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기록
2026-07-21 (No.123)
당신의 바다 - a poem
기름때와 땀방울이 범벅된 화구 앞
이마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타지 않게 마음 쏟아 담은 작은 찬거리들.
가파른 언덕길, 좁은 골목을 누비며
등짐 가득 옮겨 실은 온기 한 그릇.
가쁜 숨 끝에 흔들리던 무력한 질문은
다정한 주름 앞에 고요히 묵념이 되었다.
"김할매라 불러라" 아이처럼 웃으시던 집,
젊은 날 푸른 제주 바다를 등지고
사랑 하나 마음에 품고 육지로 온 깊은 생애.
벽 한구석, 빛바랜 고무 잠수복 사진 속엔
드센 파도를 배경으로 아련히 웃는 청춘이 있고,
렌즈 너머 당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남편의 눈빛이
오랜 세월을 건너 여전히 찰랑이고 있었다.
수십 번을 들어 다 외워버린 옛이야기를
마음의 서랍에서 다시 차곡차곡 꺼내어놓던 시간.
도시락을 정성껏 담아내듯
그 마음의 자리를 다정히 지키던 나날들.
"언젠가 바다에 다시 가고 싶다"던 나직한 소망,
끝내 이뤄주지 못한 채 떠나보낸 손끝의 약속에도
대답하던 내 눈빛 속 진심을 할머니는 아셨을까.
이제는 육지의 고단한 숨을 가만히 벗어두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푸른 윤슬 속으로.
빛바랜 사진 속 그 눈부신 날처럼
다시 만난 사랑하는 이의 손을 꼭 잡고
당신의 아름다운 바다에서 영원히 평안하시기를.
당신의 바다 - a poem
기름때와 땀방울이 범벅된 화구 앞
이마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타지 않게 마음 쏟아 담은 작은 찬거리들.
가파른 언덕길, 좁은 골목을 누비며
등짐 가득 옮겨 실은 온기 한 그릇.
가쁜 숨 끝에 흔들리던 무력한 질문은
다정한 주름 앞에 고요히 묵념이 되었다.
"김할매라 불러라" 아이처럼 웃으시던 집,
젊은 날 푸른 제주 바다를 등지고
사랑 하나 마음에 품고 육지로 온 깊은 생애.
벽 한구석, 빛바랜 고무 잠수복 사진 속엔
드센 파도를 배경으로 아련히 웃는 청춘이 있고,
렌즈 너머 당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남편의 눈빛이
오랜 세월을 건너 여전히 찰랑이고 있었다.
수십 번을 들어 다 외워버린 옛이야기를
마음의 서랍에서 다시 차곡차곡 꺼내어놓던 시간.
도시락을 정성껏 담아내듯
그 마음의 자리를 다정히 지키던 나날들.
"언젠가 바다에 다시 가고 싶다"던 나직한 소망,
끝내 이뤄주지 못한 채 떠나보낸 손끝의 약속에도
대답하던 내 눈빛 속 진심을 할머니는 아셨을까.
이제는 육지의 고단한 숨을 가만히 벗어두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푸른 윤슬 속으로.
빛바랜 사진 속 그 눈부신 날처럼
다시 만난 사랑하는 이의 손을 꼭 잡고
당신의 아름다운 바다에서 영원히 평안하시기를.
2026-07-21 (No.122)
당신의 바다 (리마스터)
잠시, 흐트러진 사물들의 자리를 정돈하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고요히 과거의 한 시절을 회상해본다. 정리수납전문가로 살아가기 시작하며 타인의 밀려난 시간과 마음을 매만지는 요즘, 때때로 오래전 마음 깊은 곳에 켜켜이 쌓아둔 온기가 떠오르곤 한다. 예전에는 종종 음식을 나누고 도시락을 싸서 이웃에게 전달하는 봉사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아는 후배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서 준비한 반찬을 그릇에 담고 필요한 분들에게 제때 보내드릴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요리까지는 몰라도 반찬을 용기에 담는 정도라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흔쾌히 도우러 가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가벼웠던 판단이 순전한 실수였는지, 아니면 어떤 필연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어떤 거역할 수 없는 다정한 이끌림이었는지 알 수 없다.
막상 찾아간 그곳은 단순히 ‘반찬을 담는 일만’ 하면 되는 여유로운 자리가 아니었다. 어떤 재료는 여전히 손질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한쪽 화구의 볶음 요리는 이제 막 간을 맞추며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주방은 성인 몇 명이 서기에도 무척 좁았고 그릇마저 부족했던 탓에, 한쪽에서는 쌓여 있는 설거지를 밀어내며 조리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완성된 음식을 옮겨 담아 식기를 기다린 후 김이 빠지기를 바라며 하나씩 포장해야 하는 막막한 과제가 놓여 있었다. 그날, 파도치는 아득한 바닷가에 홀로 서서 망망대해 끝을 넘어 막막한 수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다행히 반찬 하나하나, 국 한 그릇마다 정성스레 적힌 요리법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어서, 낯선 손길들이나마 차근차근 손발을 맞춰가며 조리를 시작했다.
냉방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조리실의 열기 속에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혹여나 반찬에 떨어질까 두려웠다. 마치 어느 요릿집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마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뜨거운 화구 앞에 서서 진미채를 볶기를 반복했다. 진미채는 양념이 조금만 방심해도 쉽게 타버리는 반찬이었기에 초보인 나로서는 한 번에 많은 양을 해낼 방도가 없었다. 진미채 양념이 타지 않도록 조금씩 양을 덜어내어 조심스레 볶아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훌쩍 지나갔고, 나 같은 초보의 손 하나가 더 보태진 것으로는 쌓인 일이 도무지 줄어드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경험이 부족하고 서툰 나와는 달리, 함께한 다른 이들은 마치 초인처럼 숙련된 솜씨로 맡은 일들을 차근차근 해치워준 덕분에 적당한 시간에 가까스로 조리를 마칠 수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각자의 지갑을 털어 정성껏 준비한 밥과 반찬이었기에 그 양이 풍족할 리가 없었다. 반찬 한 가닥, 양념 한 점이라도 흘려 못 쓰게 된다면 누군가의 도시락에는 쓸쓸한 빈자리가 생겨버릴 터였다. 그렇기에 찬을 하나하나 덜어 용기에 담는 손길은 분주함 속에서도 더없이 신중하고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 주방에서 그저 설거지나 돕거나 라면 정도를 끓여내고는 거창한 요리사라도 된 양 의기양양해했던 것이 내 요리 경험의 전부였기에, 그날 그 조리실에서 맛본 주방 일의 뜨거움과 치열함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마지막 볶음을 마치고 완성된 반찬 그릇의 뚜껑을 모두 닫은 뒤에야 비로소 가쁜 정신이 돌아왔다. 신고 있던 주방 장화 속에는 땀과 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몸도 마음도 온통 흠뻑 젖어 있었다. 불 앞에서 칼을 들고 서 있던 긴장감이 한꺼번에 물러서자 거센 피로감이 밀물처럼 덮쳐왔다. 그저 잠시 주방에 서서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몸은 단축 마라톤을 온 힘으로 뛰어낸 누군가의 다른 몸처럼 무겁고 찌뿌둥했다.
그러나 쉴 틈은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 어르신들의 점심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빠짐없이 배달해 드려야 하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거리까지는 차로 한 번에 이동했지만, 골목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는 일은 오롯이 두 다리의 힘에 의지해야 하는 고된 과정이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길과 오르막길을, 묵직한 도시락을 담은 등짐을 지고 올라가야 했다. 한 사람은 도시락을 나르고 한 사람은 등짐을 메고 올라가는 구조였기에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짊어질 몫이 결코 적지 않았다. 정확한 무게를 가늠할 수도 없었지만, 한 시간여 동안 배달을 마치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는 다리가 뜻대로 지탱해주지 못해 잠시 길가에 서서 숨을 고르고 쉬어야 할 정도였다.
숨 막히는 조리실에서 땀에 절여지던 매 순간마다, 그리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며 가쁜 호흡을 내쉬던 중간중간, 내 안에서 잠시 혼란스러운 의념이 고개를 들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겠다. ‘평생을 이렇게 도와드릴 수도 없을 텐데, 고작 이 한 끼를 드리는 것이 과연 이분들의 삶에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그런 회의적인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생각이 들자마자 스스로가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해져서 머릿속에서 재빨리 그 마음을 지워버렸다는 사실이다. 공간을 정돈하듯, 스스로의 비겁한 마음을 서둘러 비워내고자 했다.
배달 일을 모두 마치고 언덕을 내려오는데, 후배가 잠시 들를 곳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나는 먼저 가보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문득 아까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나도 모르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끝나면 꼭 들러요”라고 누군가 따뜻하게 건네신 말씀에, 정신이 쏙 빠져 있던 나는 마음에도 없는 건성 대답을 건넸는데, 후배가 그 말을 잊지 않고 들었던 모양이었다. 비록 얼떨결에 한 대답이었을지라도 약속은 약속이었기에, 그 지친 몸을 이끌고 약속을 지키려 그 집을 찾아갔다. 그렇게 만난 분이 바로 ‘감나무 집 할머니’, 당신 스스로를 ‘김할매’라고 부르라던 어르신이었다. 김 할머니도 아니고 김할매라니, 내 나이의 두 배도 넘는 분을 그리 친근하다 못해 허물없이 부르는 것이 처음엔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김할매’라고 부를 때마다 주름진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속 거부감을 흔쾌히 내려놓았다. 그래서 글에서도 당신의 생전 부탁대로 김할매라고 부르고자 한다.
김할매는 젊은 시절 오랫동안 제주 바다를 누비던 해녀였다고 하셨다. 그러다 육지에서 만난 남편분에게 첫눈에 반해 그토록 사랑하던 바다를 떠났고, 객지 생활을 시작한 지 이미 셀 수 없는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그러나 김할매가 그 푸른 바다를 버리고 선택했던 남편분은 정작 너무나 일찍 당신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나중에 이웃을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 김할매가 몸이 아파 누웠을 때 남편분이 병간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막일을 나가셨다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셨다고 했다. 그 가슴 아픈 사연을 차마 당신께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기에, 소문으로 전해 들은 정도로만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김할매의 작은 방 벽면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한가운데 걸려 있었다. 고무 잠수복을 입은 김할매의 아주 오래전 젊은 날 모습이었다. 원래 흑백사진이었는지 아니면 오랜 세월에 색이 바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법 파도가 드세게 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김할매의 싱그러운 청춘이 담겨 있었다. 그날따라 파도가 유난히 높아서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다 마쳤다가, 당신을 너무나 걱정하는 사랑하는 이 때문에 결국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대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던 날이라고 하셨다. 그 사연을 듣고 사진을 다시 가만히 바라보자, 사진 속에는 비록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김할매의 따스한 표정 속에서 렌즈 너머 사랑하는 남편을 마주 보고 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김할매는 그 빛바랜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날 렌즈 너머에서 자신을 담아주던 남편의 다정한 모습이 고스란히 떠오른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후배가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도시락을 준비하는 날이면 자연스레 조리실을 찾아 함께했다. 조리실에 대한 첫 기억은 텁텁한 공기, 더운 열기, 온갖 반찬 냄새가 어지럽게 뒤섞인 혼란스러움과 늘 시간에 쫓기는 부산스러움뿐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소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음이 고요해짐을 느꼈다. 반찬을 용기에 정성껏 담는 순간마다 김할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환하게 맞이하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그 속에서 빛나던 눈동자의 따뜻한 환대 덕분이었다. 김할매의 방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며, 이미 수십 번을 들어 다 외우다시피 한 옛이야기를 다시 들을 때마다, 일찍 떠난 남편을 그토록 아련하고 행복하게 추억하는 김할매의 곁을 지키는 시간이 내게도 무척이나 다정하고 소중했다.
그 따뜻했던 도시락 나눔은 다음 해 김할매가 조용히 소천하실 때까지 이어졌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어느 날, 당신의 삶에 남은 시간을 직감하셨는지 김할매는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그 푸른 바닷가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노라고. 나는 꼭 그리해 드리겠다고, 바다 구경을 시켜드리겠노라 단단히 대답했었지만, 결국 그 약속을 끝내 지켜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김할매 역시 알고 계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대답하던 내 눈빛과 손길 속에 담겨 있던 진심을 말이다.
김할매는 결국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아름다운 바다를 다시 찾아가셨을까. 그곳에서 빛바랜 사진 속 그 싱그러웠던 시절로 돌아가, 수십 년 동안 오롯이 그리워하던 남편분과 다시 만나셨다면 좋겠다. 당신의 그 눈부시고 아름다운 바다에서 이제는 아픔 없이 항상 행복하시기를, 고요한 이 아침에 마음 모아 조용히 소망해 본다.
당신의 바다 (리마스터)
잠시, 흐트러진 사물들의 자리를 정돈하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고요히 과거의 한 시절을 회상해본다. 정리수납전문가로 살아가기 시작하며 타인의 밀려난 시간과 마음을 매만지는 요즘, 때때로 오래전 마음 깊은 곳에 켜켜이 쌓아둔 온기가 떠오르곤 한다. 예전에는 종종 음식을 나누고 도시락을 싸서 이웃에게 전달하는 봉사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아는 후배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서 준비한 반찬을 그릇에 담고 필요한 분들에게 제때 보내드릴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요리까지는 몰라도 반찬을 용기에 담는 정도라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흔쾌히 도우러 가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가벼웠던 판단이 순전한 실수였는지, 아니면 어떤 필연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어떤 거역할 수 없는 다정한 이끌림이었는지 알 수 없다.
막상 찾아간 그곳은 단순히 ‘반찬을 담는 일만’ 하면 되는 여유로운 자리가 아니었다. 어떤 재료는 여전히 손질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한쪽 화구의 볶음 요리는 이제 막 간을 맞추며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주방은 성인 몇 명이 서기에도 무척 좁았고 그릇마저 부족했던 탓에, 한쪽에서는 쌓여 있는 설거지를 밀어내며 조리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완성된 음식을 옮겨 담아 식기를 기다린 후 김이 빠지기를 바라며 하나씩 포장해야 하는 막막한 과제가 놓여 있었다. 그날, 파도치는 아득한 바닷가에 홀로 서서 망망대해 끝을 넘어 막막한 수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다행히 반찬 하나하나, 국 한 그릇마다 정성스레 적힌 요리법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어서, 낯선 손길들이나마 차근차근 손발을 맞춰가며 조리를 시작했다.
