 하고, 만약 실수한 것이 있다면 사실대로 공개하고, 조직이 지속가능하도록, 업무 과정을 개선하고 절차를 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해당 경험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저는 그 업무를 등한시한 일을 지탄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면 조직은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을 검증하고 신뢰하면서 개선해야지, 회사에서 발생한 문제를 한 사람의 귀책사유로만 던져 버리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흔히 법인격을 사람과 동일시합니다만, 법인체는 조직이라는 집합체이고 그 집합체 자체가 하나의 존재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법인이라는 조직은 제 생각에, 구성원 모두의 공의를 바탕으로 생존하고 의사결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최근에 몇몇 구성원이 다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이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에게는 수많은 선택의 과정과 의사 결정의 책임, 위임 받은 권한을 올바르게 쓸 책임과 권리가 동시에 있습니다.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간극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서 격의 없는 소통과 동등한 의사결정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책임과 무게를 안고 있는 것에 대해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것이 모든 의사결정을 한 사람의 책임으로 두는 것은 너무 힘들고 개인으로도 불행한 과정이라는 점을 ****에서 배운 것 같습니다. 누구라도 사람은 한계가 있는 법이니 멀리 가려면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일생을 뒤돌아보면 파트타임 업무부터 시작해서 중견기업, 스타트업, 소기업 취업, 창업, 실업, 일용직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확실히 인지한 것은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잘 해내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의식과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기에,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통장 잔고에 천억을 담고 있는 사람도 '내일은 어떻게 하루 일과를 해내야 하지?'라는 염려를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힘보다는, 이 조직에 속한 모든 분에게 각자의 의사를 개진하는 자유로움과 진실한 존중이 공존한다면 회사는 성장의 기회를 찾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에는 이와 같은 필수불가결한 가치의 공존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가끔은 앞으로 일어날 일은, 사실은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최신 과학 이론에서 천체물리학의 블록 우주론 (Block Universe Theory) 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은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거대한 4차원 시공간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은 현재, 지금만 있다는 의식은 환상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우리는 3차원 존재로서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블록 우주를 순서대로 통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블록 우주론을 접하고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미리 다 작성되어 있는 대본에 따라 발생하는 일들을 한사람의 플레이어로 역할을 할뿐이라 생각 하면, 그 역할의 높낮이와 가치의 차이가 저의 의지와 노력보다 더 큰 설계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안도할 때가 있습니다. 블록 우주론을 따른다면 ****에서 저의 마지막도 정해진 일일 것이고, ****에서 실행했던 일들의 과정과 결과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가 가졌던 의지의 크기도 모두 정해진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처음 ****에 왔을 때 이미, 마무리하는 지금 이 순간이 확정되어 있었다 해도, 저는 그 과정을 다시 돌아가서 한다면 똑같이 할 것 같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해도 오늘 제가 선택한 일을 성실하게, 다른 누군가가 아닌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애쓸 것입니다.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가능하다면 좋은 분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에게 건강과 평안함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미래가 정해져있다고 해도 오늘 내가 잠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자유정도는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자유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서울사무소 잭슨1호를 잘 챙겨주세요. 적색 램프가 들어오면 물을 채워줘야 청소가 되는데 제가 없어서 잭슨1호가 목마르게 지낼까봐 마음이 쓰입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 10시에 성실하게 바닥청소를 하는 또 하나의 동료에요. 서울사무소, 경기남부사무소, 인천사무소 모든 분들, 행복하게 지내세요.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모든 분들에게도, 행복한 선택과 멋진 기회가 앞날에 축복처럼 놓여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어떤 선택이라도 자신의 것이라면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이라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제가 믿고 신뢰하는 어떤 분이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두려운 감정에 작은 쉼표를 더해보면 기분 좋은 긴장감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니 두려워하기보다 자신만의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의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는 길을 멋지게 찾아 가시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ps. 다음번 계정 정리 해야 할 경우에는 퇴사자에게 계정 정리 시각을 먼저 통지해주는 것이 좋겠어요. 사소하지만 당연한 일이 잘 지켜지는 ****이 되기를 바래요. 사소하지만 당연한 일, 그것이 DD의 기본 의미이기도 합니다.
몸 담고 있던 하나의 조직을 떠나면서 남긴 글 ####### 동료였던 분들에게 본 메일이 전달 될지 모르겠어요. 부디 잘 전해지면 좋겠어요. 마지막 근무일 오후에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당일 일과 시간이 끝나지 않은 시각에 접속해보니 제 슬랙 계정이 종료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접속할 방법이 없어서 직접 글을 드리지 못하고 메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몇년 전 ****이라는 조직에 왔던 처음 한달이 많이 생각납니다. 첫주에 대표님은 제가 어떤 업무를 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고 역할을 부여해주기 위해서 많이 신경써주셨습니다. 처음에 리스계약관리 파일에서 지역별로 자료 산출 업무를 주신 일이 있었는데, 리스계약관리 파일을 처음 본 입장에서 살펴보다 30분만에 일어나서 '지시하신 일을 몰라서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날 당일에 짐싸서 가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시간을 두고 살펴보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에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업의 구조와 핵심적인 역할에 대한 이해 없이 단편적인 부분들을 보면서 업무를 하다보니 옆에서 보기에 답답한 시간이 길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해와 관용으로 여러 기회를 제공해주신 덕분에 좋은 동료들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느달에는 자체 탁송 업무를 위해 탁송 차량을 구입해서 회사 자산으로 확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륜차와 달리 사륜차는 갑부와 을부가 있고, 근저당 설정이 가능한 동산이기에 경찰청을 통해서 압류 통지가 이어졌습니다. 한 지서에서 압류를 해제하면 다른 곳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압류를 걸어서, 과태료를 안고 있는 사업체는 차량을 소유하면 안된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차량에 대한 압류는 경찰청 과태료를 기반으로 발생하고, 지자체 과태료의 경우에는 회사 보유 계좌에 대한 압류를 걸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날에는 회사에 통지서가 날아왔는데 회사 계좌를 압류한다는 예고장이었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미납한 행정 과태료 과다로 지자체에서 압류를 걸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과태료 발행 후 안내하는 업무가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당시에는 소수의 인원으로 업무를 하면서 발생 과태료 안내를 적시에 하지 못하면서 계약자와 과태료 납부에 관한 분쟁이 있기도 했고, 통지가 안되고 폐기된 통지서로 인해서 회사에서 인지하지 못하고 압류 처분을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이라도 성실히 놓치지 않고 실행해야 하고, 만약 실수한 것이 있다면 사실대로 공개하고, 조직이 지속가능하도록, 업무 과정을 개선하고 절차를 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해당 경험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저는 그 업무를 등한시한 일을 지탄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면 조직은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을 검증하고 신뢰하면서 개선해야지, 회사에서 발생한 문제를 한 사람의 귀책사유로만 던져 버리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흔히 법인격을 사람과 동일시합니다만, 법인체는 조직이라는 집합체이고 그 집합체 자체가 하나의 존재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법인이라는 조직은 제 생각에, 구성원 모두의 공의를 바탕으로 생존하고 의사결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최근에 몇몇 구성원이 다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이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에게는 수많은 선택의 과정과 의사 결정의 책임, 위임 받은 권한을 올바르게 쓸 책임과 권리가 동시에 있습니다.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간극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서 격의 없는 소통과 동등한 의사결정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책임과 무게를 안고 있는 것에 대해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것이 모든 의사결정을 한 사람의 책임으로 두는 것은 너무 힘들고 개인으로도 불행한 과정이라는 점을 ****에서 배운 것 같습니다. 