냉방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조리실의 열기 속에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혹여나 반찬에 떨어질까 두려웠다. 마치 어느 요릿집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마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뜨거운 화구 앞에 서서 진미채를 볶기를 반복했다. 진미채는 양념이 조금만 방심해도 쉽게 타버리는 반찬이었기에 초보인 나로서는 한 번에 많은 양을 해낼 방도가 없었다. 진미채 양념이 타지 않도록 조금씩 양을 덜어내어 조심스레 볶아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훌쩍 지나갔고, 나 같은 초보의 손 하나가 더 보태진 것으로는 쌓인 일이 도무지 줄어드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경험이 부족하고 서툰 나와는 달리, 함께한 다른 이들은 마치 초인처럼 숙련된 솜씨로 맡은 일들을 차근차근 해치워준 덕분에 적당한 시간에 가까스로 조리를 마칠 수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각자의 지갑을 털어 정성껏 준비한 밥과 반찬이었기에 그 양이 풍족할 리가 없었다. 반찬 한 가닥, 양념 한 점이라도 흘려 못 쓰게 된다면 누군가의 도시락에는 쓸쓸한 빈자리가 생겨버릴 터였다. 그렇기에 찬을 하나하나 덜어 용기에 담는 손길은 분주함 속에서도 더없이 신중하고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 주방에서 그저 설거지나 돕거나 라면 정도를 끓여내고는 거창한 요리사라도 된 양 의기양양해했던 것이 내 요리 경험의 전부였기에, 그날 그 조리실에서 맛본 주방 일의 뜨거움과 치열함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마지막 볶음을 마치고 완성된 반찬 그릇의 뚜껑을 모두 닫은 뒤에야 비로소 가쁜 정신이 돌아왔다. 신고 있던 주방 장화 속에는 땀과 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몸도 마음도 온통 흠뻑 젖어 있었다. 불 앞에서 칼을 들고 서 있던 긴장감이 한꺼번에 물러서자 거센 피로감이 밀물처럼 덮쳐왔다. 그저 잠시 주방에 서서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몸은 단축 마라톤을 온 힘으로 뛰어낸 누군가의 다른 몸처럼 무겁고 찌뿌둥했다.
그러나 쉴 틈은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 어르신들의 점심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빠짐없이 배달해 드려야 하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거리까지는 차로 한 번에 이동했지만, 골목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는 일은 오롯이 두 다리의 힘에 의지해야 하는 고된 과정이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길과 오르막길을, 묵직한 도시락을 담은 등짐을 지고 올라가야 했다. 한 사람은 도시락을 나르고 한 사람은 등짐을 메고 올라가는 구조였기에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짊어질 몫이 결코 적지 않았다. 정확한 무게를 가늠할 수도 없었지만, 한 시간여 동안 배달을 마치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는 다리가 뜻대로 지탱해주지 못해 잠시 길가에 서서 숨을 고르고 쉬어야 할 정도였다.
숨 막히는 조리실에서 땀에 절여지던 매 순간마다, 그리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며 가쁜 호흡을 내쉬던 중간중간, 내 안에서 잠시 혼란스러운 의념이 고개를 들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겠다. ‘평생을 이렇게 도와드릴 수도 없을 텐데, 고작 이 한 끼를 드리는 것이 과연 이분들의 삶에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그런 회의적인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생각이 들자마자 스스로가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해져서 머릿속에서 재빨리 그 마음을 지워버렸다는 사실이다. 공간을 정돈하듯, 스스로의 비겁한 마음을 서둘러 비워내고자 했다.
배달 일을 모두 마치고 언덕을 내려오는데, 후배가 잠시 들를 곳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나는 먼저 가보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문득 아까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나도 모르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끝나면 꼭 들러요”라고 누군가 따뜻하게 건네신 말씀에, 정신이 쏙 빠져 있던 나는 마음에도 없는 건성 대답을 건넸는데, 후배가 그 말을 잊지 않고 들었던 모양이었다. 비록 얼떨결에 한 대답이었을지라도 약속은 약속이었기에, 그 지친 몸을 이끌고 약속을 지키려 그 집을 찾아갔다. 그렇게 만난 분이 바로 ‘감나무 집 할머니’, 당신 스스로를 ‘김할매’라고 부르라던 어르신이었다. 김 할머니도 아니고 김할매라니, 내 나이의 두 배도 넘는 분을 그리 친근하다 못해 허물없이 부르는 것이 처음엔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김할매’라고 부를 때마다 주름진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속 거부감을 흔쾌히 내려놓았다. 그래서 글에서도 당신의 생전 부탁대로 김할매라고 부르고자 한다.
김할매는 젊은 시절 오랫동안 제주 바다를 누비던 해녀였다고 하셨다. 그러다 육지에서 만난 남편분에게 첫눈에 반해 그토록 사랑하던 바다를 떠났고, 객지 생활을 시작한 지 이미 셀 수 없는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그러나 김할매가 그 푸른 바다를 버리고 선택했던 남편분은 정작 너무나 일찍 당신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나중에 이웃을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 김할매가 몸이 아파 누웠을 때 남편분이 병간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막일을 나가셨다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셨다고 했다. 그 가슴 아픈 사연을 차마 당신께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기에, 소문으로 전해 들은 정도로만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김할매의 작은 방 벽면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한가운데 걸려 있었다. 고무 잠수복을 입은 김할매의 아주 오래전 젊은 날 모습이었다. 원래 흑백사진이었는지 아니면 오랜 세월에 색이 바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법 파도가 드세게 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김할매의 싱그러운 청춘이 담겨 있었다. 그날따라 파도가 유난히 높아서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다 마쳤다가, 당신을 너무나 걱정하는 사랑하는 이 때문에 결국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대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던 날이라고 하셨다. 그 사연을 듣고 사진을 다시 가만히 바라보자, 사진 속에는 비록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김할매의 따스한 표정 속에서 렌즈 너머 사랑하는 남편을 마주 보고 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김할매는 그 빛바랜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날 렌즈 너머에서 자신을 담아주던 남편의 다정한 모습이 고스란히 떠오른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후배가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도시락을 준비하는 날이면 자연스레 조리실을 찾아 함께했다. 조리실에 대한 첫 기억은 텁텁한 공기, 더운 열기, 온갖 반찬 냄새가 어지럽게 뒤섞인 혼란스러움과 늘 시간에 쫓기는 부산스러움뿐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소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음이 고요해짐을 느꼈다. 반찬을 용기에 정성껏 담는 순간마다 김할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환하게 맞이하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그 속에서 빛나던 눈동자의 따뜻한 환대 덕분이었다. 김할매의 방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며, 이미 수십 번을 들어 다 외우다시피 한 옛이야기를 다시 들을 때마다, 일찍 떠난 남편을 그토록 아련하고 행복하게 추억하는 김할매의 곁을 지키는 시간이 내게도 무척이나 다정하고 소중했다.
그 따뜻했던 도시락 나눔은 다음 해 김할매가 조용히 소천하실 때까지 이어졌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어느 날, 당신의 삶에 남은 시간을 직감하셨는지 김할매는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그 푸른 바닷가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노라고. 나는 꼭 그리해 드리겠다고, 바다 구경을 시켜드리겠노라 단단히 대답했었지만, 결국 그 약속을 끝내 지켜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김할매 역시 알고 계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대답하던 내 눈빛과 손길 속에 담겨 있던 진심을 말이다.
김할매는 결국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아름다운 바다를 다시 찾아가셨을까. 그곳에서 빛바랜 사진 속 그 싱그러웠던 시절로 돌아가, 수십 년 동안 오롯이 그리워하던 남편분과 다시 만나셨다면 좋겠다. 당신의 그 눈부시고 아름다운 바다에서 이제는 아픔 없이 항상 행복하시기를, 고요한 이 아침에 마음 모아 조용히 소망해 본다.
2026-07-10 (No.121)
오늘이라는 정직한 시간으로 채워내는 아름다운 공간
오랫동안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루는 세상 속에서 살아왔다. IT 기업에서 기획을 하고 개발을 조율하며, 복잡한 시스템의 뼈대를 세우는 엔지니어로 일하는 동안 내 세계는 언제나 모니터의 차가운 불빛 속에만 존재했다. 이어진 몇 곳의 스타트업에서는 창업을 지원하고 경영의 기틀을 닦는 일들을 맡았다. 인사와 노무, 총무를 아우르고 정부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계획서를 쓰던 나날들이었다.
그것은 대개 아직 오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손을 뻗는 일이었다. 당장 지키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거창한 약속을 문서 위에 새겨야 했고, 언제가 될지도 모를 미래의 결과를 무작정 예상하고 약속해야만 했다. 화려한 숫자와 단어들로 채워진 보고서들을 들여다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기묘한 허공이 자라나곤 했다. 내가 딛고 선 자리가 과연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늘 보이지 않는 신기루 위를 위태롭게 서성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최근, 어떤 이끌림처럼 정리수납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고 사흘간의 현장 실습을 마쳤다. 그 짧고도 강렬했던 시간은 내가 평생 몸담아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지극히 정직하고 눈부신 새로운 세상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정리수납이라는 일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거쳐온 그 어떤 일보다도 말할 수 없이 정직했다. 정부지원사업이나 과제를 수행할 때는 먼 미래의 성과를 담보로 실현 가능성이 흐릿한 약속들을 쏟아내야 했지만, 이 일은 오직 오늘이라는 정직한 시간만을 요구한다. 오늘 아침 고객과 약속한 일, 혹은 내 집을 정리하며 스스로와 맺은 약속은 날이 저물기 전에 고스란히 눈앞의 결과로 증명된다. 거기에는 어떤 과장도, 속임수도, 지키지 못할 유예된 약속도 끼어들 틈이 없다.
내가 땀 흘려 손을 움직인 만큼, 멈추어 있던 공간이 서서히 숨을 쉬기 시작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경이로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매 순간 물건 하나를 집어 들고 고심하여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련의 과정들은, 마치 허공에 흩어져 있던 내 삶의 파편들을 하나씩 단단한 땅 위로 내려놓는 듯한 안도감을 주었다. 일 한 만큼 정직하게 돌려주는 공간의 변화를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오랜 시간 갈구해왔던 일의 묵직한 온기와 보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실습 과정에서 마주한 정리수납의 첫 단계는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을 밖으로 꺼내는 일이었다. 깊숙한 서랍과 닫힌 옷장 속,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사물들이 방 한가운데로 쏟아져 나올 때, 그것은 단순히 물건의 무더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지나온 삶과 흔적들이 날것 그대로 펼쳐지는 순간과 같았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분류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공간을 확보하고, 그 확보된 공간에 물건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정밀하게 정하여 수납의 방법을 조율한다.
그 과정에서 집주인조차 미처 알지 못하고 있던 소중한 물건이 환하게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더이상 아무런 용도가 없어진 채 짐이 되어버린 것들이 담담히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버릴 것은 용기 있게 배출하고, 남겨둘 것은 쓰임새에 맞게 분류하여 새로운 자리를 찾아준다. 이 정교하고 섬세한 손길을 거치고 나면,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져 마음 디딜 틈 없던 공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단정하고 고요한 제 모습을 되찾는다.
그것은 단순히 방을 깨끗하게 치우는 육체적인 노동을 넘어, 누군가의 흐트러진 공간을 새로이 재생시키는 일이었고, 무너진 희망을 회복시켜주는 일이었으며, 마음의 상처를 부드럽게 치유해주는 성스러운 의식에 가까웠다. 사물들이 통제력을 잃고 엉켜 있는 공간은, 대개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 역시 깊은 상처나 무기력으로 웅크리고 있음을 대변하곤 한다. 스스로를 돌볼 여력을 잃어버린 채 흐트러진 방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리수납은 그들의 짓밟힌 일상과 무너진 희망을 다시금 회복시켜주는 고요한 구원의 손길이 된다.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새로이 재생시키는 과정은, 그 공간의 주인에게 당신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게 정돈될 수 있다는 무언의 위로를 건네는 일이다. 먼지를 털어내고 물건들의 자리를 찾아주며 나는 보았다.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마다 공간을 채우고 있던 무겁고 서늘한 공기가 서서히 따스하고 다정한 온기로 변해가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환해진 방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가에 어린 잔잔한 안도감을 마주할 때, 이 일이 누군가의 마음에 깊숙이 가닿아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깃든 공간을 정성껏 매만지는 동안,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나의 내면을 향해 가만히 가닿았다. 가파르게 변하는 IT 세상 속에서, 또 치열하게 생존해야 했던 스타트업의 한복판에서, 나 역시 내 마음의 서랍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 안에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해묵은 불안과, 이미 용도를 다해 진즉 버렸어야 마땅한 과거의 기억들, 그리고 지키지 못해 마음에 먼지처럼 쌓인 약속들이 옷장 속 물건들처럼 엉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들을 전부 꺼내어 분류하듯, 내 마음속에 고여 있는 것들도 가끔은 모조리 꺼내놓아야 할 때가 필요한 법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온전히 수납할 것은 수납하고, 더 이상 나를 자라나게 하지 못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배출할 수 있어야 한다. 내면을 비워내고 정돈하는 일 역시, 사흘 동안 몸으로 배웠던 수납의 정직한 법칙과 완벽하게 닮아 있었다.
사흘간의 실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 가슴속에는 서두르지 않는 잔잔한 온기가 가득 차올랐다. 내 손으로 직접 누군가의 공간을 재생시키고, 그 안에서 상처 입은 마음들이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은 내 삶의 지표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모니터 너머의 불확실한 미래를 조바심 내며 바라보는 대신, 지금 내 발이 닿은 현재의 공간에서 가만히 땀을 흘리는 이 시간들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정리수납은 단순히 물건을 보기 좋게 정돈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의 무게에 짓눌려 숨 가빠하는 이들에게 숨 쉴 구멍을 열어주는 일이며, 흐트러진 일상에 다정한 질서를 선물하는 아름다운 헌신이다. 물건의 자리를 찾아주듯 우리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이 정직한 여정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의 공간과 마음을 환하게 깨우게 될지 가만히 헤아려본다. 내 손끝에서 시작된 이 작은 재생의 몸짓이,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에 가닿아 따스한 회복의 향기로 오래도록 머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이라는 정직한 시간으로 채워내는 아름다운 공간
오랫동안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루는 세상 속에서 살아왔다. IT 기업에서 기획을 하고 개발을 조율하며, 복잡한 시스템의 뼈대를 세우는 엔지니어로 일하는 동안 내 세계는 언제나 모니터의 차가운 불빛 속에만 존재했다. 이어진 몇 곳의 스타트업에서는 창업을 지원하고 경영의 기틀을 닦는 일들을 맡았다. 인사와 노무, 총무를 아우르고 정부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계획서를 쓰던 나날들이었다.
그것은 대개 아직 오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손을 뻗는 일이었다. 당장 지키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거창한 약속을 문서 위에 새겨야 했고, 언제가 될지도 모를 미래의 결과를 무작정 예상하고 약속해야만 했다. 화려한 숫자와 단어들로 채워진 보고서들을 들여다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기묘한 허공이 자라나곤 했다. 내가 딛고 선 자리가 과연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늘 보이지 않는 신기루 위를 위태롭게 서성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최근, 어떤 이끌림처럼 정리수납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고 사흘간의 현장 실습을 마쳤다. 그 짧고도 강렬했던 시간은 내가 평생 몸담아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지극히 정직하고 눈부신 새로운 세상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정리수납이라는 일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거쳐온 그 어떤 일보다도 말할 수 없이 정직했다. 정부지원사업이나 과제를 수행할 때는 먼 미래의 성과를 담보로 실현 가능성이 흐릿한 약속들을 쏟아내야 했지만, 이 일은 오직 오늘이라는 정직한 시간만을 요구한다. 오늘 아침 고객과 약속한 일, 혹은 내 집을 정리하며 스스로와 맺은 약속은 날이 저물기 전에 고스란히 눈앞의 결과로 증명된다. 거기에는 어떤 과장도, 속임수도, 지키지 못할 유예된 약속도 끼어들 틈이 없다.
내가 땀 흘려 손을 움직인 만큼, 멈추어 있던 공간이 서서히 숨을 쉬기 시작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경이로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매 순간 물건 하나를 집어 들고 고심하여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련의 과정들은, 마치 허공에 흩어져 있던 내 삶의 파편들을 하나씩 단단한 땅 위로 내려놓는 듯한 안도감을 주었다. 일 한 만큼 정직하게 돌려주는 공간의 변화를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오랜 시간 갈구해왔던 일의 묵직한 온기와 보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실습 과정에서 마주한 정리수납의 첫 단계는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을 밖으로 꺼내는 일이었다. 깊숙한 서랍과 닫힌 옷장 속,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사물들이 방 한가운데로 쏟아져 나올 때, 그것은 단순히 물건의 무더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지나온 삶과 흔적들이 날것 그대로 펼쳐지는 순간과 같았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분류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공간을 확보하고, 그 확보된 공간에 물건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정밀하게 정하여 수납의 방법을 조율한다.
그 과정에서 집주인조차 미처 알지 못하고 있던 소중한 물건이 환하게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더이상 아무런 용도가 없어진 채 짐이 되어버린 것들이 담담히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버릴 것은 용기 있게 배출하고, 남겨둘 것은 쓰임새에 맞게 분류하여 새로운 자리를 찾아준다. 이 정교하고 섬세한 손길을 거치고 나면,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져 마음 디딜 틈 없던 공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단정하고 고요한 제 모습을 되찾는다.
그것은 단순히 방을 깨끗하게 치우는 육체적인 노동을 넘어, 누군가의 흐트러진 공간을 새로이 재생시키는 일이었고, 무너진 희망을 회복시켜주는 일이었으며, 마음의 상처를 부드럽게 치유해주는 성스러운 의식에 가까웠다. 사물들이 통제력을 잃고 엉켜 있는 공간은, 대개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 역시 깊은 상처나 무기력으로 웅크리고 있음을 대변하곤 한다. 스스로를 돌볼 여력을 잃어버린 채 흐트러진 방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리수납은 그들의 짓밟힌 일상과 무너진 희망을 다시금 회복시켜주는 고요한 구원의 손길이 된다.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새로이 재생시키는 과정은, 그 공간의 주인에게 당신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게 정돈될 수 있다는 무언의 위로를 건네는 일이다. 먼지를 털어내고 물건들의 자리를 찾아주며 나는 보았다.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마다 공간을 채우고 있던 무겁고 서늘한 공기가 서서히 따스하고 다정한 온기로 변해가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환해진 방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가에 어린 잔잔한 안도감을 마주할 때, 이 일이 누군가의 마음에 깊숙이 가닿아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깃든 공간을 정성껏 매만지는 동안,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나의 내면을 향해 가만히 가닿았다. 가파르게 변하는 IT 세상 속에서, 또 치열하게 생존해야 했던 스타트업의 한복판에서, 나 역시 내 마음의 서랍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 안에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해묵은 불안과, 이미 용도를 다해 진즉 버렸어야 마땅한 과거의 기억들, 그리고 지키지 못해 마음에 먼지처럼 쌓인 약속들이 옷장 속 물건들처럼 엉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들을 전부 꺼내어 분류하듯, 내 마음속에 고여 있는 것들도 가끔은 모조리 꺼내놓아야 할 때가 필요한 법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온전히 수납할 것은 수납하고, 더 이상 나를 자라나게 하지 못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배출할 수 있어야 한다. 내면을 비워내고 정돈하는 일 역시, 사흘 동안 몸으로 배웠던 수납의 정직한 법칙과 완벽하게 닮아 있었다.
사흘간의 실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 가슴속에는 서두르지 않는 잔잔한 온기가 가득 차올랐다. 내 손으로 직접 누군가의 공간을 재생시키고, 그 안에서 상처 입은 마음들이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은 내 삶의 지표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모니터 너머의 불확실한 미래를 조바심 내며 바라보는 대신, 지금 내 발이 닿은 현재의 공간에서 가만히 땀을 흘리는 이 시간들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정리수납은 단순히 물건을 보기 좋게 정돈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의 무게에 짓눌려 숨 가빠하는 이들에게 숨 쉴 구멍을 열어주는 일이며, 흐트러진 일상에 다정한 질서를 선물하는 아름다운 헌신이다. 물건의 자리를 찾아주듯 우리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이 정직한 여정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의 공간과 마음을 환하게 깨우게 될지 가만히 헤아려본다. 내 손끝에서 시작된 이 작은 재생의 몸짓이,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에 가닿아 따스한 회복의 향기로 오래도록 머물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26-07-08 (No.120)
세 잎의 향기
식물과의 인연도 사람의 인연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평소에 자주 하곤 한다. 우리 집 베란다 한구석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알로카시아를 바라볼 때마다 그런 마음은 더욱 깊어진다. 이 푸른 식물이 처음 우리 집에 선물로 찾아온 지도 벌써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긴 시간 동안 녀석이 겪어낸 세월은 평탄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무지한 주인을 만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몇 번이나 넘나들어야 했던 알로카시아의 생명력을 지켜보며, 나는 식물에게서 인생을 배우고 주위를 돌아보는 깊은 지혜를 얻게 되었다.
본래 알로카시아는 동남아시아 열대 지방이 원산지인 관엽식물로, 은은한 햇살이 내리쬐는 반양지에서 푸른 생명력을 가장 아름답게 뿜어내는 성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의 소홀함 때문에 녀석은 평온한 환경 대신 혹독한 시련을 마주해야 했다. 가장 큰 고비는 어느 해 한겨울의 베란다였다. 매서운 한파가 온 집안을 파고들던 날, 베란다에 방치되다시피 놓여 있던 알로카시아는 얼어붙어 죽기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푸르던 녹색 빛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갈색으로 변해버린 참혹한 모습 앞에서 절망했을 때, 식물은 스스로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음을 직감했던 모양이다. 보통의 환경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꽃대를 올리고 기어이 귀한 씨앗을 맺어낸 것이다. 비록 자신은 사라질지라도 어떻게든 다음 세대를 남겨 생명을 이어가겠다는 숭고한 본능이 힘겹게 맺어준 그 씨앗은, 결국 우리 집에서 알로카시아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게 만든 기적 같은 생명의 불씨가 되어주었다.
그 소중한 씨앗에서부터 다시 싹을 틔워 자라나기 시작했을 때, 이번에야말로 정말 정성을 다해 제대로 키우겠노라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생명을 가꾸는 일은 늘 마음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는 법이어서, 이번에는 물주기가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과하게 물을 자주 준 탓에 화분 속 흙이 과습해지며 녀석의 뿌리가 서서히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푸르던 줄기가 힘없이 주저앉고 흙 속에서 생명의 기운이 통째로 허물어질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과거의 그 모진 추위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기적의 씨앗이었는데, 나의 미숙함으로 인해 완전히 종지부를 찍는 것만 같아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화분을 바라보는 일조차 괴로워 한동안 차마 보지 못하고 베란다 구석진 곳에 밀쳐두고 지냈는데, 완전히 포기한 채 시간의 흐름 속에 방치하고 있던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먼지가 뽀얗게 쌓여가던 화분 구석자리에서 아주 작고 가냘픈 새잎 하나가 단단한 흙을 뚫고 쏙 올라오며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음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올봄이 찾아오자마자 서둘러 화분을 통째로 엎고 분갈이를 새로이 해주었다. 썩어버린 뿌리 부위를 조심스럽게 가려내어 정리하고, 양분이 그득하게 담긴 신선하고 좋은 흙을 채워 넣은 뒤 뿌리가 다시 단단하게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영양제도 잊지 않고 넣어주었다. 주인의 간절한 정성과 미안한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실핏줄처럼 여리게 돋아났던 새 잎사귀는 하루가 다르게 푸른 빛을 띠며 자라나 마침내 내 손바닥만 한 크기로 당당하게 펼쳐졌다. 본래 코끼리의 커다란 귀를 닮아 거대하게 자라나는 알로카시아의 성정에 비하면 손바닥만 한 지금의 크기는 터무니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갖 풍파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살아남은 녀석에게는 그것이 온 힘을 다해 짜낸 최대의 크기였을 것이기에, 그 작은 잎사귀 하나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무척이나 묵직했다. 그 대견한 모습을 매일같이 지켜보며 조심스럽게 물을 주고 보살핀 지 벌써 육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 아침마다 베란다 문을 열고 녀석의 안부를 살피는 일은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일과가 되었다.
지난 육 개월 동안 알로카시아의 성장을 가만히 관찰하면서 아주 흥미롭고도 기묘한 법칙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알로카시아가 자라나는 방식은 마치 정교하게 짜인 릴레이 경주의 이어달리기를 무척이나 닮아 있다. 기존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던 잎사귀의 줄기 틈새에서 조용히 새로운 잎사귀가 고개를 내밀고, 그 새 잎이 어느 정도 자라나면 또다시 그 안쪽 공간에서 다음 세대의 새 잎이 돋아나는 방식이다. 녀석들은 그런 정밀한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자신들의 푸른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데, 신기한 점은 총 잎사귀의 개수가 세 장 정도가 되면 맨 처음에 돋아났던 가장 오래된 잎사귀가 서서히 시들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새로 태어난 어린 동생들에게 자신의 영양분과 자리를 온전히 양보하듯,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스스로 선언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다.
그 모습이 못내 안타깝고 안쓰러워 예전 같으면 노랗게 시든 잎을 가위로 잘라내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가만히 있는 그대로 두기로 마음먹었다. 잎사귀가 완전히 말라 바스라질 때까지 그 소멸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지켜보며, 늙은 잎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방울의 양분까지 어린 새잎들이 모두 가져다 쓰도록 배려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인의 인위적인 개입을 멈추고 기다려주자 식물은 자신들만의 지혜로운 방식으로 완벽한 생명의 순환을 이뤄내고 있었다. 최근에는 올봄에 맨 처음에 돋아났던 그 애틋한 첫 잎사귀가 완연하게 노란 빛을 띠며 시들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 작은 잎사귀 혼자서 무려 두 달이 넘는 긴 시간을 꿋꿋하게 버텨주었다. 보통 알로카시아의 잎 하나가 이토록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드문데, 자신이 너무 일찍 물러나면 남은 어린 잎들이 온전히 자립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버틴 것만 같았다. 그 눈물겨운 버팀 덕분에 지금 화분 위에는 세 장의 싱싱한 잎사귀가 초록의 빛을 발하며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다.
새로운 푸름은 늙은 잎의 아름다운 퇴장 위에서 비로소 피어난다는 진리를 이 작은 식물을 통해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제 역할을 다한 늙은 잎이 조용히 노랗게 물들어 가며 자신의 온 존재를 다음 세대의 밑거름으로 기꺼이 내어주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 먹먹한 감동과 함께 사람 인생의 깊은 향기가 배어 나오는 듯하다. 우리 인간의 삶 역시 앞선 세대가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소중한 토대 위에서 다음 세대의 푸른 희망이 피어나고, 그들이 주역으로 자라나면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내어주는 이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태워 자식을 사랑으로 기르는 우리 부모님들의 뒷모습처럼, 알로카시아의 시듦은 추한 퇴장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고 향기로운 헌신이다. 앞으로 이 귀한 알로카시아를 더욱 지극정성으로 가꾸며 오래도록 삶의 동반자로 함께하고자 한다. 내가 끊임없는 애정으로 이 식물을 돌본다면, 어쩌면 이 푸른 녀석은 유한한 삶을 사는 나보다도 더 오랫동안 이 세상에 남아 정해진 세 장의 잎을 유지하며 누군가에게 생명의 신비를 고요히 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베란다의 작은 화분 속에서 피어나는 세 잎의 깊은 향기가 지친 나의 일상을 잔잔하고 따스하게 채워오고 있다.
세 잎의 향기
식물과의 인연도 사람의 인연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평소에 자주 하곤 한다. 우리 집 베란다 한구석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알로카시아를 바라볼 때마다 그런 마음은 더욱 깊어진다. 이 푸른 식물이 처음 우리 집에 선물로 찾아온 지도 벌써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긴 시간 동안 녀석이 겪어낸 세월은 평탄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무지한 주인을 만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몇 번이나 넘나들어야 했던 알로카시아의 생명력을 지켜보며, 나는 식물에게서 인생을 배우고 주위를 돌아보는 깊은 지혜를 얻게 되었다.