누구라도 사람은 한계가 있는 법이니 멀리 가려면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일생을 뒤돌아보면 파트타임 업무부터 시작해서 중견기업, 스타트업, 소기업 취업, 창업, 실업, 일용직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확실히 인지한 것은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잘 해내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의식과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기에,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통장 잔고에 천억을 담고 있는 사람도 '내일은 어떻게 하루 일과를 해내야 하지?'라는 염려를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힘보다는, 이 조직에 속한 모든 분에게 각자의 의사를 개진하는 자유로움과 진실한 존중이 공존한다면 회사는 성장의 기회를 찾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에는 이와 같은 필수불가결한 가치의 공존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가끔은 앞으로 일어날 일은, 사실은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최신 과학 이론에서 천체물리학의 블록 우주론 (Block Universe Theory) 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은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거대한 4차원 시공간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은 현재, 지금만 있다는 의식은 환상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우리는 3차원 존재로서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블록 우주를 순서대로 통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블록 우주론을 접하고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미리 다 작성되어 있는 대본에 따라 발생하는 일들을 한사람의 플레이어로 역할을 할뿐이라 생각 하면, 그 역할의 높낮이와 가치의 차이가 저의 의지와 노력보다 더 큰 설계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안도할 때가 있습니다. 블록 우주론을 따른다면 ****에서 저의 마지막도 정해진 일일 것이고, ****에서 실행했던 일들의 과정과 결과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가 가졌던 의지의 크기도 모두 정해진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처음 ****에 왔을 때 이미, 마무리하는 지금 이 순간이 확정되어 있었다 해도, 저는 그 과정을 다시 돌아가서 한다면 똑같이 할 것 같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해도 오늘 제가 선택한 일을 성실하게, 다른 누군가가 아닌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애쓸 것입니다.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가능하다면 좋은 분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에게 건강과 평안함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미래가 정해져있다고 해도 오늘 내가 잠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자유정도는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자유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서울사무소 잭슨1호를 잘 챙겨주세요. 적색 램프가 들어오면 물을 채워줘야 청소가 되는데 제가 없어서 잭슨1호가 목마르게 지낼까봐 마음이 쓰입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 10시에 성실하게 바닥청소를 하는 또 하나의 동료에요. 서울사무소, 경기남부사무소, 인천사무소 모든 분들, 행복하게 지내세요.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모든 분들에게도, 행복한 선택과 멋진 기회가 앞날에 축복처럼 놓여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어떤 선택이라도 자신의 것이라면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이라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제가 믿고 신뢰하는 어떤 분이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두려운 감정에 작은 쉼표를 더해보면 기분 좋은 긴장감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니 두려워하기보다 자신만의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의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는 길을 멋지게 찾아 가시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ps. 다음번 계정 정리 해야 할 경우에는 퇴사자에게 계정 정리 시각을 먼저 통지해주는 것이 좋겠어요. 사소하지만 당연한 일이 잘 지켜지는 ****이 되기를 바래요. 사소하지만 당연한 일, 그것이 DD의 기본 의미이기도 합니다.
2025-07-07 (No.66)