본래 알로카시아는 동남아시아 열대 지방이 원산지인 관엽식물로, 은은한 햇살이 내리쬐는 반양지에서 푸른 생명력을 가장 아름답게 뿜어내는 성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의 소홀함 때문에 녀석은 평온한 환경 대신 혹독한 시련을 마주해야 했다. 가장 큰 고비는 어느 해 한겨울의 베란다였다. 매서운 한파가 온 집안을 파고들던 날, 베란다에 방치되다시피 놓여 있던 알로카시아는 얼어붙어 죽기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푸르던 녹색 빛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갈색으로 변해버린 참혹한 모습 앞에서 절망했을 때, 식물은 스스로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음을 직감했던 모양이다. 보통의 환경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꽃대를 올리고 기어이 귀한 씨앗을 맺어낸 것이다. 비록 자신은 사라질지라도 어떻게든 다음 세대를 남겨 생명을 이어가겠다는 숭고한 본능이 힘겹게 맺어준 그 씨앗은, 결국 우리 집에서 알로카시아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게 만든 기적 같은 생명의 불씨가 되어주었다.
그 소중한 씨앗에서부터 다시 싹을 틔워 자라나기 시작했을 때, 이번에야말로 정말 정성을 다해 제대로 키우겠노라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생명을 가꾸는 일은 늘 마음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는 법이어서, 이번에는 물주기가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과하게 물을 자주 준 탓에 화분 속 흙이 과습해지며 녀석의 뿌리가 서서히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푸르던 줄기가 힘없이 주저앉고 흙 속에서 생명의 기운이 통째로 허물어질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과거의 그 모진 추위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기적의 씨앗이었는데, 나의 미숙함으로 인해 완전히 종지부를 찍는 것만 같아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화분을 바라보는 일조차 괴로워 한동안 차마 보지 못하고 베란다 구석진 곳에 밀쳐두고 지냈는데, 완전히 포기한 채 시간의 흐름 속에 방치하고 있던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먼지가 뽀얗게 쌓여가던 화분 구석자리에서 아주 작고 가냘픈 새잎 하나가 단단한 흙을 뚫고 쏙 올라오며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음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올봄이 찾아오자마자 서둘러 화분을 통째로 엎고 분갈이를 새로이 해주었다. 썩어버린 뿌리 부위를 조심스럽게 가려내어 정리하고, 양분이 그득하게 담긴 신선하고 좋은 흙을 채워 넣은 뒤 뿌리가 다시 단단하게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영양제도 잊지 않고 넣어주었다. 주인의 간절한 정성과 미안한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실핏줄처럼 여리게 돋아났던 새 잎사귀는 하루가 다르게 푸른 빛을 띠며 자라나 마침내 내 손바닥만 한 크기로 당당하게 펼쳐졌다. 본래 코끼리의 커다란 귀를 닮아 거대하게 자라나는 알로카시아의 성정에 비하면 손바닥만 한 지금의 크기는 터무니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갖 풍파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살아남은 녀석에게는 그것이 온 힘을 다해 짜낸 최대의 크기였을 것이기에, 그 작은 잎사귀 하나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무척이나 묵직했다. 그 대견한 모습을 매일같이 지켜보며 조심스럽게 물을 주고 보살핀 지 벌써 육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 아침마다 베란다 문을 열고 녀석의 안부를 살피는 일은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일과가 되었다.
지난 육 개월 동안 알로카시아의 성장을 가만히 관찰하면서 아주 흥미롭고도 기묘한 법칙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알로카시아가 자라나는 방식은 마치 정교하게 짜인 릴레이 경주의 이어달리기를 무척이나 닮아 있다. 기존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던 잎사귀의 줄기 틈새에서 조용히 새로운 잎사귀가 고개를 내밀고, 그 새 잎이 어느 정도 자라나면 또다시 그 안쪽 공간에서 다음 세대의 새 잎이 돋아나는 방식이다. 녀석들은 그런 정밀한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자신들의 푸른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데, 신기한 점은 총 잎사귀의 개수가 세 장 정도가 되면 맨 처음에 돋아났던 가장 오래된 잎사귀가 서서히 시들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새로 태어난 어린 동생들에게 자신의 영양분과 자리를 온전히 양보하듯,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스스로 선언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다.
그 모습이 못내 안타깝고 안쓰러워 예전 같으면 노랗게 시든 잎을 가위로 잘라내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가만히 있는 그대로 두기로 마음먹었다. 잎사귀가 완전히 말라 바스라질 때까지 그 소멸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지켜보며, 늙은 잎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방울의 양분까지 어린 새잎들이 모두 가져다 쓰도록 배려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인의 인위적인 개입을 멈추고 기다려주자 식물은 자신들만의 지혜로운 방식으로 완벽한 생명의 순환을 이뤄내고 있었다. 최근에는 올봄에 맨 처음에 돋아났던 그 애틋한 첫 잎사귀가 완연하게 노란 빛을 띠며 시들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 작은 잎사귀 혼자서 무려 두 달이 넘는 긴 시간을 꿋꿋하게 버텨주었다. 보통 알로카시아의 잎 하나가 이토록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드문데, 자신이 너무 일찍 물러나면 남은 어린 잎들이 온전히 자립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버틴 것만 같았다. 그 눈물겨운 버팀 덕분에 지금 화분 위에는 세 장의 싱싱한 잎사귀가 초록의 빛을 발하며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다.
새로운 푸름은 늙은 잎의 아름다운 퇴장 위에서 비로소 피어난다는 진리를 이 작은 식물을 통해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제 역할을 다한 늙은 잎이 조용히 노랗게 물들어 가며 자신의 온 존재를 다음 세대의 밑거름으로 기꺼이 내어주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 먹먹한 감동과 함께 사람 인생의 깊은 향기가 배어 나오는 듯하다. 우리 인간의 삶 역시 앞선 세대가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소중한 토대 위에서 다음 세대의 푸른 희망이 피어나고, 그들이 주역으로 자라나면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내어주는 이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태워 자식을 사랑으로 기르는 우리 부모님들의 뒷모습처럼, 알로카시아의 시듦은 추한 퇴장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고 향기로운 헌신이다. 앞으로 이 귀한 알로카시아를 더욱 지극정성으로 가꾸며 오래도록 삶의 동반자로 함께하고자 한다. 내가 끊임없는 애정으로 이 식물을 돌본다면, 어쩌면 이 푸른 녀석은 유한한 삶을 사는 나보다도 더 오랫동안 이 세상에 남아 정해진 세 장의 잎을 유지하며 누군가에게 생명의 신비를 고요히 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베란다의 작은 화분 속에서 피어나는 세 잎의 깊은 향기가 지친 나의 일상을 잔잔하고 따스하게 채워오고 있다.
2026-07-05 (No.118)
쉿, 조용히 하세요
골목길 어귀에 서서
가만히 입술에 손가락을 대어봅니다
주민들의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낮춰달라는 조그만 안내판
그 글씨를 읽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사랑은
외치거나 소리 내어 자랑하는 게 아니라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고요한 속삭임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 너에게 건네는 내 마음도
아주 나직하게 가만히.
시집 『서울동네』 북촌 한옥마을 편 중에서.
쉿, 조용히 하세요
골목길 어귀에 서서
가만히 입술에 손가락을 대어봅니다
주민들의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낮춰달라는 조그만 안내판
그 글씨를 읽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사랑은
외치거나 소리 내어 자랑하는 게 아니라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고요한 속삭임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 너에게 건네는 내 마음도
아주 나직하게 가만히.
시집 『서울동네』 북촌 한옥마을 편 중에서.
2026-07-02 (No.114)
꽃그늘 아래서
뜰 앞에 피어난 하얀 목련 나무 아래
작은 아이를 앉혀 두고 물었습니다
'이 다음에 엄마가 세상에 없으면
이곳에 찾아와 울어줄 거니?'
아이는 대답 대신
동그랗고 까만 눈망울에
투명한 이슬방울 가득 채워 보여줍니다
예쁜 말로 대답하지 않아도
그 맑은 눈물 속에
내 지상에서의 모든 슬픔이
눈부시게 씻겨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예쁜 것들은 참 많지만
사랑하는 이의 눈에 고인
나를 향한 작은 눈물 한 방울보다
고귀한 꽃 그늘은 없습니다
꽃그늘 아래서
뜰 앞에 피어난 하얀 목련 나무 아래
작은 아이를 앉혀 두고 물었습니다
'이 다음에 엄마가 세상에 없으면
이곳에 찾아와 울어줄 거니?'
아이는 대답 대신
동그랗고 까만 눈망울에
투명한 이슬방울 가득 채워 보여줍니다
예쁜 말로 대답하지 않아도
그 맑은 눈물 속에
내 지상에서의 모든 슬픔이
눈부시게 씻겨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예쁜 것들은 참 많지만
사랑하는 이의 눈에 고인
나를 향한 작은 눈물 한 방울보다
고귀한 꽃 그늘은 없습니다
2026-06-17 (No.113)
가을밤의 밤가시껍질
속살 가득 채워두었던
눈부신 알밤들을 세상에 다 내어주고
황량한 가을 들판 위에
텅 빈 채로 외롭게 누워 있었습니다
날카롭던 사방의 가시들은
이제 제 몸을 지키는 무기가 아니라
지나간 계절의 지독했던 산통을
기억하는 상처의 흉터들일 뿐
매서운 밤바람이 살결을 스쳐 가며
마른 외피를 사정없이 뒤흔들어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 묵묵히 엎드려
소멸의 가혹한 퇴로를 받아들이는 침묵
외로움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론적 숙명임을 깨달은 얼굴로 누워
오직 하늘의 시린 별빛만을
맑고 호젓하게 응시하고 있습니다
가을밤의 밤가시껍질
속살 가득 채워두었던
눈부신 알밤들을 세상에 다 내어주고
황량한 가을 들판 위에
텅 빈 채로 외롭게 누워 있었습니다
날카롭던 사방의 가시들은
이제 제 몸을 지키는 무기가 아니라
지나간 계절의 지독했던 산통을
기억하는 상처의 흉터들일 뿐
매서운 밤바람이 살결을 스쳐 가며
마른 외피를 사정없이 뒤흔들어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 묵묵히 엎드려
소멸의 가혹한 퇴로를 받아들이는 침묵
외로움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론적 숙명임을 깨달은 얼굴로 누워
오직 하늘의 시린 별빛만을
맑고 호젓하게 응시하고 있습니다
2026-06-17 (No.112)
저녁 귀가
어스름이 내리는 동네 모퉁이,
그대가 걸어올 골목길 초입에 서서
가만히 노란 가로등을 올려다봅니다
하루의 피로를 어깨에 얹고서
지친 발걸음으로 걸어올 그대가
어두운 길에 행여 넘어질까 염려되어,
내가 먼저 와 불빛 아래 자리를 지킵니다
저 멀리서 서서히 들려오는
그대의 익숙하고 소박한 발자국 소리
그 소리 하나에 내 차가운 하루도
어느새 다정하고 환하게 밝아옵니다
저녁 귀가
어스름이 내리는 동네 모퉁이,
그대가 걸어올 골목길 초입에 서서
가만히 노란 가로등을 올려다봅니다
하루의 피로를 어깨에 얹고서
지친 발걸음으로 걸어올 그대가
어두운 길에 행여 넘어질까 염려되어,
내가 먼저 와 불빛 아래 자리를 지킵니다
저 멀리서 서서히 들려오는
그대의 익숙하고 소박한 발자국 소리
그 소리 하나에 내 차가운 하루도
어느새 다정하고 환하게 밝아옵니다
2026-06-17 (No.111)
빨랫줄의 양말 한 쌍
찬바람 부는 저녁 하늘 아래
나란히 매달려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가늘고 여린 집게 하나에 의지해
온몸을 사정없이 흔들면서도
서로의 얇은 발목을 향해
나직한 안부를 건네는 촉감
가장 낮은 바닥을 함께 걸어온
가난한 영혼들의 다정한 위로가
허공 위에서 은은하게
마르고 있습니다
빨랫줄의 양말 한 쌍
찬바람 부는 저녁 하늘 아래
나란히 매달려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가늘고 여린 집게 하나에 의지해
온몸을 사정없이 흔들면서도
서로의 얇은 발목을 향해
나직한 안부를 건네는 촉감
가장 낮은 바닥을 함께 걸어온
가난한 영혼들의 다정한 위로가
허공 위에서 은은하게
마르고 있습니다
2026-06-12 (No.110)
대숲 아래 편지
어제는 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편지 봉투에 ‘보고 싶다’ 네 글자 적어두고
끝내 우체통으로 걸어가지 못했습니다
마당 가에 우뚝 선 대나무들이
제 부끄러운 마음을 눈치챘는지
밤새도록 몸을 누이며
사락사락, 사락사락
그리운 소리로 울어대더군요
바람이 대숲을 쓰다듬고 갈 때마다
댓잎 뒤에 숨겨둔 수줍은 고백들이
마당 가득 초록빛 눈물로 쏟아집니다
끝내 부치지 못한 이 편지는
마당을 쓸어내리는 빗물에 흘려보낼 테니
그대, 바람결에 푸른 대나무 냄새 나거든
제가 보낸 안부인 줄 아십시오
대숲 아래 편지
어제는 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편지 봉투에 ‘보고 싶다’ 네 글자 적어두고
끝내 우체통으로 걸어가지 못했습니다
마당 가에 우뚝 선 대나무들이
제 부끄러운 마음을 눈치챘는지
밤새도록 몸을 누이며
사락사락, 사락사락
그리운 소리로 울어대더군요
바람이 대숲을 쓰다듬고 갈 때마다
댓잎 뒤에 숨겨둔 수줍은 고백들이
마당 가득 초록빛 눈물로 쏟아집니다
끝내 부치지 못한 이 편지는
마당을 쓸어내리는 빗물에 흘려보낼 테니
그대, 바람결에 푸른 대나무 냄새 나거든
제가 보낸 안부인 줄 아십시오
2026-06-05 (No.109)
엎드린 줄기가 증명하는 것
하늘을 향해 곧게 뻗지 못하고 땅바닥을 기는 삶이 있다. 세상을 향해 꼿꼿이 줄기를 세우지 못해 매순간 대지의 차가운 흙바닥에 가슴을 비벼야 하는 존재들. 사람들은 그것을 굴복이라 부르고, 때로는 지체된 성장이나 실패라고 쉽게 단정 짓는다. 그러나 거대한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장 낮은 곳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는 그 줄기들이야말로,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찬란한 결실을 준비하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위를 보지 못해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라, 장차 감당해야 할 거대한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대지에 온몸을 밀착시킨 채 숨을 고르는 존재들의 이야기다.