마을버스에서 코로나 이후에 문득 이직하게 되었는데 운 좋게도 집 가까운 곳으로 일터를 옮겼다. 이직하고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겠다는 각오로 도보로 출퇴근할 생각을 했다. 걸어서 3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라서 실천하기 어려운 목표도 아니고 아침 시간 짧은 공복 산책이 건강에 도움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첫 한 주일은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는 긴장감에 피곤한 줄 모르고 도보로 출근을 했다. 햇살 가득해지는 아침, 밤사이 잠들어 있던 길을 나의 발걸음으로 깨우는 그 느낌도 좋았다. 그렇지만, 새로운 일터에서 하나둘씩 역할이 주어지기 시작하면서 퇴근 시각이 늦어지기 시작하면서 미처 전날의 피로함을 다 지우지 못한 아침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아침 산책과 같은 출근을 포기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비 오는 것이 핑계였지만, 비 오지 않는 날에도 도보 출퇴근은 더는 하지 않게 되었다. 걸어서 출근이라는 결심을 멈춘 이유에는 피곤함 이외에 마을버스도 한 몫이 있었는데, 집을 나서면 1분 거리에 있는 정류장에서 종로 5번 마을버스를 타면 한 번에 회사 앞까지 데려다주는 유혹은 포기하기에는 너무 달콤한 것이었다. 게으른 성품 탓에 한자리에 자리 잡고 살아온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되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마을버스를 타는 일은 그동안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마을버스가 지나가면 지나가나보다 무심하게 바라본 시간만 십수 년이었다. 종로 5번 마을버스는 나와는 인연이 없는 다른 세상의 것이었는데, 이제는 매일 아침 기다리고, 허무하게 놓쳐서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 없도록 아침 시작의 일상을 마을버스 오는 시각에 맞춰 생활하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손에 든 휴대전화 속 세상 이야기를 들여다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이동하는 시간의 무료함을 채우곤 했는데, 일찍 눈에 세월이 찾아든 탓에 흔들리는 마을버스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 덕분에 마을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무심하게 스쳐 갈 때는 늘 같아 보였던 마을버스 밖 풍경도 관심 가지는 만큼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마을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마을버스에서 배우기도 하는데, 어느 날인가 가을 코스모스가 한껏 꽃잎을 펼친 날 마을버스 앞자리에 앉은 두 분의 대화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을에는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화려한데, 몇 년 전부터 아름다운 길이 소문이 나서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나기도 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 길은 온전히 자연이 준 선물로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길이 아니었기에 우연히 날아온 씨앗이 아름답게 자리 잡은 것이라 짐작만 했다. “지난 여름에 그렇게 날이 가물었는데 혼자서 물지게를 지고 올라가서 물을 주더라고요” 자연이 우연히 준 선물이라고만 여겼던 마을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은 지난 몇 해의 여름 동안 이름도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헌신 덕분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가을 코스모스가 한껏 피어난 날이면 잠시 그 길에 서서 꽃을 볼 수 있도록 해준 이에게 감사를 담은 말을 꽃에 속삭이는 습관이 생겼다. 마을버스가 준 고마운 습관이리라. * * * 어린 시절 풀린 신발 끈을 스스로 밟고 넘어져서 크게 다친 경험이 있는 나는 걷기를 할 때 땅을 보고 걷는 습관이 있다. 크게 다침의 정도가 신발 끈을 밟으며 넘어지면서 얼굴을 심하게 다쳤다. 난생처음 병원에 실려 간 경험은 살아가면서 걷는 동안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 보니 걷는 동안에는 주변 사물을 잘 못 보는 아쉬움이 있다. 고개를 들면 투명한 호수에 한 방울 물감을 떨군 듯한 푸른 하늘과 물가의 잔영처럼 반짝이는 구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사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크고 작은 색의 변화도 있지만, 그 모습을 살펴볼 여유가 걷는 나에게는 없다. 마을버스에 오른 나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는 세상의 모습을 볼 자유를 만끽한다. 마을버스 길은 경사가 심한 곳도 있는데, 비 오는 날 천천히 경사를 오르내리는 버스에서는 주변 경관이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지나가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신발과 옷깃을 적실 비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을버스 안에 있는 그 순간만큼은 천천히 가는 마을버스를 만들어준 비에 감사한 마음이기도 하다. * * * 마을을 도는 작은 마을버스를 타보았다면 알겠지만, 보통의 마을버스는 13~14석 정도의 좌석이 있다. 그중에서 두 좌석은 출입문 가까이에 있는데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곳의 자리는 보통 대중교통 이용 약자를 위한 배려석으로 남겨두는 좌석이다. 어느 날 저녁 늦은 퇴근길 보통의 날처럼 마을버스에 올랐다. 그날은 특히나 감당하기 벅찬 세상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낸 하루를 보낸 기분이었다. 늦은 시각이라 마을버스에는 앉을 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잠시 주어진 휴식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버스 끝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전조등에 끌려가는 밤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점에서 탑승한 마을버스가 출발하고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탑승하는 사람들로 마을버스는 이내 만원 버스가 되었다. 그 안에서 자리가 없어서 곤란한 표정으로 버스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한 어머님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자리마다 연로하신 승객이 앉아 있던 탓에 앉을 자리를 잡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뒷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느껴져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좌석에 앉아 있는 기력 있어 보이는 이가 나 혼자였던 이유도 있었다. 서 있던 분에게 뒷좌석으로 자리를 안내하고 나니, 곧이어 대중교통 이용 약자 배려석에 앉은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상관할 바 아니지만, 20대 중반쯤 보이는 그 승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불편함이 역력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날따라 피곤함이 몰아쳤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배려석에 앉은 승객에게 조금 미운 감정이 들었다. ‘내가 상관한 일은 아니지만’ 함께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모두 공유하고 있는 작은 상식이 깨지는 것 같은 기분에 못마땅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한두 번 더 눈이 마주쳤는데, 배려석 앉은 이에게서 미묘한 눈빛이 스쳤다. 처음에는 그 눈빛이 불쾌함이나 미안함 같은 감정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는 그 승객을 보고서는 혼자만의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눈에 ‘멀쩡해’ 보이던 그 승객은 한쪽 팔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날은 비 오는 날이라서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손에 쥐는 힘이 없는 탓인지 우산을 떨어뜨리고는 줍지 못했다. 힘이 남아 있는 한쪽 다리와 팔로 버스를 내리는 그 손에 우산을 쥐여주면서 미안한 마음을 담아 눈인사를 전했다. 그날 마을버스에서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이는 나 하나였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아직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지혜가 충만하지 못한 나를 그날 나는 마을버스 배려석에서 민낯으로 만났다. 마을버스에서 인생을 새롭게, 다시 배운다. 걷기를 포기한 게으름의 결과치고는 행복한 선물을 받고 있다. 그래서 감사하다.
마을버스에서 코로나 이후에 문득 이직하게 되었는데 운 좋게도 집 가까운 곳으로 일터를 옮겼다. 이직하고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겠다는 각오로 도보로 출퇴근할 생각을 했다. 걸어서 3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라서 실천하기 어려운 목표도 아니고 아침 시간 짧은 공복 산책이 건강에 도움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첫 한 주일은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는 긴장감에 피곤한 줄 모르고 도보로 출근을 했다. 햇살 가득해지는 아침, 밤사이 잠들어 있던 길을 나의 발걸음으로 깨우는 그 느낌도 좋았다. 그렇지만, 새로운 일터에서 하나둘씩 역할이 주어지기 시작하면서 퇴근 시각이 늦어지기 시작하면서 미처 전날의 피로함을 다 지우지 못한 아침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아침 산책과 같은 출근을 포기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비 오는 것이 핑계였지만, 비 오지 않는 날에도 도보 출퇴근은 더는 하지 않게 되었다. 걸어서 출근이라는 결심을 멈춘 이유에는 피곤함 이외에 마을버스도 한 몫이 있었는데, 집을 나서면 1분 거리에 있는 정류장에서 종로 5번 마을버스를 타면 한 번에 회사 앞까지 데려다주는 유혹은 포기하기에는 너무 달콤한 것이었다. 게으른 성품 탓에 한자리에 자리 잡고 살아온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되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마을버스를 타는 일은 그동안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마을버스가 지나가면 지나가나보다 무심하게 바라본 시간만 십수 년이었다. 종로 5번 마을버스는 나와는 인연이 없는 다른 세상의 것이었는데, 이제는 매일 아침 기다리고, 허무하게 놓쳐서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 없도록 아침 시작의 일상을 마을버스 오는 시각에 맞춰 생활하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손에 든 휴대전화 속 세상 이야기를 들여다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이동하는 시간의 무료함을 채우곤 했는데, 일찍 눈에 세월이 찾아든 탓에 흔들리는 마을버스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 덕분에 마을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무심하게 스쳐 갈 때는 늘 같아 보였던 마을버스 밖 풍경도 관심 가지는 만큼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마을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마을버스에서 배우기도 하는데, 어느 날인가 가을 코스모스가 한껏 꽃잎을 펼친 날 마을버스 앞자리에 앉은 두 분의 대화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을에는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화려한데, 몇 년 전부터 아름다운 길이 소문이 나서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나기도 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 길은 온전히 자연이 준 선물로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길이 아니었기에 우연히 날아온 씨앗이 아름답게 자리 잡은 것이라 짐작만 했다. “지난 여름에 그렇게 날이 가물었는데 혼자서 물지게를 지고 올라가서 물을 주더라고요” 자연이 우연히 준 선물이라고만 여겼던 마을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은 지난 몇 해의 여름 동안 이름도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헌신 덕분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가을 코스모스가 한껏 피어난 날이면 잠시 그 길에 서서 꽃을 볼 수 있도록 해준 이에게 감사를 담은 말을 꽃에 속삭이는 습관이 생겼다. 