나무들은 서둘러 수직의 세계를 구축한다. 단단한 목질의 줄기를 밀어 올리며 허공을 가르고, 햇빛을 독점하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가지를 뻗는다. 그것은 당당하고 효율적인 삶의 방식으로 보인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궤적 역시 그와 닮아 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위로, 더 위로 자라나 자신만의 영토를 증명하는 것.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리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흐르는 생명이 있다. 수박의 넝쿨은 결코 하늘로 솟구치지 않는다. 씨앗에서 틔운 연약한 초록의 선은 흙을 만나자마자 부끄러운 듯 땅으로 누워 버린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비가 내리면 진흙탕 속에 몸을 섞는다. 그 모습은 언뜻 무력해 보이고, 수직의 성장을 포기한 낙오자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줄기에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땅의 맥박을 가장 가까이서 듣기 위한 기우림이다. 손가락만 한 연약한 줄기가 대지의 넓은 품을 향해 사방으로 뻗어 나갈 때, 그것은 허공에 허무한 손짓을 하는 대신 땅의 수분과 온기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남들이 하늘을 우러러볼 때, 기는 식물들은 땅을 기록한다. 자신들이 지나온 모든 흙의 감촉과 웅덩이의 깊이를 몸에 새기며, 묵묵히 제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다. 기억은 흐려지기 쉽지만, 이렇듯 온몸으로 기어가며 남긴 줄기의 궤적은 땅 위에 선명한 기록으로 남는다. 기록되지 않은 고통은 사라지지만, 땅바닥을 기며 새겨 넣은 초록의 선들은 그 자체로 지울 수 없는 삶의 서사가 된다.
가만히 상상해 본다. 만약 수박이 거대한 참나무나 미인송처럼 단단한 줄기를 곧게 세워 자라는 식물이었다면 어땠을까. 단단한 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시퍼런 줄무늬를 키워가는 수박의 모습을.
그것은 불가능한 풍경이다. 수박은 식물의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거대하고 무거운 과실이다. 맑은 물과 붉은 속살, 그리고 수많은 까만 씨앗들을 가득 채운 그 질량은 인간의 두 손으로 들어 올리기에도 벅찰 만큼 묵직하다. 만약 수박이 허공의 가지 끝에서 열렸다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줄기가 부러지거나, 열매가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박의 넝쿨이 땅으로 기어 다니는 것은 식물의 무능이 아니라, 가장 정교한 생존의 설계다. 무거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쳐줄 가장 넓고 단단한 받침대가 필요하다. 수박은 허공의 부실한 나뭇가지 대신, 지구라는 가장 거대하고 흔들림 없는 대지를 자신의 받침대로 삼기로 선택한 것이다. 줄기를 땅에 뉘어 사방으로 뻗어 놓음으로써, 장차 태어날 거대한 열매의 하중을 대지 전체로 분산시키는 지혜다.
연약해 보이는 초록의 줄기는 사실 대지와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다. 가장 낮은 곳에서 먼지 묻은 손을 뻗어 땅을 움켜쥐고 있는 그 지독한 번짐이 있었기에, 마침내 한 여름의 태양 아래서 속이 꽉 찬, 그 무겁고 둥근 세계를 터뜨릴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어 땅과 하나가 된 식물만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축복을 온전히 감당해 낸다.
인간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남들은 모두 저만치 앞서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만 같은데, 나 혼자만 진흙 묻은 바닥을 기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 차가운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무릎을 꿇고, 세상의 시선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밀려나 겨우 숨만 쉬고 있는 힘겨운 성장의 계절들.
세상은 그 낮아짐을 실패라 부르고, 서둘러 일어나 위를 향해 달리라고 다그친다. 수직의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는 삶은 가치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가만히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있는 시간이다. 남들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거대하고 묵직한 내면의 열매를 맺기 위해, 그 무게를 버텨낼 단단한 지지대를 대지 위에 넓게 펼치고 있는 과정일 뿐이다.
오히려 쉽게 위로 자란 삶은 작은 바람에도 부러지거나, 조금만 무거운 책임이 주어져도 줄기째 꺾이기 쉽다. 반면 가장 낮은 곳에서 흙을 만지며, 고통의 감각을 온전히 기록하며 뻗어 나간 이들의 줄기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대지의 견고함과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힘없이 기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의 뿌리와 줄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넓은 면적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내공을 쌓아간다.
그러니 지금 혹독하게 낮고 어두운 자리에 머물고 있다면,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지금 땅에 엎드려 있는 것은, 장차 당신의 인생에 맺힐 열매가 너무도 크고 묵직하여 허공의 연약한 가지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거대한 결실은 가장 낮은 곳에서, 오직 대지의 무게를 정면으로 받아낸 줄기 위에서만 비로소 완성된다. 그 고요하고 지독한 준비의 끝에, 당신은 당신을 짓누르던 그 대지 위에서 세상 가장 탐스러운 둥근 우주를 증명해 보일 것이다.
엎드린 줄기가 증명하는 것
하늘을 향해 곧게 뻗지 못하고 땅바닥을 기는 삶이 있다. 세상을 향해 꼿꼿이 줄기를 세우지 못해 매순간 대지의 차가운 흙바닥에 가슴을 비벼야 하는 존재들. 사람들은 그것을 굴복이라 부르고, 때로는 지체된 성장이나 실패라고 쉽게 단정 짓는다. 그러나 거대한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장 낮은 곳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는 그 줄기들이야말로,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찬란한 결실을 준비하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위를 보지 못해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라, 장차 감당해야 할 거대한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대지에 온몸을 밀착시킨 채 숨을 고르는 존재들의 이야기다.
나무들은 서둘러 수직의 세계를 구축한다. 단단한 목질의 줄기를 밀어 올리며 허공을 가르고, 햇빛을 독점하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가지를 뻗는다. 그것은 당당하고 효율적인 삶의 방식으로 보인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궤적 역시 그와 닮아 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위로, 더 위로 자라나 자신만의 영토를 증명하는 것.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리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흐르는 생명이 있다. 수박의 넝쿨은 결코 하늘로 솟구치지 않는다. 씨앗에서 틔운 연약한 초록의 선은 흙을 만나자마자 부끄러운 듯 땅으로 누워 버린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비가 내리면 진흙탕 속에 몸을 섞는다. 그 모습은 언뜻 무력해 보이고, 수직의 성장을 포기한 낙오자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줄기에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땅의 맥박을 가장 가까이서 듣기 위한 기우림이다. 손가락만 한 연약한 줄기가 대지의 넓은 품을 향해 사방으로 뻗어 나갈 때, 그것은 허공에 허무한 손짓을 하는 대신 땅의 수분과 온기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남들이 하늘을 우러러볼 때, 기는 식물들은 땅을 기록한다. 자신들이 지나온 모든 흙의 감촉과 웅덩이의 깊이를 몸에 새기며, 묵묵히 제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다. 기억은 흐려지기 쉽지만, 이렇듯 온몸으로 기어가며 남긴 줄기의 궤적은 땅 위에 선명한 기록으로 남는다. 기록되지 않은 고통은 사라지지만, 땅바닥을 기며 새겨 넣은 초록의 선들은 그 자체로 지울 수 없는 삶의 서사가 된다.
가만히 상상해 본다. 만약 수박이 거대한 참나무나 미인송처럼 단단한 줄기를 곧게 세워 자라는 식물이었다면 어땠을까. 단단한 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시퍼런 줄무늬를 키워가는 수박의 모습을.
그것은 불가능한 풍경이다. 수박은 식물의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거대하고 무거운 과실이다. 맑은 물과 붉은 속살, 그리고 수많은 까만 씨앗들을 가득 채운 그 질량은 인간의 두 손으로 들어 올리기에도 벅찰 만큼 묵직하다. 만약 수박이 허공의 가지 끝에서 열렸다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줄기가 부러지거나, 열매가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박의 넝쿨이 땅으로 기어 다니는 것은 식물의 무능이 아니라, 가장 정교한 생존의 설계다. 무거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쳐줄 가장 넓고 단단한 받침대가 필요하다. 수박은 허공의 부실한 나뭇가지 대신, 지구라는 가장 거대하고 흔들림 없는 대지를 자신의 받침대로 삼기로 선택한 것이다. 줄기를 땅에 뉘어 사방으로 뻗어 놓음으로써, 장차 태어날 거대한 열매의 하중을 대지 전체로 분산시키는 지혜다.
연약해 보이는 초록의 줄기는 사실 대지와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다. 가장 낮은 곳에서 먼지 묻은 손을 뻗어 땅을 움켜쥐고 있는 그 지독한 번짐이 있었기에, 마침내 한 여름의 태양 아래서 속이 꽉 찬, 그 무겁고 둥근 세계를 터뜨릴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어 땅과 하나가 된 식물만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축복을 온전히 감당해 낸다.
인간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남들은 모두 저만치 앞서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만 같은데, 나 혼자만 진흙 묻은 바닥을 기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 차가운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무릎을 꿇고, 세상의 시선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밀려나 겨우 숨만 쉬고 있는 힘겨운 성장의 계절들.
세상은 그 낮아짐을 실패라 부르고, 서둘러 일어나 위를 향해 달리라고 다그친다. 수직의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는 삶은 가치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가만히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있는 시간이다. 남들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거대하고 묵직한 내면의 열매를 맺기 위해, 그 무게를 버텨낼 단단한 지지대를 대지 위에 넓게 펼치고 있는 과정일 뿐이다.
오히려 쉽게 위로 자란 삶은 작은 바람에도 부러지거나, 조금만 무거운 책임이 주어져도 줄기째 꺾이기 쉽다. 반면 가장 낮은 곳에서 흙을 만지며, 고통의 감각을 온전히 기록하며 뻗어 나간 이들의 줄기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대지의 견고함과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힘없이 기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의 뿌리와 줄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넓은 면적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내공을 쌓아간다.
그러니 지금 혹독하게 낮고 어두운 자리에 머물고 있다면,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지금 땅에 엎드려 있는 것은, 장차 당신의 인생에 맺힐 열매가 너무도 크고 묵직하여 허공의 연약한 가지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거대한 결실은 가장 낮은 곳에서, 오직 대지의 무게를 정면으로 받아낸 줄기 위에서만 비로소 완성된다. 그 고요하고 지독한 준비의 끝에, 당신은 당신을 짓누르던 그 대지 위에서 세상 가장 탐스러운 둥근 우주를 증명해 보일 것이다.
2026-05-09 (No.108)
비장하고도 아름다운 예의
지구의 모든 생명이 흙먼지 속으로 저물어가던 시간, 영화 인터스텔라는 그 절망의 끝에서 한 남자의 등을 떠밀며 시작한다. 병든 옥수수밭 너머로 불어오는 모래 폭풍은 인류의 지도를 지워버리고, 남겨진 아이들의 미래는 다가올 호흡의 곤란함 속에 갇혀 있다. 나사(NASA)의 조종사였던 쿠퍼는 사랑하는 딸 머피를 남겨두고 미지의 우주로 향한다.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장대한 명분이었으나, 실상은 내 아이의 눈동자 속에 비친 슬픔을 외면하지 못해 선택한 가장 뜨겁고도 아픈 도망이었다. 토성 근처의 웜홀을 통과하고, 밀러 행성의 거대한 파도를 넘으며, 블랙홀 가르간튀아의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지는 그의 모든 여정은 사실 단 하나의 약속,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그 지키기 어려운 맹세를 향해 수억 광년을 가로지르는 고독한 유영이다. 5차원의 공간 테서랙트 안에서 먼지처럼 흩날리는 시간의 책장들을 붙잡으려 애쓰는 그의 절규는, 시간의 사각지대조차 관통하는 사랑의 중력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우리 시대의 가장 비장한 대서사시다.
이 경이로운 우주적 서사가 태동한 자리는 뜻밖에도 광활한 은하계가 아닌, 낡은 피아노 한 대가 놓인 밀폐된 방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거대한 우주를 설계하기 전, 음악감독 한스 짐머에게 단 두 줄의 문장이 적힌 메모만을 건넸다. 그 메모에는 우주선도, 상대성 이론도, 외계 행성의 풍경도 적혀 있지 않았다. 오직 '아버지가 큰일을 위해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는 본질적인 감정의 뼈대만이 존재했다.
놀란은 짐머에게 이 영화가 SF라는 사실조차 숨긴 채, 오직 그 두 줄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본질만을 음악으로 길어 올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은 시스템의 세부 사항을 정의하기 전, 가장 핵심적인 아키텍처의 논리를 묻는 전략적인 물음과도 같았다.
한스 짐머는 그 짧은 문장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파고드는 영감을 마주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초기 제작 과정의 녹화 영상은 지금도 창조의 희열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장면이 되었다. 영상 속 짐머는 건반 앞에 앉아 오직 소리의 파동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의 손끝이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의 숨결이 공기를 메우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무게와 남겨진 자의 그리움이 선율이 되어 흐른다. 찰나의 몰입 속에서 메인 테마의 첫 마디가 태동할 때 그의 얼굴에 스치는 것은 단순한 만족감이 아니다.
그것은 무의 공간에서 유의 서사를 끌어올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지독하리만치 선명한 열정의 불꽃이다. 놀란 감독은 그렇게 태어난 음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선율이 먼저 흐르고 그 리듬의 박동에 맞춰 은하계가 설계된 셈이다. 한 편의 음악이 우주의 팽창을 결정하고, 낮은 울림이 블랙홀의 심연을 규정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전율에 가까운 깨달음을 준다.
이러한 몰입의 신비는 차가운 논리의 세계인 수학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17세기 수학자 페르마가 남긴 마지막 정리라는 350년 된 숙제를 풀기 위해, 앤드루 와일즈는 자신의 생 중 가장 빛나는 7년이라는 시간을 집 다락방에서의 고립과 맞바꿨다. 그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세상에 알리지 않은 채, 오직 숫자와 기호들이 빚어내는 무채색의 풍경 속으로 자신을 유폐시켰다.
그의 몰입은 한스 짐머의 그것보다 훨씬 고요했으나 그 강도는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다락방으로 올라가 칠판 앞에 서서 어둠 속에 갇힌 길을 찾으려 애썼다. 수많은 실패와 막다른 골목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절망하는 대신, 자신의 사고가 도달하지 못한 사각지대를 응시했다. 7년째 되던 해, 마침내 결정적인 영감이 번뜩이던 순간 그는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며, 너무나 단순하고 우아해서 20분 동안 그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창조의 희열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자원을 하나의 점으로 수렴시켜, 나조차 알지 못했던 내면의 사각지대를 빛으로 밝혀내는 과정이다. 한스 짐머의 눈빛과 앤드루 와일즈의 고독한 다락방에서 읽을 수 있는 이 순수한 몰입은, 인간이 시간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넘어 영원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나 역시 IT 인프라를 설계하고 전략을 고민하는 이성의 시간 속에서도, 혹은 원고지 위에 삶의 편린을 기록하는 감성의 시간 속에서도 늘 이 뜨거운 몰입의 순간을 향한 갈망을 품고 살아간다. 냉정하게 시스템의 결함을 찾아내고 사각지대를 지워나가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의 생을 빛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얻어낸 그 정직한 창조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몰입의 미학은 우리에게 삶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무언가에 완전히 매료되어 자신을 잊어버리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불완전한 생의 틈새를 메우는 지극한 이해의 자리를 마련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밀도 높은 공간에서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이 아닌, 온전한 자기 자신과 조우한다. 짐머의 손끝에서 시작된 진동이 우주를 창조하고, 와일즈의 연필 끝에서 시작된 수식이 인류의 지성사를 바꿨듯이, 우리가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쏟아붓는 순수한 열정 또한 때로는 우리만의 대서사를 완성하는 기적을 일궈낸다. 그것은 기계적인 성취가 아니라, 영혼의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생명수와 같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는 그 행위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이 지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장엄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모든 소음이 잦아든 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자신만의 메인 테마를 따라 나 또한 조용히 걸음을 내딛는다. 그 뜨거운 몰입과 열정이 주는 기쁨이 나의 일상을 대서사의 한 페이지로 탈바꿈시키기를 소망하며, 나는 오늘도 나의 사각지대를 향해 고요한 눈빛을 보낸다. 우리의 생은 결국 실패의 자리를 지나 더 깊은 이해의 대지로 나아가는 여정이며, 그 여정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중력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품고 있는 지극한 열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한스 짐머가 그 낡은 피아노 앞에서 건져 올린 것이 우주의 소리였듯, 나 역시 나의 일상이라는 건반 위에서 가장 나다운 선율을 찾아내어 기록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을 대하는 가장 비장하고도 아름다운 예의다.
비장하고도 아름다운 예의
지구의 모든 생명이 흙먼지 속으로 저물어가던 시간, 영화 인터스텔라는 그 절망의 끝에서 한 남자의 등을 떠밀며 시작한다. 병든 옥수수밭 너머로 불어오는 모래 폭풍은 인류의 지도를 지워버리고, 남겨진 아이들의 미래는 다가올 호흡의 곤란함 속에 갇혀 있다. 나사(NASA)의 조종사였던 쿠퍼는 사랑하는 딸 머피를 남겨두고 미지의 우주로 향한다.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장대한 명분이었으나, 실상은 내 아이의 눈동자 속에 비친 슬픔을 외면하지 못해 선택한 가장 뜨겁고도 아픈 도망이었다. 토성 근처의 웜홀을 통과하고, 밀러 행성의 거대한 파도를 넘으며, 블랙홀 가르간튀아의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지는 그의 모든 여정은 사실 단 하나의 약속,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그 지키기 어려운 맹세를 향해 수억 광년을 가로지르는 고독한 유영이다. 5차원의 공간 테서랙트 안에서 먼지처럼 흩날리는 시간의 책장들을 붙잡으려 애쓰는 그의 절규는, 시간의 사각지대조차 관통하는 사랑의 중력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우리 시대의 가장 비장한 대서사시다.
이 경이로운 우주적 서사가 태동한 자리는 뜻밖에도 광활한 은하계가 아닌, 낡은 피아노 한 대가 놓인 밀폐된 방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거대한 우주를 설계하기 전, 음악감독 한스 짐머에게 단 두 줄의 문장이 적힌 메모만을 건넸다. 그 메모에는 우주선도, 상대성 이론도, 외계 행성의 풍경도 적혀 있지 않았다. 오직 '아버지가 큰일을 위해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는 본질적인 감정의 뼈대만이 존재했다.
놀란은 짐머에게 이 영화가 SF라는 사실조차 숨긴 채, 오직 그 두 줄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본질만을 음악으로 길어 올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은 시스템의 세부 사항을 정의하기 전, 가장 핵심적인 아키텍처의 논리를 묻는 전략적인 물음과도 같았다.
한스 짐머는 그 짧은 문장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파고드는 영감을 마주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초기 제작 과정의 녹화 영상은 지금도 창조의 희열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장면이 되었다. 영상 속 짐머는 건반 앞에 앉아 오직 소리의 파동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의 손끝이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의 숨결이 공기를 메우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무게와 남겨진 자의 그리움이 선율이 되어 흐른다. 찰나의 몰입 속에서 메인 테마의 첫 마디가 태동할 때 그의 얼굴에 스치는 것은 단순한 만족감이 아니다.
그것은 무의 공간에서 유의 서사를 끌어올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지독하리만치 선명한 열정의 불꽃이다. 놀란 감독은 그렇게 태어난 음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선율이 먼저 흐르고 그 리듬의 박동에 맞춰 은하계가 설계된 셈이다. 한 편의 음악이 우주의 팽창을 결정하고, 낮은 울림이 블랙홀의 심연을 규정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전율에 가까운 깨달음을 준다.
이러한 몰입의 신비는 차가운 논리의 세계인 수학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17세기 수학자 페르마가 남긴 마지막 정리라는 350년 된 숙제를 풀기 위해, 앤드루 와일즈는 자신의 생 중 가장 빛나는 7년이라는 시간을 집 다락방에서의 고립과 맞바꿨다. 그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세상에 알리지 않은 채, 오직 숫자와 기호들이 빚어내는 무채색의 풍경 속으로 자신을 유폐시켰다.
그의 몰입은 한스 짐머의 그것보다 훨씬 고요했으나 그 강도는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다락방으로 올라가 칠판 앞에 서서 어둠 속에 갇힌 길을 찾으려 애썼다. 수많은 실패와 막다른 골목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절망하는 대신, 자신의 사고가 도달하지 못한 사각지대를 응시했다. 7년째 되던 해, 마침내 결정적인 영감이 번뜩이던 순간 그는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며, 너무나 단순하고 우아해서 20분 동안 그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창조의 희열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자원을 하나의 점으로 수렴시켜, 나조차 알지 못했던 내면의 사각지대를 빛으로 밝혀내는 과정이다. 한스 짐머의 눈빛과 앤드루 와일즈의 고독한 다락방에서 읽을 수 있는 이 순수한 몰입은, 인간이 시간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넘어 영원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나 역시 IT 인프라를 설계하고 전략을 고민하는 이성의 시간 속에서도, 혹은 원고지 위에 삶의 편린을 기록하는 감성의 시간 속에서도 늘 이 뜨거운 몰입의 순간을 향한 갈망을 품고 살아간다. 냉정하게 시스템의 결함을 찾아내고 사각지대를 지워나가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의 생을 빛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얻어낸 그 정직한 창조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몰입의 미학은 우리에게 삶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무언가에 완전히 매료되어 자신을 잊어버리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불완전한 생의 틈새를 메우는 지극한 이해의 자리를 마련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밀도 높은 공간에서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이 아닌, 온전한 자기 자신과 조우한다. 짐머의 손끝에서 시작된 진동이 우주를 창조하고, 와일즈의 연필 끝에서 시작된 수식이 인류의 지성사를 바꿨듯이, 우리가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쏟아붓는 순수한 열정 또한 때로는 우리만의 대서사를 완성하는 기적을 일궈낸다. 그것은 기계적인 성취가 아니라, 영혼의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생명수와 같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는 그 행위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이 지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장엄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모든 소음이 잦아든 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자신만의 메인 테마를 따라 나 또한 조용히 걸음을 내딛는다. 그 뜨거운 몰입과 열정이 주는 기쁨이 나의 일상을 대서사의 한 페이지로 탈바꿈시키기를 소망하며, 나는 오늘도 나의 사각지대를 향해 고요한 눈빛을 보낸다. 우리의 생은 결국 실패의 자리를 지나 더 깊은 이해의 대지로 나아가는 여정이며, 그 여정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중력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품고 있는 지극한 열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한스 짐머가 그 낡은 피아노 앞에서 건져 올린 것이 우주의 소리였듯, 나 역시 나의 일상이라는 건반 위에서 가장 나다운 선율을 찾아내어 기록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을 대하는 가장 비장하고도 아름다운 예의다.
2026-05-09 (No.107)
검은 물감으로 그린 복수의 빛
대부분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상처는 아물고, 기억은 흐릿해지며, 우리는 그것을 지나온 하나의 계절로 정리한다. 그러나 어떤 고통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지고, 더 깊은 색으로 응고되어 우리의 내면 어딘가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하나의 형식, 하나의 언어, 하나의 세계로 다시 태어난다.
17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삶은 바로 그런 변환의 기록이었다. 그녀는 화가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붓을 쥐고 색을 익히며 자랐고, 또래의 소녀들이 바느질을 배우던 나이에 이미 빛과 명암의 대비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여성이 예술가로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협소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성의 손에서 탄생한 그림은 재능이 아니라 예외로 취급되었고, 그들의 세계는 언제나 누군가의 이름 아래 종속되어야 했다.
그녀의 삶을 결정적으로 뒤흔든 사건은 열일곱 살의 여름에 찾아왔다. 아버지의 동료였던 남성 화가에게 성폭력을 당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재판은 그녀를 피해자가 아닌 ‘증명해야 하는 존재’로 끌어내렸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녀는 손가락에 압박을 가하는 고문을 견뎌야 했고, 그 고통 속에서조차 자신의 진술을 반복해야 했다. 화가에게 손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도구였다. 그 손이 부서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조차, 그녀는 끝내 자신의 진실을 놓지 않았다.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궤도로 접어든다.
사람들은 흔히 고통을 겪은 이후의 인간이 무너질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파괴하려 했던 힘을 내부로 끌어들여 전혀 다른 형태로 재구성한다. 아르테미시아에게 그것은 회화였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화면 속에서 유디트는 더 이상 연약한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흔들림 없이 칼을 쥐고 있으며, 그 손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다. 피는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번지고, 장면은 잔혹할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이 그림을 마주한 이들은 종종 질문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성서의 장면인가, 아니면 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해석하는 방식인가.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에서 여성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행동하고, 선택하며, 때로는 파괴한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 된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을 노골적인 고백으로 풀어내지도 않았다. 대신, 고통을 이미지로 번역했다.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들을 색과 빛, 그리고 인물의 시선에 담아냈다. 그녀의 캔버스는 일종의 침묵이었고, 동시에 누구보다 강력한 언어였다.
세상은 종종 고통을 극복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극복’이라는 단어는 때로 지나치게 단순하다. 마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복원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의 삶은 그런 식의 회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형태를 바꾸었을 뿐이다.
그녀는 그 상처를 지우는 대신, 더 깊은 색으로 덧칠했다. 그리고 그 색은 결국 그녀를 당대 유럽에서 인정받는 화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피렌체의 미술 아카데미에 입성한 최초의 여성 화가라는 기록은 단순한 업적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견뎌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에 가깝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고통은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아르테미시아의 삶은 그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고통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것을 다른 언어로 바꾸어보라고. 그것이 그림이든, 글이든, 혹은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태도이든.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그림 앞에 서 있으면 묘한 감각이 밀려온다. 그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응고된 시간을 마주하는 느낌에 가깝다. 우리는 그 앞에서 쉽게 위로받지 못한다. 대신, 조금 더 단단해진다. 고통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삶은 결코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분명히 빛난다. 어둠이 깊을수록 색이 선명해지듯, 그녀의 삶은 고통이라는 배경 위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것을 숨기고, 누군가는 잊으려 애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끌어안고, 끝내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버린다.
그녀는 후자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한 인간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로 남게 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고통들이 우리 안에서 조용히 형태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어떤 색으로, 어떤 언어로 드러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것은 언젠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세워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검은 물감은 단지 어둠을 그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 그것은 가장 강렬한 빛을 드러내기 위한 바탕이 된다. 그녀의 그림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끝내 예술로 번역해냈다는 사실은, 단순한 극복의 서사로 환원될 수 없는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과연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견뎌낼 수 있는가, 혹은 그러한 변환의 능력 없이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아르테미시아의 삶이 더욱 깊은 울림을 지니는 이유는, 그녀의 선택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길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녀를 쉽게 닮을 수 없으면서도, 끝내 그 방향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따라가기 위한 길이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가끔씩 올려다보는 하나의 별빛에 가깝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녀의 그림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보는 이의 내면을 조용히 흔든다. 캔버스 위에 굳어버린 색채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지만, 그 안에 스며든 감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숨 쉰다. 우리는 그 앞에서 각자의 상처를 떠올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자각하게 된다. 그녀의 그림은 말을 걸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도록 만든다. 당신은 당신의 고통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라는 아주 오래된 물음을.
어쩌면 삶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것을 끝내 찾지 못한 채 침묵 속에 머물고, 누군가는 서툰 형태로나마 그것을 꺼내어 세상에 내어놓는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라는 이름은, 그 긴 탐색의 끝에서 마침내 하나의 언어를 완성해낸 사람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지금도, 누군가의 어둠 속에서 아주 미세한 방향을 가리키는 빛으로 남아 있다.
검은 물감으로 그린 복수의 빛
대부분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상처는 아물고, 기억은 흐릿해지며, 우리는 그것을 지나온 하나의 계절로 정리한다. 그러나 어떤 고통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지고, 더 깊은 색으로 응고되어 우리의 내면 어딘가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하나의 형식, 하나의 언어, 하나의 세계로 다시 태어난다.
17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삶은 바로 그런 변환의 기록이었다. 그녀는 화가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붓을 쥐고 색을 익히며 자랐고, 또래의 소녀들이 바느질을 배우던 나이에 이미 빛과 명암의 대비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여성이 예술가로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협소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성의 손에서 탄생한 그림은 재능이 아니라 예외로 취급되었고, 그들의 세계는 언제나 누군가의 이름 아래 종속되어야 했다.