마을버스가 준 고마운 습관이리라. * * * 어린 시절 풀린 신발 끈을 스스로 밟고 넘어져서 크게 다친 경험이 있는 나는 걷기를 할 때 땅을 보고 걷는 습관이 있다. 크게 다침의 정도가 신발 끈을 밟으며 넘어지면서 얼굴을 심하게 다쳤다. 난생처음 병원에 실려 간 경험은 살아가면서 걷는 동안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 보니 걷는 동안에는 주변 사물을 잘 못 보는 아쉬움이 있다. 고개를 들면 투명한 호수에 한 방울 물감을 떨군 듯한 푸른 하늘과 물가의 잔영처럼 반짝이는 구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사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크고 작은 색의 변화도 있지만, 그 모습을 살펴볼 여유가 걷는 나에게는 없다. 마을버스에 오른 나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는 세상의 모습을 볼 자유를 만끽한다. 마을버스 길은 경사가 심한 곳도 있는데, 비 오는 날 천천히 경사를 오르내리는 버스에서는 주변 경관이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지나가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신발과 옷깃을 적실 비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을버스 안에 있는 그 순간만큼은 천천히 가는 마을버스를 만들어준 비에 감사한 마음이기도 하다. * * * 마을을 도는 작은 마을버스를 타보았다면 알겠지만, 보통의 마을버스는 13~14석 정도의 좌석이 있다. 그중에서 두 좌석은 출입문 가까이에 있는데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곳의 자리는 보통 대중교통 이용 약자를 위한 배려석으로 남겨두는 좌석이다. 어느 날 저녁 늦은 퇴근길 보통의 날처럼 마을버스에 올랐다. 그날은 특히나 감당하기 벅찬 세상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낸 하루를 보낸 기분이었다. 늦은 시각이라 마을버스에는 앉을 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잠시 주어진 휴식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버스 끝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전조등에 끌려가는 밤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점에서 탑승한 마을버스가 출발하고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탑승하는 사람들로 마을버스는 이내 만원 버스가 되었다. 그 안에서 자리가 없어서 곤란한 표정으로 버스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한 어머님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자리마다 연로하신 승객이 앉아 있던 탓에 앉을 자리를 잡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뒷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느껴져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좌석에 앉아 있는 기력 있어 보이는 이가 나 혼자였던 이유도 있었다. 서 있던 분에게 뒷좌석으로 자리를 안내하고 나니, 곧이어 대중교통 이용 약자 배려석에 앉은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상관할 바 아니지만, 20대 중반쯤 보이는 그 승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불편함이 역력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날따라 피곤함이 몰아쳤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배려석에 앉은 승객에게 조금 미운 감정이 들었다. ‘내가 상관한 일은 아니지만’ 함께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모두 공유하고 있는 작은 상식이 깨지는 것 같은 기분에 못마땅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한두 번 더 눈이 마주쳤는데, 배려석 앉은 이에게서 미묘한 눈빛이 스쳤다. 처음에는 그 눈빛이 불쾌함이나 미안함 같은 감정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는 그 승객을 보고서는 혼자만의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눈에 ‘멀쩡해’ 보이던 그 승객은 한쪽 팔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날은 비 오는 날이라서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손에 쥐는 힘이 없는 탓인지 우산을 떨어뜨리고는 줍지 못했다. 힘이 남아 있는 한쪽 다리와 팔로 버스를 내리는 그 손에 우산을 쥐여주면서 미안한 마음을 담아 눈인사를 전했다. 그날 마을버스에서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이는 나 하나였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아직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지혜가 충만하지 못한 나를 그날 나는 마을버스 배려석에서 민낯으로 만났다. 마을버스에서 인생을 새롭게, 다시 배운다. 걷기를 포기한 게으름의 결과치고는 행복한 선물을 받고 있다. 그래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