그녀의 삶을 결정적으로 뒤흔든 사건은 열일곱 살의 여름에 찾아왔다. 아버지의 동료였던 남성 화가에게 성폭력을 당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재판은 그녀를 피해자가 아닌 ‘증명해야 하는 존재’로 끌어내렸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녀는 손가락에 압박을 가하는 고문을 견뎌야 했고, 그 고통 속에서조차 자신의 진술을 반복해야 했다. 화가에게 손은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도구였다. 그 손이 부서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조차, 그녀는 끝내 자신의 진실을 놓지 않았다.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궤도로 접어든다.
사람들은 흔히 고통을 겪은 이후의 인간이 무너질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파괴하려 했던 힘을 내부로 끌어들여 전혀 다른 형태로 재구성한다. 아르테미시아에게 그것은 회화였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화면 속에서 유디트는 더 이상 연약한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흔들림 없이 칼을 쥐고 있으며, 그 손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다. 피는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번지고, 장면은 잔혹할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이 그림을 마주한 이들은 종종 질문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성서의 장면인가, 아니면 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해석하는 방식인가.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에서 여성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행동하고, 선택하며, 때로는 파괴한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 된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을 노골적인 고백으로 풀어내지도 않았다. 대신, 고통을 이미지로 번역했다.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들을 색과 빛, 그리고 인물의 시선에 담아냈다. 그녀의 캔버스는 일종의 침묵이었고, 동시에 누구보다 강력한 언어였다.
세상은 종종 고통을 극복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극복’이라는 단어는 때로 지나치게 단순하다. 마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복원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의 삶은 그런 식의 회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형태를 바꾸었을 뿐이다.
그녀는 그 상처를 지우는 대신, 더 깊은 색으로 덧칠했다. 그리고 그 색은 결국 그녀를 당대 유럽에서 인정받는 화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피렌체의 미술 아카데미에 입성한 최초의 여성 화가라는 기록은 단순한 업적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견뎌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에 가깝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고통은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아르테미시아의 삶은 그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고통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것을 다른 언어로 바꾸어보라고. 그것이 그림이든, 글이든, 혹은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태도이든.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그림 앞에 서 있으면 묘한 감각이 밀려온다. 그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응고된 시간을 마주하는 느낌에 가깝다. 우리는 그 앞에서 쉽게 위로받지 못한다. 대신, 조금 더 단단해진다. 고통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삶은 결코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분명히 빛난다. 어둠이 깊을수록 색이 선명해지듯, 그녀의 삶은 고통이라는 배경 위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것을 숨기고, 누군가는 잊으려 애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끌어안고, 끝내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버린다.
그녀는 후자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한 인간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로 남게 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고통들이 우리 안에서 조용히 형태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어떤 색으로, 어떤 언어로 드러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것은 언젠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세워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검은 물감은 단지 어둠을 그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 그것은 가장 강렬한 빛을 드러내기 위한 바탕이 된다. 그녀의 그림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끝내 예술로 번역해냈다는 사실은, 단순한 극복의 서사로 환원될 수 없는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과연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견뎌낼 수 있는가, 혹은 그러한 변환의 능력 없이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아르테미시아의 삶이 더욱 깊은 울림을 지니는 이유는, 그녀의 선택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길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녀를 쉽게 닮을 수 없으면서도, 끝내 그 방향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따라가기 위한 길이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가끔씩 올려다보는 하나의 별빛에 가깝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녀의 그림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보는 이의 내면을 조용히 흔든다. 캔버스 위에 굳어버린 색채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지만, 그 안에 스며든 감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숨 쉰다. 우리는 그 앞에서 각자의 상처를 떠올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자각하게 된다. 그녀의 그림은 말을 걸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도록 만든다. 당신은 당신의 고통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라는 아주 오래된 물음을.
어쩌면 삶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것을 끝내 찾지 못한 채 침묵 속에 머물고, 누군가는 서툰 형태로나마 그것을 꺼내어 세상에 내어놓는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라는 이름은, 그 긴 탐색의 끝에서 마침내 하나의 언어를 완성해낸 사람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지금도, 누군가의 어둠 속에서 아주 미세한 방향을 가리키는 빛으로 남아 있다.
2026-05-01 (No.106)
마이크 뒤에서
1970년대의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흐르던 소리들 중, 카펜터스(The Carpenters)의 선율만큼 세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정서적 원형에 가깝게 닿아 있는 음악은 드물다. 오빠 리처드 카펜터의 정교한 편곡과 동생 카렌 카펜터의 벨벳처럼 부드러운 알토 보컬이 빚어내는 조화는, 당시 록 음악의 거친 파고 속에서도 독보적인 서정의 섬을 일구어냈다. 그들은 단순히 대중적인 팝송을 부르는 가수가 아니었다. 상처 입은 일상을 어루만지고, 지나간 시간을 현재의 거울 앞으로 소환해내는 그리움의 건축가들이었다.
그들의 음악 세계를 상징하는 대표곡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의 고독을 달래고 있다. 혜성처럼 등장하게 했던 (They Long to Be) Close to You는 연인을 향한 찬미를 천상적 이미지로 그려냈고, Top of the World는 생의 가장 환희에 찬 순간을 경쾌한 컨트리풍 리듬에 담아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우리의 심장을 가장 깊게 파고드는 곡은 역시 1973년 발표된 Yesterday Once More일 것이다.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들을 들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 곡의 가사는,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음악적 서사로 증명해낸다.
When I was young I'd listen to the radio
(내가 어렸을 때 라디오를 듣곤 했지)
Waiting for my favorite songs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When they played I'd sing along, it made me smile.
(노래가 나오면 난 따라 불렀고, 그건 나를 미소 짓게 했어)
가사 속의 미소는 단순히 즐거움의 표상이 아니다. 그것은 결핍된 현재를 견디게 하는 과거의 따스한 파편이다. 카렌의 목소리는 모든 좋은 기억이 나에게 선명하게 되돌아온다고 노래하지만, 그 청아하고 낮은 울림 속에는 왠지 모를 서늘한 그림자가 배어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예찬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고독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감미롭고 환한 노래들의 뒤편에 서른두 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카렌 카펜터의 시린 사각지대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은 지독한 아이러니이다. 카렌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가장 다정한 위로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정작 위로를 세상에 쏟아내던 그녀의 내면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며 부와 명성을 얻었으나 그 대가로 주어진 것은 숨 가쁜 일정과 끊임없는 완벽주의의 압박이었다. 새로운 창작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마이크 앞에 서야 했던 그녀는, 거식증이라는 형체 없는 괴물과 싸우며 자신의 어두워진 마음을 대중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써 미소 지었다.
여기서 나는 못내 아쉬운 가정을 멈출 수 없다. 만약 그때, 무대 뒤편의 적막 속에 홀로 서 있던 카렌에게 누군가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넬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고요한 휴식을, 빽빽한 일정표 대신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선물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말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Yesterday Once More만큼이나 아름답고 감미로운, 우리의 메마른 생을 조금 더 따스하게 데워줄 또 다른 명곡 하나를 더 기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진다. 그녀가 소모해버린 것은 단순히 자신의 육체만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누렸어야 할 수많은 음악적 축복의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르기에 그 상실의 안타까움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사람들을 그토록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던 그 목소리가 정작 스스로를 향한 위로로는 쓰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쉽고 서글프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에 몸을 녹이며 그 온기가 오로지 나를 향한 것이라고만 믿곤 한다. 하지만 카렌의 삶이 보여주듯, 세상에서 가장 선명한 빛을 내뿜는 위로 안에는 사실 그 사람 본인이 그토록 간절히 받고 싶었던 위로의 갈망이 투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상처를 응시하고 어루만지는 손길은, 어쩌면 자신의 상처가 너무도 깊어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미는 처절한 공감의 표현인 셈이다. 자신의 결핍을 타인을 채워주는 행위로 보상받으려 했던 그 외로운 투쟁을 우리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다정한 노래가 울려 퍼지는 동안 그녀가 마주했을 무대 뒤의 적막을, 우리는 음악이라는 화려한 포장지 아래 묻어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단순히 위로를 받는 사람에 머물기보다, 그 위로의 발원지를 깊이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사람의 눈동자 뒤편에 자리 잡은 고독을 먼저 읽어내고 싶다.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이의 목소리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습기를 포착해낼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을 기르고 싶다. 누군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면, 그 품이 나에게 주는 안도감만큼이나 그 사람의 심장이 떨리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는 배려를 지니고 싶다. 기록되지 않은 슬픔이 기록된 위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멜로디로 채워지지만, 그 선율이 아름다울수록 그 아래에 깔린 저음의 슬픔은 더욱 짙기 마련이다. 카렌 카펜터가 남긴 노래들은 여전히 세상을 치유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 노래를 들으며 그녀가 마이크 뒤에서 홀로 견뎌냈을 고독한 시간을 함께 기억하려 한다. 위로라는 이름의 선물 아래에 숨겨진 그 사람의 진심과, 어쩌면 그가 누구보다 절실히 필요로 했을 따뜻한 시선 하나를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생을 대하며 지켜나가고 싶은 가장 정직한 예우이자, 기록자로서 내가 남겨야 할 마지막 문장이다.
진정한 위로는 단순히 슬픔을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의 사각지대까지 기꺼이 함께 걸어 들어가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일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면서도 자신의 시린 손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상대방의 감춰진 시린 손을 먼저 찾아내 가만히 잡아줄 수 있는 그런 넉넉한 이해의 자리에 머물고 싶다. Yesterday Once More의 선율이 흐르는 주방 한구석에서, 나는 오늘도 물을 끓이며 누군가의 텅 빈 컵을 채워줄 준비를 한다. 그 물 한 잔에 담긴 나의 진심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받고 싶었던 바로 그 위로로 닿기를 소망하며.
마이크 뒤에서
1970년대의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흐르던 소리들 중, 카펜터스(The Carpenters)의 선율만큼 세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정서적 원형에 가깝게 닿아 있는 음악은 드물다. 오빠 리처드 카펜터의 정교한 편곡과 동생 카렌 카펜터의 벨벳처럼 부드러운 알토 보컬이 빚어내는 조화는, 당시 록 음악의 거친 파고 속에서도 독보적인 서정의 섬을 일구어냈다. 그들은 단순히 대중적인 팝송을 부르는 가수가 아니었다. 상처 입은 일상을 어루만지고, 지나간 시간을 현재의 거울 앞으로 소환해내는 그리움의 건축가들이었다.
그들의 음악 세계를 상징하는 대표곡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의 고독을 달래고 있다. 혜성처럼 등장하게 했던 (They Long to Be) Close to You는 연인을 향한 찬미를 천상적 이미지로 그려냈고, Top of the World는 생의 가장 환희에 찬 순간을 경쾌한 컨트리풍 리듬에 담아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우리의 심장을 가장 깊게 파고드는 곡은 역시 1973년 발표된 Yesterday Once More일 것이다.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들을 들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 곡의 가사는,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음악적 서사로 증명해낸다.
When I was young I'd listen to the radio
(내가 어렸을 때 라디오를 듣곤 했지)
Waiting for my favorite songs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When they played I'd sing along, it made me smile.
(노래가 나오면 난 따라 불렀고, 그건 나를 미소 짓게 했어)
가사 속의 미소는 단순히 즐거움의 표상이 아니다. 그것은 결핍된 현재를 견디게 하는 과거의 따스한 파편이다. 카렌의 목소리는 모든 좋은 기억이 나에게 선명하게 되돌아온다고 노래하지만, 그 청아하고 낮은 울림 속에는 왠지 모를 서늘한 그림자가 배어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예찬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고독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감미롭고 환한 노래들의 뒤편에 서른두 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카렌 카펜터의 시린 사각지대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은 지독한 아이러니이다. 카렌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가장 다정한 위로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정작 위로를 세상에 쏟아내던 그녀의 내면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며 부와 명성을 얻었으나 그 대가로 주어진 것은 숨 가쁜 일정과 끊임없는 완벽주의의 압박이었다. 새로운 창작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마이크 앞에 서야 했던 그녀는, 거식증이라는 형체 없는 괴물과 싸우며 자신의 어두워진 마음을 대중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써 미소 지었다.
여기서 나는 못내 아쉬운 가정을 멈출 수 없다. 만약 그때, 무대 뒤편의 적막 속에 홀로 서 있던 카렌에게 누군가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넬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고요한 휴식을, 빽빽한 일정표 대신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선물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말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Yesterday Once More만큼이나 아름답고 감미로운, 우리의 메마른 생을 조금 더 따스하게 데워줄 또 다른 명곡 하나를 더 기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진다. 그녀가 소모해버린 것은 단순히 자신의 육체만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누렸어야 할 수많은 음악적 축복의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르기에 그 상실의 안타까움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사람들을 그토록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던 그 목소리가 정작 스스로를 향한 위로로는 쓰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쉽고 서글프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에 몸을 녹이며 그 온기가 오로지 나를 향한 것이라고만 믿곤 한다. 하지만 카렌의 삶이 보여주듯, 세상에서 가장 선명한 빛을 내뿜는 위로 안에는 사실 그 사람 본인이 그토록 간절히 받고 싶었던 위로의 갈망이 투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상처를 응시하고 어루만지는 손길은, 어쩌면 자신의 상처가 너무도 깊어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미는 처절한 공감의 표현인 셈이다. 자신의 결핍을 타인을 채워주는 행위로 보상받으려 했던 그 외로운 투쟁을 우리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다정한 노래가 울려 퍼지는 동안 그녀가 마주했을 무대 뒤의 적막을, 우리는 음악이라는 화려한 포장지 아래 묻어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단순히 위로를 받는 사람에 머물기보다, 그 위로의 발원지를 깊이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사람의 눈동자 뒤편에 자리 잡은 고독을 먼저 읽어내고 싶다.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이의 목소리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습기를 포착해낼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을 기르고 싶다. 누군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면, 그 품이 나에게 주는 안도감만큼이나 그 사람의 심장이 떨리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는 배려를 지니고 싶다. 기록되지 않은 슬픔이 기록된 위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멜로디로 채워지지만, 그 선율이 아름다울수록 그 아래에 깔린 저음의 슬픔은 더욱 짙기 마련이다. 카렌 카펜터가 남긴 노래들은 여전히 세상을 치유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 노래를 들으며 그녀가 마이크 뒤에서 홀로 견뎌냈을 고독한 시간을 함께 기억하려 한다. 위로라는 이름의 선물 아래에 숨겨진 그 사람의 진심과, 어쩌면 그가 누구보다 절실히 필요로 했을 따뜻한 시선 하나를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생을 대하며 지켜나가고 싶은 가장 정직한 예우이자, 기록자로서 내가 남겨야 할 마지막 문장이다.
진정한 위로는 단순히 슬픔을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의 사각지대까지 기꺼이 함께 걸어 들어가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일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면서도 자신의 시린 손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상대방의 감춰진 시린 손을 먼저 찾아내 가만히 잡아줄 수 있는 그런 넉넉한 이해의 자리에 머물고 싶다. Yesterday Once More의 선율이 흐르는 주방 한구석에서, 나는 오늘도 물을 끓이며 누군가의 텅 빈 컵을 채워줄 준비를 한다. 그 물 한 잔에 담긴 나의 진심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받고 싶었던 바로 그 위로로 닿기를 소망하며.
2026-04-18 (No.105)
용서의 자리에 이해가 머물 때
열 시간의 비행은 육체를 투명한 막처럼 얇게 저며놓았다. 낯선 공항의 소음과 차가운 공기를 뚫고 도착한 시드니의 밤은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생전 처음 와보는 이국적 풍경에 감탄할 겨를도 없이, 호텔 로비의 대리석 바닥 위에 선 나의 발바닥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데스크 너머로 들려온 직원의 무심한 선고는 나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예약 날짜가 오늘이 아니라 어제로 되어 있습니다."
아득했다. 여행의 모든 일정 중에서 내가 맡은 단 하나의 과업은 숙소를 예약하는 일이었다. 체크인이라는 낯선 개념, 날짜를 헷갈릴 만큼 서툴렀던 나의 초보적인 실수. 에어비앤비 같은 편리한 서비스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밤은 깊었고, 나는 갈 곳을 잃은 채 거대한 캐리어 위에 주저앉았다. 같이 온 일행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비난이 쏟아져도, 혹은 싸늘한 침묵이 이어져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다행히 사정을 딱하게 여긴 매니저가 여분의 방을 내어주었고, 심지어 할인된 가격으로 제안해 주었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멈추었던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방에 들어서서도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일행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다시 예약하고 체크인을 하는 시간이 짧지 않았다. 여행의 시작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자책, 아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옥죄었다. "미안해, 정말 면목이 없어. 나를 용서해줘."라고 말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용서라니? 이건 화낼 일조차 아닌걸. 나는 그냥 이해해. 먼 길을 날아오느라 피곤했을 테고, 낯선 시스템이라 헷갈릴 수도 있었던 거잖아."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짐을 풀었다. 만약 입장이 바뀌어 내가 그의 실수를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마 속으로 수없는 재단을 하고, 부주의함을 꾸짖으며, 한동안 냉랭한 기운으로 아내를 심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용서'라는 수직적인 시혜 대신 '이해'라는 수평적인 온기를 내밀었다. 그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용서와 이해라는 그 미묘하고도 거대한 간극 사이에서 깊은 상념에 빠졌다.
사전적으로 용서란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상하의 권력관계가 개입된다. 용서하는 자는 도덕적 우위라는 단단한 지반 위에 서 있고, 용서받는 자는 채무자처럼 낮은 곳에 엎드려야 한다. 용서는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는 선언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당신은 틀렸고 나는 너그럽다'는 판단의 앙금이 남기 쉽다.
반면 이해(理解)는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앎, 혹은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럽게 받아들임을 뜻한다. 이는 판단이 아니라 공감에 가깝다. '나라도 그랬을 수 있다'는 인식, 상대방의 상황 속에 나의 영혼을 잠시 앉혀보는 투명한 연민이다. 이해의 세계에서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부서지기 쉬운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연약함만이 서로를 마주 볼 뿐이다.
역사적 순간 속에서도 이 두 마음의 길은 다르게 빛났다. 넬슨 만델라는 27년의 수감 생활 끝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자신을 탄압했던 백인 정권의 가해자들을 '용서'했다. 이는 과거의 피비린내 나는 증오를 멈추기 위한 거대한 결단이었으며, 국가적 차원의 화해를 이끈 성스러운 선언이었다. 하지만 그 용서가 가능했던 것은 그가 감옥 안에서 가해자들의 두려움과 시대의 광기를 '이해'하려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만델라의 용서는 이해라는 단단한 뿌리 위에서 피어난 꽃이었다.
또한,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웃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저주하지도 마라. 오직 이해하라(Non ridere, non lugere, neque detestari, sed intelligere)"고 설파했다. 그는 인간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단죄하기보다, 그 행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흐름을 살피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고 믿었다. 스피노자에게 이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한계를 통찰하는 가장 높은 차원의 이성이었다.
호텔 로비의 그 밤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IT 실무자로, 혹은 기획자로 살아가며 수많은 프로젝트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아내가 보여준 이해보다는,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살았던 것 같다. 프로젝트의 성공이라는 목표 아래 동료들을 다그치고, 사소한 실수를 범한 이들을 마음으로 심판하며, 그들의 사정보다는 결과의 완벽함만을 들이밀었다.
그때의 내가 조금 더 '이해'를 아는 사람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실수의 현장 뒤에 숨겨진 동료의 고단함과 압박감을 먼저 읽어낼 줄 아는 웅숭깊은 선배였다면, 우리의 일터는 조금 더 따뜻한 숲이 되지 않았을까. 상대를 단죄하는 용서보다, 그의 자리에 서보는 이해가 먼저였다면 나 역시 그들로부터 응원을 받으며 훨씬 더 단단하고 멋있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으리라는 뒤늦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경직된 조직 논리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는 나의 '계산기'를 너무 자주 두드렸다. 상대의 결핍을 채워주기보다 그 결핍을 지적하며 나의 우월함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나를 진정으로 성장시켰던 것은 누군가의 날카로운 지적이 아니라, 내가 가장 초라하게 무너졌을 때 "그럴 수도 있어, 나라도 그랬을 거야"라고 말해주던 다정한 이해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중반을 넘어서며, 내 마음의 선반 가장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이해'라는 양념을 두려 한다. 누군가 예약을 잘못하여 밤거리를 헤매게 하더라도, 누군가 중요한 문서에서 오타를 내어 계획을 틀어지게 하더라도, 나는 용서라는 무거운 단어를 꺼내기보다 이해라는 부드러운 외투를 먼저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살아가는 동안 마주할 수만 개의 낯선 체크인 데스크 앞에서, 나는 더는 당황하지 않고 타인의 서투름을 긍정하려 한다. 그것이 결국은 나 자신의 연약함을 사랑하는 방식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조용하고도 위대한 산책이다. 나는 이제 그 산책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말미에 이른 나의 마음은 고요하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타인의 실수를 비난의 화살로 바꾸지 않고, 그가 지나온 길의 굴곡과 그가 짊어진 짐의 무게를 먼저 헤아리는 넉넉한 품을 가진 이가 되고 싶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서먹해진 동료들과의 거리에서도, 이해라는 다리를 놓아 다시금 온기가 흐르게 하고 싶다.
인생은 어차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것과 같아서, 우리는 모두 길을 잃거나 날짜를 헷갈리는 서툰 여행자들이다. 그 서툶을 서로의 눈빛으로 안아줄 수 있다면, 비록 숙소를 찾지 못해 공터에서 밤을 지새운다 해도 그 밤은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은하수를 선물해줄 것이다. 나는 오늘 나의 낡은 빗자루를 들고 내 마음의 뜰을 쓸어낸다. 어제의 미움을 걷어내고, 내일의 이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길은 걸음 뒤에 생겨나고, 이해는 마음이 머물다 간 자리에 비로소 꽃으로 핀다. 나는 그 꽃향기를 따라, 오늘보다 조금 더 다정한 내일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딛고 싶다.
용서의 자리에 이해가 머물 때
열 시간의 비행은 육체를 투명한 막처럼 얇게 저며놓았다. 낯선 공항의 소음과 차가운 공기를 뚫고 도착한 시드니의 밤은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생전 처음 와보는 이국적 풍경에 감탄할 겨를도 없이, 호텔 로비의 대리석 바닥 위에 선 나의 발바닥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데스크 너머로 들려온 직원의 무심한 선고는 나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예약 날짜가 오늘이 아니라 어제로 되어 있습니다."
아득했다. 여행의 모든 일정 중에서 내가 맡은 단 하나의 과업은 숙소를 예약하는 일이었다. 체크인이라는 낯선 개념, 날짜를 헷갈릴 만큼 서툴렀던 나의 초보적인 실수. 에어비앤비 같은 편리한 서비스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밤은 깊었고, 나는 갈 곳을 잃은 채 거대한 캐리어 위에 주저앉았다. 같이 온 일행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비난이 쏟아져도, 혹은 싸늘한 침묵이 이어져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다행히 사정을 딱하게 여긴 매니저가 여분의 방을 내어주었고, 심지어 할인된 가격으로 제안해 주었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멈추었던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방에 들어서서도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일행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다시 예약하고 체크인을 하는 시간이 짧지 않았다. 여행의 시작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자책, 아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옥죄었다. "미안해, 정말 면목이 없어. 나를 용서해줘."라고 말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용서라니? 이건 화낼 일조차 아닌걸. 나는 그냥 이해해. 먼 길을 날아오느라 피곤했을 테고, 낯선 시스템이라 헷갈릴 수도 있었던 거잖아."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짐을 풀었다. 만약 입장이 바뀌어 내가 그의 실수를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마 속으로 수없는 재단을 하고, 부주의함을 꾸짖으며, 한동안 냉랭한 기운으로 아내를 심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용서'라는 수직적인 시혜 대신 '이해'라는 수평적인 온기를 내밀었다. 그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용서와 이해라는 그 미묘하고도 거대한 간극 사이에서 깊은 상념에 빠졌다.
사전적으로 용서란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상하의 권력관계가 개입된다. 용서하는 자는 도덕적 우위라는 단단한 지반 위에 서 있고, 용서받는 자는 채무자처럼 낮은 곳에 엎드려야 한다. 용서는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는 선언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당신은 틀렸고 나는 너그럽다'는 판단의 앙금이 남기 쉽다.
반면 이해(理解)는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앎, 혹은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럽게 받아들임을 뜻한다. 이는 판단이 아니라 공감에 가깝다. '나라도 그랬을 수 있다'는 인식, 상대방의 상황 속에 나의 영혼을 잠시 앉혀보는 투명한 연민이다. 이해의 세계에서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부서지기 쉬운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연약함만이 서로를 마주 볼 뿐이다.
역사적 순간 속에서도 이 두 마음의 길은 다르게 빛났다. 넬슨 만델라는 27년의 수감 생활 끝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자신을 탄압했던 백인 정권의 가해자들을 '용서'했다. 이는 과거의 피비린내 나는 증오를 멈추기 위한 거대한 결단이었으며, 국가적 차원의 화해를 이끈 성스러운 선언이었다. 하지만 그 용서가 가능했던 것은 그가 감옥 안에서 가해자들의 두려움과 시대의 광기를 '이해'하려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만델라의 용서는 이해라는 단단한 뿌리 위에서 피어난 꽃이었다.
또한,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웃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저주하지도 마라. 오직 이해하라(Non ridere, non lugere, neque detestari, sed intelligere)"고 설파했다. 그는 인간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단죄하기보다, 그 행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흐름을 살피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고 믿었다. 스피노자에게 이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한계를 통찰하는 가장 높은 차원의 이성이었다.
호텔 로비의 그 밤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IT 실무자로, 혹은 기획자로 살아가며 수많은 프로젝트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아내가 보여준 이해보다는,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살았던 것 같다. 프로젝트의 성공이라는 목표 아래 동료들을 다그치고, 사소한 실수를 범한 이들을 마음으로 심판하며, 그들의 사정보다는 결과의 완벽함만을 들이밀었다.
그때의 내가 조금 더 '이해'를 아는 사람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실수의 현장 뒤에 숨겨진 동료의 고단함과 압박감을 먼저 읽어낼 줄 아는 웅숭깊은 선배였다면, 우리의 일터는 조금 더 따뜻한 숲이 되지 않았을까. 상대를 단죄하는 용서보다, 그의 자리에 서보는 이해가 먼저였다면 나 역시 그들로부터 응원을 받으며 훨씬 더 단단하고 멋있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으리라는 뒤늦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경직된 조직 논리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는 나의 '계산기'를 너무 자주 두드렸다. 상대의 결핍을 채워주기보다 그 결핍을 지적하며 나의 우월함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나를 진정으로 성장시켰던 것은 누군가의 날카로운 지적이 아니라, 내가 가장 초라하게 무너졌을 때 "그럴 수도 있어, 나라도 그랬을 거야"라고 말해주던 다정한 이해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중반을 넘어서며, 내 마음의 선반 가장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이해'라는 양념을 두려 한다. 누군가 예약을 잘못하여 밤거리를 헤매게 하더라도, 누군가 중요한 문서에서 오타를 내어 계획을 틀어지게 하더라도, 나는 용서라는 무거운 단어를 꺼내기보다 이해라는 부드러운 외투를 먼저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살아가는 동안 마주할 수만 개의 낯선 체크인 데스크 앞에서, 나는 더는 당황하지 않고 타인의 서투름을 긍정하려 한다. 그것이 결국은 나 자신의 연약함을 사랑하는 방식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조용하고도 위대한 산책이다. 나는 이제 그 산책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말미에 이른 나의 마음은 고요하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타인의 실수를 비난의 화살로 바꾸지 않고, 그가 지나온 길의 굴곡과 그가 짊어진 짐의 무게를 먼저 헤아리는 넉넉한 품을 가진 이가 되고 싶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서먹해진 동료들과의 거리에서도, 이해라는 다리를 놓아 다시금 온기가 흐르게 하고 싶다.
인생은 어차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것과 같아서, 우리는 모두 길을 잃거나 날짜를 헷갈리는 서툰 여행자들이다. 그 서툶을 서로의 눈빛으로 안아줄 수 있다면, 비록 숙소를 찾지 못해 공터에서 밤을 지새운다 해도 그 밤은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은하수를 선물해줄 것이다. 나는 오늘 나의 낡은 빗자루를 들고 내 마음의 뜰을 쓸어낸다. 어제의 미움을 걷어내고, 내일의 이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길은 걸음 뒤에 생겨나고, 이해는 마음이 머물다 간 자리에 비로소 꽃으로 핀다. 나는 그 꽃향기를 따라, 오늘보다 조금 더 다정한 내일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딛고 싶다.